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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1, Jun 2018

집합은 계속된다

U.S.A

Chun kwang young: Aggregation
2018.5.3-2018.6.16 뉴욕,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

뉴욕 첼시는 작가 전광영에게 열의와 절망, 환희와 좌절을 맛보게 한 장소다. 레이저 눈빛과 용광로 같은 가슴을 지닌 청년에게도 반듯하고 세련된 건축으로 구성된 첼시는, 롤러코스터같이 긴 숨을 들이쉬고 과하도록 힘차게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곳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작가는 지금도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캠퍼스 전체를 통 털어 동양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만 있었고 특히 미술을 전공하는 이는 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우들은 단지 호기심으로 그를 대했다. 그러다 운 좋게 마음이 통한 이들이 그에게 넌지시 알려줬다. 첼시를 돌다보면 기회가 생긴다고. 그렇게 시작된 ‘첼시 투어’는 그 시절의 일상이었다. 포트폴리오를 옆구리에 끼고 오늘은 북쪽 라인, 다음 주는 반대쪽 라인의 갤러리 현관을 차례로 밀어재꼈다. 여러 번 계속해도 갤러리에 작업을 들이밀고 화상에게 눈 맞추며 자기가 이 작업의 주인공임을 어필하는 것은 보통 담력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다짐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오는 그날이, 내 작품을 한번만 갤러리에 걸자고 하는 그때가 반드시 올 거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Sundaram Tagore Gallery 제공

Installation view of 'Chun Kwang Young_Aggregation' at Sundaram Tagore Gallery, New Yor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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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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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의 개인전이 그에게 처음은 아니다. 반질반질 젊었던 전광영도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도 그리고 바로 몇 해 전에도 그 거리에 있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주저 없이 그는 이번 전시를 ‘터닝 포인트’라고 단언한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이런 표현에 어이없어하고 어떤 누군가는 응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다른 이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이 전시는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Sundaram Tagore Gallery)와 인연의 시작이고 현재 전광영이 변화를 시도하는 시작이다. 유학시절의 나처럼 완전히 색다른 각오가 들끓는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예술 대학(The University of the Arts) 석사에 진학한 그는 추상 표현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예술을 공부하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고와 유연한 환경에서 자란 그였음에도 소년기에 체험한 한국전쟁의 잔혹성과 독재정권 등은 그에게 아이디어와 현실과의 간극을 벌려놓았다. 그런데 놀라움과 슬픔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추상표현이 그의 뇌리를 후벼 판 것이다. 그 방법에 집중해 여러 작업에 매진하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돌연 종이를 이용, 회화와 조각의 중간 양식을 완성했다. 일명 종이조각으로 불리는 전광영의 시그니처 작품은 그때 탄생됐다. 




<Aggregation17-DE099> 2017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51×151cm





()와 뽕나무 색소, 그리고 삼각 유닛과 그것을 감싸는 고서(종이)를 바탕으로 촘촘하게 집적된 그의 작품은 그림과 조각의 결합 그 자체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작업은, 뽕나무 종이로 싸여 작은 꾸러미로 묶여 매달렸던 한의원 약봉지를 봤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촉발되었다. 외국에서 오래 교육을 받으며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지식의 한계를 팍팍하게 체득하던 작가는 미국인들에게 꿈과 동시에 좌절을 맛보게 하는 물질적 욕구에 환멸을 느꼈다. 그러자 반대급부로 고향에 대한 갈망이 강해졌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이 유년기의 추억을 바탕으로 작가는 한국 유산의 기술, 재료, 정서를 서양의 개념적 자유와 결합하자는 생각에 이르렀고 시도를 더해가며 점차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단순히 ‘한지’로 구분되던 뽕나무 종이를 사용하기로 한 작가의 결심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한국 역사의 정수를 구현하고, 또 정신적인 힘을 지닌 물질이기 때문이다. 한지는 토종 나무에서 유래해 물에 강하고 저항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수세기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포장하고 방수를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Aggregation15-JL038> 2015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330×330×180cm

 



