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바라보는 동양의 표상 중 하나인 동백꽃은 프랑스에선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배한 역사를 지닌 ‘일본의 장미’라고 불린다. 한편, 천 겹의 잎사귀를 뜻하며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 밀푀유는 나폴레옹의 제국의 총칼을 따라 이탈리아, 러시아, 북유럽으로 전파된 프랑스 디저트다. ‘동백꽃’과 ‘밀푀유’, 이 묘한 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과 대만의 기획자가 협력한 이번 전시는 양국의 근현대사를 구성하는 다양한 쟁점을 함축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동백꽃 밀푀유’는 전시를 위한 신조어로 한국과 대만의 근현대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레이어와 그 안에 얼룩진 붉은 핏빛에 대한 비유다. 대만과 한국은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전시는 양국의 기획자와 작가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 기획전의 시작은 문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가 말한 원격접사, 즉 거리를 둘 때 오히려 가까워진다는 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서로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거리를 두면서 양국의 문제의식과 돌출지점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천 졔런(Chen Chieh-jen) <잔향의 영역
(Realm of Reverberations)> 2014 싱글채널 영상 104분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묶이는데 첫 번째는 ‘노동, 경제 식민화, 가족과 민족, 권력’으로 신제현, 구민자, 저우 위정(Chou Yu-Cheng), 무스뀌뀌 즈잉(Musquiqui Chihying)이 참여해 거대 권력이 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지점을 짚어낸다. ‘압축성장, 공동화, 개발과 배제’라는 주제로는 김준, 강홍구, 류 위(Liu Yu), 위안 광밍(Yuan Goang-Ming)이 자신만의 관점을 담은 작업을 선보이며, 마지막으로 ‘사건의 병치, 잉여와 소실, 집단 기억, 공시적 서사’에는 나현과 천 졔런(Chen Chieh-jen)이 참여해 전시를 마무리 짓는다. 또한 전시는 몇 가지 키워드가 존재하고 양국의 작가들이 나뉘어 있지만, 주제에 맞춰 자로 잰듯한 공간적 구분을 하지 않고 설치, 출판,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병치하여 시각적 유희를 더 한다. 동아시아 국가 역학 속에 사는 한국과 대만 작가의 예술적 통찰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쟁점을 전달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달 9일부터 2월 12까지 진행된다.
· 문의 아르코미술관 02-760-4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