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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9, Jun 2017

박종규
Park Jongkyu

선, 차원 그리고 뒤집기

‘2017 아트바젤홍콩(2017 Art Basel Hong Kong)’의 리안갤러리 부스는 ‘일루전(illusion)’ 그 자체였다. 주어진 공간의 정면, 측면, 바닥에 기울어진 선을 그은 박종규는 마치 벽이 비스듬하거나 바닥이 솟아오른 것 같은 환영을 완성했다. 부스 중간의 육중한 설치는 끊임없이 과거를 재현함으로써 시간 감각을 흐트러뜨리고 그가 펼쳐놓은 선들은 공간감을 무너뜨렸다. 차원의 전복, 그게 바로 박종규 작업의 주요 맥락이다. 지금의 기하학적 레이어가 완성되기 전, 작업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그의 관심은 늘 같은 것에 있었다. 고무장갑 안에 파라핀을 가득 채워 만든 1990년대 ‘Untitle’ 시리즈도 실크스크린 평면에 페이크 퍼를 붙여 완성한 ‘Layers of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 연작을 만든 2000년대 초반에도 작가는 감각을 뒤집고 현실을 달리 보는 시각을 미술로 치환시켰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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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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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기하학적 선으로 완성된 박종규의 작품 <Maze of Onlookers>는 얼핏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의 워싱턴,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예측해 단죄하는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은 사건이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예측해 특수경찰이 미래의 범죄자들을 체포한다. 천부적인 감각으로 범죄자를 추적하던 톰 크루즈(Tom Cruise)의 모습은 기막힌 박진감을 선사했는데, 비디오로 시간을 거스른다는 점 때문일까? 


이 작품을 처음 대면하자 영화 속 화면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가만, 박종규의 작품은 영화 속 메커니즘과 전혀 반대다. 그의 작품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 불과 2-3분 전의 지나온 시간을 비춘다. CCTV를 사용한 이 설치 구조물은 서로가 보고 보여 지는, 감시하고 감시 받는 현상들을 엉키고 설켜서 그 뚜렷한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사회의 형상과 구조를 직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몇 분 전 비디오 영상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복잡 미묘하고 위험한 관계들을 관람객으로 하여금 직접 체험케 한다. 공간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찍어 한 구석에서 송출하는 영상은, 자신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행동하는 바로 나 자신이다.


<Maze of onlookers> 2016 Formax, CNC

(Computer Numerical Control) 100×64.5cm(2)




‘감시사회’의 아이콘, CCTV의 시공간을 변형시킴으로써 작가는 현재가 지닌 우울한 딜레마를 작품으로 재현한다. 보호와 감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관음적 시각구조가 만연한 지금 삶에서 각 개인이 이미지 유포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씁쓸한 팩트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2016년 처음 선보인 <Maze of Onlookers>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총 21대의 TV 모니터와 영상 스크린으로 구성된 작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었다. 6대의 모니터에서는 갤러리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된 관람객들을, 5대의 모니터에서는 실시간 CCTV 화면이 시간차를 두고 보여졌다. 또 다른 6대에서는 우리 주변의 사회 현상과 관련된 영상들이 12배속으로 빠르게 상영되고 나머지 4대에서는 전체를 아우르는 영상이 구조물 전체와 나머지 스크린에 분사됐다. 하나의 작품에 시간이 교차되고 이미지가 엉키며, 생경하면서도 결코 생소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종합됐다. 작가는 말한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한 시점에서 객관화된 피사체로 바라보는 존재론적이고 현상학적 체험은 시간에 대한 질문과 자신을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보다 진화한 <Maze of Onlookers>가 ‘2017 아트바젤홍콩’에 선보였다. 작가는 영상 설치에 회화와 조각을 함께 배치했다. 





