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에서 ‘차갑다’, ‘투박하다’, ‘강하다’ 등의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철의 물질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일차원적 피드백이다. 김주현, 노해율, 엄익훈, 이성민은 강인한 속성과 함께 움직임, 빛, 소리, 그림자 등 비물질적 요소를 배치해 철의 뜻밖의 모습을 나타낸다. 김주현은 같은 크기의 함석판을 연결해 기하학적 형태로 만든 <9,000개의 경첩>을 선보인다.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고 이어진 구조는 소통, 투쟁, 갈등, 조화, 변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역학적인 구조로 얽혀있는 현 사회를 반영한다. 노해율은 <One Stroke 01>을 통해 직육면체 형태의 철 파이프 기둥 10개를 전동회전 장치와 함께 설치하고 그것들의 움직임과 빛, 그림자 등을 통해 상호 보완하듯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선뵌다. 강한 철이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균형과 안정감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철의 부드러운 속성을 엿볼 수 있다.
김주현 <뒤틀림 4-토러스(Warping 4-fold Torus)>
2015 구리 선, LED 300×350×200cm
엄익훈의 <Aggressive-gravel>은 차가운 쇳조각 내부에 조명을 넣어 지속적인 열을 가하고, 투각된 구멍 사이로 뿜어져 나온 빛에 의해 형성된 그림자를 함께 보여준다. 유형적 재료인 철과 빛이라는 무형의 요소가 만나 일렁이는 철의 모습을 그린그는 재료에 활동성과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성민은 산소 용접기를 사용해 끌과 망치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쇳덩어리를 거칠게 깎아 만들어낸 인체 작품 <Pieta>를 소개한다. 작품을 계획하는 것은작가지만, 불의 물리적 작용 때문에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이 내재한 이 작품은 산소 용접기로 잘린 거친 단면을 통해 자연에 인간의 개입이 만들어내는 ‘생채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철이란 재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음을 시사하는 전시는 철에 사회 전반을 반영하고 우리가 보는 세상과 그 이면을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