이렇게 하툼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글을 시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툼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 개인의 유년 시절에 관한 정보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망명한 이주민 가정에서 자란데다가 또 한 번 이주의 경험을 추가했고, 작가로서는 런던과 베를린을 거점으로 삼긴 하지만 딱히 오랜 기간 한곳에 정착하는 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하툼은 강제적인 이주를 유발하는 외부 요인에 대해 고민한다. 작업방식은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는 만큼이나 자유로워 비디오, 설치, 오브제, 사진, 퍼포먼스,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이주민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백인 우월주의나 제 3세계 이주민 차별, 가부장제, 주류의식 등 권위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된 사고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으로 확대된다. 이주에 의해 오히려 중동아시아의 다른 가정에 비해 가부장적인 억압을 덜 받았던 작가였지만, 그랬기에 폭력적인 가부장적 요소들을 더 예민하게 감지해낼 수 있었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가재도구와 가구에 전류를 연결해 위험한 장치로 만들고, 치즈를 가는 강판이 칸막이처럼 확대되면서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두 용품이 위치와 크기 변동으로 갑자기 위협적인 오브제로 변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을 상징하는 주방도구를 변형시켜 위험함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재제작한 건 다분히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는 미니멀리즘과 초현실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도 한다.
<Over My Dead Body> 1988 Inkjet on paper
204×304cm ⓒ Mona Hatoum
예를 들어 갤러리 한 공간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 <홈바운드(Homebound)>(2000) 는 마치 누군가의 집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테이블, 바닥에 흩어진 각종 주방 용품들, 마치 불필요한 것들은 다 제거시킨 듯 한 가구들, 스탠드 조명들이 전류가 흐르고 있는 전선으로 다 연결되어 한 공간에 늘어져 있다. 프로그램화된 조광(dimmer) 스위치에 의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전구에는 불빛이 불규칙적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꺼졌다한다. 전류가 흐르면서 생기는 소리가 증폭되어 탁탁거리는 소리, 윙윙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위협적인 느낌을 더한다. 어디에도 천이나 매트리스와 같은 포근함을 주는 소재는 볼 수 없다. 아마 보통사람이 느끼는 ‘Home’에 대한 안정감, 편안함이 하툼의 작품에선 정반대로 표현되는 까닭이다. 그에게 있어 ‘Home’은 너무나 모호한 것이었다. 그리움,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다기보단 마치 그의 작품처럼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고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지만 사실은 감전될 만큼의 전류가 흐르는 위험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엔 강철로 만들어진 철사가 경계선으로 설치되어있는데 이로 인해 관람객을 감전위험에서 보호해 줄뿐만 아니라 이 작품 자체가 이 공간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고 한다. ‘Homebound’란 단어는 ‘귀향’이라는 뜻 이외에도 ‘집안에 갇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 딱 맞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Hot Spot III> 2009 Stainless steel, neon tube
Photo: Agostino Osio Courtesy Fondazione Querini
Stampalia Onlus, Venice ⓒ Mona Hatoum
한편, 그의 또 다른 작품, 거대하게 확대한 채소 분쇄기를 조각으로 만든 <La grande broyeuse(Mouli-Julienne×21)>(2000)에서 관객은 거대해진 주방도구의 다리 사이를 넘나들고, 온 방향에서 그 구조를 꼼꼼히 살필 수 있다. 주방에서 사용되는 도구가 여성적이라고 분류되는 것에 반해, 공격적이고 육중해 보이는 이 작품의 칼날과 본체는 그 원리가 궁금해지고, 수동으로 작동시키기 위해 예상되는 물리적인 힘도 연상시킨다. 흔히 여성적인 것들이라고 여겨지는 요소-비과학적, 연약함, 부드러움,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면의 극단에 위치한 이 도구는 하툼의 주제의식을 시각화하기엔 최상의 사물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가정, 혹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가정에서만 사용되는 이 독특한 발명품에 향수와 친숙함을 느끼는지 여부에 따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확장도 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툼이 고심하는 이주의 문제에도 가닿는다. 외부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불안정한 공동체인 국가의 특성을 이 단순한 일상의 재료에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하툼의 모든 작품은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동하는 망명자의 삶을 수용하며 예술가로 성장한 하툼의 자화상과 같다. 모나 하툼의 80년대 작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팔레스타인에 두고, 힘없는 약자들 중 한 명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시선을 둔다. 런던의 1980년대는 인종차별과 계급 간의 분쟁으로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던 시기다.
<Undercurrent(red)> 2008 Electrical wires
covered in fabric, with light bulbs and dimmer switch
Variable dimensions Photo: Stefan Rohner
Courtesy Kunstmuseum St. Gallen ⓒ Mona Hatoum
그를 유명하게 만들기 시작했던 퍼포먼스를 촬영한 비디오 <Roadworks>(1985), 그것을 사진으로 다시 기록한 <Performance Still>(1985-1995)에서 그 시대의 주류권력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담아낸 것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모나 하툼은 사우스런던의 브릭스턴지역에서 노동자들이 흔히 입는 작업복(overall)을 입고 맨발로 인도를 천천히 한 시간 정도 걸어간다. 발목은 부츠와 연결된 신발 끈으로 묶여있어 그가 한발 한발 내딜 때마다 부츠도 한 걸음 한 걸음 쫓아오는 듯 보인다. 이 부츠는 당시의 경찰들이 신는 신발이기도 하지만 나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상징인 스킨헤드(skinhead)가 신고 다니는 신발이기도 했다. 그 당시 브릭스턴은 노동자 계급, 그 중에서도 캐리비언계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사회 경제적 문제가 상당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실업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주거환경이 열악했으며 범죄율 또한 높았다. 1981년 4월에는 이런 사회문제와 더불어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경찰과 대립하는 폭동으로 번진 이 사건은 3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피의 토요일’이라 불리기도 했다. 퍼포먼스 비디오를 보다보면 중간에 지나가던 행인이 한마디 던진다. “무슨 일인지 알겠네. 저 여자는 경찰에 미행당하고 있는 거야!(It’s obvious what it means. She’s being followed by a policeman!)” 이 부츠는 분명히 당시 사회의 힘과 권력을 뜻하고, 한없이 힘없어 보이는 맨발은 부츠에 매여 삶이 존재하지 않는 꼭두각시 인형에 불구한 시대의 자화상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나 하툼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주류권력과 의식의 폭력성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에 물음을 던진 것이다.
<Light Sentence> 1992 Galvanised wire mesh lockers,
electric motor and light bulb 198×185×490cm
Centre Pompidou,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Paris: Mnam-CCI /
Dist RMN-GP Photo: Philippe Migeat ⓒ Mona Hatoum
글쓴이 양화선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itns)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를 통한 회상, 향수, 흔적의 키덜트후드 연구」 논문과 회화 작품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스트런던유니버시티 (University of East London)에서 공간의 패러독스에 관한 논문과 회화작품으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