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머금은 신체들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2016) 양윤화와 이준용은 물음을 던지며 작업을 시작한다.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또 다른 물음으로 답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음을 던지는 대화가 이어진다. 물음은 끝나지 않는다. 동시에 두 작가는 동그란 형태의 종잇조각을 교환하며 무언지알 수 없는 그 실루엣으로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지게 된다. 정해진 기간 동안 텍스트와 형태로 물음을 주고받은 이들은 무엇을 공유하게 되는 걸까?잠정적 결론은 전시장 바닥에 놓인 두 개의 오브제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의 과정과 결론을 모두 감상하고 난 이후에 관람객에게 남는 것은 작업의 명확한 윤곽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물음이다. 물음의 제3주체로서의 관람객, <복행술>전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일 것이다. 요약정리를 바라는 이들에게이 전시는 얼마나 쓸모가 없는가?
정희승 <‘Untitled’ from Tender Buttons>
201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그러나 물음표를 내걸지 않더라도 이미지는 언제나 물음을 품고 있다. 전시라는 이데올로기가 물음을 순간적으로 고정시키며 그 정체를 선명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복행술>에서는 구체적인 물음, 가령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 하는 식으로 특정한 답을 요청하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물음을 던지는능력 자체를 주제로 삼는다. 큐레이터 조은비가 지목한 짧은 문장, 해시태그(#)-우물가(井), 혐오의 딱지, 환원적 키워드-그 상투적 언어들은 망각을 유도하고반복을 부르는 장치이다. 이에 대해 행방불명된 해마의 소재를 추적해간다는 설정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김영글의 <해마 찾기>(2016)는 비교적 직접적으로기억 능력의 실종에서 기인한 사회적 징후들을 파편적인 이미지의 편집으로 드러내 보인다. 일상적 기억상실증과 백과사전적 검색엔진의 상보체계로서의 세계에 이미지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틈을 낼 수 있을까? <복행술>전의 진동하는 이미지는 미묘한 연상 관계를 구축한다. 이미래의 인간형태적 키네틱아트 구조물 <뼈가 있는 것의 운동>(2016)과 <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갤러리 운동>(2016)은 제목이 지시하듯 생명체의 뼈로서 케이크갤러리의 울퉁불퉁한 공간에 개입한다. 규격대로 잘 짜여 진 네모 반듯한 공간과 달리 조각 케이크 모양의 낮은 천장과곳곳의 돌출된 구조물로 이루어진 전시장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회전하는 구조물의 등장으로 인해 공간적으로 환기된다.
이제 <공생 연구> 2016 토기, 바닷가로부터 온 나무
작업이 뼈를 자처하니 그것을 둘러싼 공간은 신체의 내부로 상정되는 걸까. 이제의 <공생 연구>(2016)는 구석에 한가득 알 모양의 토기와 나뭇가지를 쌓아놓은 작업으로, 나뭇가지가 토기 구멍을 꼭 틀어막은 형태와 대비되어 나뭇가지로 막혀있지 않은 토기의 구멍 너머 비어있는 공간에 주목하게 한다. 이제는 부유하는 보라색 색면을 바탕으로 누워있는 임신한 여성의 누드화(<웃는 여자>(2010))를 그 맞은편에 걸었는데 같은 방에 걸린 정희승의 벌집 사진 <‘Untitled’ from Tender Buttons>(2016)와 서로 호응한다. 속이 넓게 비어있거나, 태아와 벌 또는 양수와 벌꿀로 가득 찬 생명으로 채워져 있는 둥그런 형태, 혹은 그 너머와 다른 어떤 가능성의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제의 <더미>(2010)는 얼핏 쓰레기 산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이 황폐하거나 모호한 풍경을 바탕으로 우뚝 선 여성들의 초상을 그려온 것을 생각해보면, 이‘더미’에서 즉시 처분되어야 할 폐기물의 이미지 이외에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양윤화와 이준용의 두 오브제가 그렇듯 더미는 물음을 품고 있다. 이렇게 <복행술>에서 오브제나 오브제의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적 의미나 결정적 상태를 곧바로 가리키지 않는다. 단번에 특정할 수 없는 작업의 이미지는 항공기가 착륙 직전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를 때(복행(復行)), 공기가 둥그렇게 순환하며 만들어지는 공간에 모인다. 이 공기의 층에 뜨겁고부드러운 피부가 감싸는 이미지가 부여됨으로써 언어의 발화 이전에 언어를 머금은 신체들을 바라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