<Maze of onlookers> 2016 

벽면에 시트커팅, 프로젝터 영상, 가변크기





자신의 대표 작업인 픽셀을 이용해 만든, 선을 길거나 짧게 혹은 굵거나 가늘게 변형하여 감각에 린치를 가한 공간은 아트 피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간 한 가운데 서면, 벽과 바닥에 휩싸이듯 여겨지는 작가의 연출력에 컬렉터 뿐 아니라 유수 미술관의 기획자들이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의 구체적 형상은 사라졌지만 추상화된 이미지는 우리가 이미 지나쳤거나 혹은 지금 지나치고 있는 시각적 요소를 개념화 한 것”이라는 작가 설명대로 작품은, 다층적 매트릭스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이제까지 미니멀리즘 질서 바깥에서만 존재하던 노이즈를 조형의 질서 안으로 불러내어 적극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새로운 공간감각의 생성력으로 동원하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이제까지 양자택일의 부담만이 주어졌던 노이즈와 미니멀 미술의 기묘한 동거의 실현이다.” 지난 2009년 개인전 서문을 쓴 황인은 일찍이 박종규의 작업을 이렇게 평했다. 실재와 관념, 이 둘 중 하나를 부각하기 위해 하나를 버리기보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긴장감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생경한 작업을 선보인다던 박종규는 이미 자신의 이론을 확고히 만들어 작업을 즐기는 차원에 이르렀다. 




<Maze of onlookers> 2016

 Acrylic on canvas 162.2×130.3cm  




맥락과 철학을 중심으로 공부했던 그는 ‘관념의 전복’에 유독 집중한다. 초기작부터 그랬다. 벽 중간의 콘센트가 있다. 작가는 그 콘센트와 그것이 배치된 벽을 사진으로 찍어 실물 크기로 인화했다. 그리고 실제 콘센트 위에 사진을 붙인 후 또 다시 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 오브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 이렇게 반복되는 대상 혹은 시간에서, 진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사는 시간은 어느 것인지 자문하게 만들고 각자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그는 기차 레일, 철길을 찍어 벽에 붙이고 그 밑으로 진짜 철길을 설치했다. 


평면과 연결된 입체 작업으로 공간을 이동시키는 순간, 그것이 박종규가 작업으로 재현하려는 종국의 목표인 셈이었다. 시간 순서대로라면 콘센트와 철길이 사진보다 과거지만 그가 연출한 공간에선 오브제는 현재진행형인 반면 사진은 과거가 되고 만다. 콘센트가 찍힌 사진은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한, 어쩌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물체와 평면만으로 시간의 확장을 꿈꾸며 시간적 인식을 지연시키던 그가 이제 기술적 합의를 지닌 매체까지 활용하고 있다. 쉽게 눈에 띄는 대상을 디지털 연산체계로 픽셀화시키고 일련의 점으로 이뤄진 작품들을 완성했던 박종규. 

 



<2016 Maze-20165125> 2016 

Acrylic on canvas 116.8×91cm




그의 작업은 선으로 코드화시키는 연작으로 또, 기계적 프로세스를 반영하는 설치로 진화하고 있다. 매체를 넘나들며 독특한 개념적 조형 세계를 구축하는 그에게 올 한해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박진감 넘칠 듯하다. 가을,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과 세계적 명성의 벤 브라운 갤러리(Ben Brown Fine Arts) 홍콩에서 대형 개인전을 앞뒀기 때문이다. 벤 브라운 갤러리 전시는 페더빌딩(Pedder Building)의 인하우스 전시 외에 창고형 분관 갤러리에서도 전시가 개최돼, 작품 수도 엄청날뿐더러 색다른 설치 작업도 계획 중이다. “기하학적 질서라는 기본 개념을 근간으로 조형의 궁극적 순도를 재현하는 시도를 마음껏 펼칠 것”이라고 작가는 신작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만으로 세포가 곤두선다는 박종규, 그가 확장하는 감각의 끝이 당신과 내 앞에 곧 드러날 것이다.  


 


 

박종규





작가 박종규는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인 이후 2015년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특별 개인전 <J. Park 2015 ENCODING>을 개최하는 등 갤러리 분도, 리안갤러리, 성곡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을 포함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또 아트바젤홍콩 참여, 후쿠오카시립미술관, 파리 보자르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최근 러시아 트라이엄프 갤러리에서 개최된 한국 특별그룹전 <EXTENSION. KR>에 초대 작가로 참여하며 활발한 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리국립미술학교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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