작업을 관통하는 제목으로 쓰이는 ‘Aggregation’은 우리말로 집합, 집성, 응집 그리고 통합으로도 풀이된다. ‘통합’이란 어느새 사회 전반에 걸쳐지는 용어가 되었지만 작가가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땐 생소한 단어였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일찌감치, 각각의 문화가 상생하고 서로 발전을 꾀하기 위해선 ‘통합’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임을 깨달았던 셈이다역사성을 염두에 둔 작가는 매번 작품에 유입된 고서의 출처를 밝힌다. 그가 현재 사용하는 한지는 50년에서100년 사이의 책으로 각각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조상들의 기쁨과 슬픔을 내포하고 있어 작품을 더욱 신비롭고 귀중하게 만들어 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고안한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전광영의 작품은 더욱 다채롭고 복잡하고 스펙터클한 규모로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 중심엔 뽕나무 한지가 있다. 그의 전시를 수차례 지켜보며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작업을 대하는 관람객의 태도 변화다. 전광영의 작품을 처음 본 이들은 찬란한 빛깔과 다면체에서 개별적으로 잘라낸 삼각 형태 그리고 그 안에 적힌 글자들을 ‘단지’ 본다. 그러나 역사성과 시간성, 그리고 미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레퍼토리까지 스며든 작품에 대한 유래를 읽거나 말로 설명을 들으면 보는 이는 서둘러 자세를 고쳐 잡는다. 가슴에 손을 대거나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작품에게 말을 걸 듯 들여다보는 것이다. 설사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경험을 지녔더라도 옛사람에 대한 경외와 공손이 자연스레 작용하는 것 같다. 





<Aggregation17-NV093>(detail) 2017  

Mixed Media with Korean Mulberry paper 186×153cm  




이런 사색적 접근을 리드하고자 다면적이고 반복적인 그의 작업 과정에서 영혼(spirit)은 중심을 이루며 끊임없이 발전한다. 외관상으로 균일해 보이는 표면에서부터 프레임에서 분출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일관된 것이다. 색조와 색상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분화구, 움푹 들어간 곳, 또는 율동처럼 움직이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화면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우주적이면서도 정신적이다. 세피아 톤이 흐르는 먹색과 하얀 여백, 서체와 오래된 종이 자체 색을 부각시키던 그는 어느 때부터 선명한 파란색, 빨간 색, 주황색, 노란색을 거침없이 첨가하고 최근에는 파스텔 톤의 여러 색감이 어우러지는 화면도 완성하고 있다. 이는 본인 작업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동시에 작가 전광영에게 주목하는 동서양의 시선에 변화를 선사하기 위함이다. “특정한 경향이나 요구를 쫓지 않고 작업의 전체적 흐름과 동선을 보며 색을 더한다”는 작가는 그러나 아직 3차원의 대형 설치 조각은 세피아 톤 먹색과 여백으로 구성된 본연의 툴을 따른다. 몇 해 전 독일 뒤셀도르프 개인전에서 선보인 후 벨기에와 한국 등 현대미술 주요 스팟에 등장했던 작품은 아직 색이 변화되진 않고 있다.  





세피아 톤이 흐르는 먹색과 하얀 여백, 

서체와 오래된 종이 자체 색을 부각시키던 그는 어느 때부터 선명한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을 거침없이 첨가하고 최근에는 파스텔 톤의 

여러 색감이 어우러지는 화면도 완성하고 있다.   





2015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15)’ 기간에 맞춰 베니스의 성 뮤제오 팔라초 그리마니(Museo Palazzo Grimani)에 마련된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의 기획전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전광영과 갤러리. 2000년 설립된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는 서양 문화와 문화의 교류를 연구하는 것을 모토로 영적, 사회적, 미학적 대화를 유도하는 전시에 초점 두고 있다. “의사소통이 즉각적이고 문화가 충돌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목표는 모든 종류의 경계를 초월하는 예술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갤러리에게 감성과 이성이 교차되는 전광영은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였던 셈이다. 그런 까닭일까, 타고르 총괄자는 일찌감치 전광영을 찾아왔었고 끊임없이 작가에게 호감과 찬사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허나 매사 신중한 작가는 상황과 조건을 엿보며 함께 등장할 타이밍을 정했다


2018 5 1일 첼시에서 선보인 전시가 바로 그 시간적 조화의 순간이었다. 전광영은 말한다. “타고르와 같이 성장하고 싶다. 짧지 않은 시간 우리는 서로 가능성을 엿보았고 기꺼이 새로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1996년 첼시 중앙에서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던 내 다짐을 성사시켜줄 동맹으로서 타고르는 최선의 역할을 할 것이라 믿게 됐다. 작가로서 내 긴 시간의 터닝 포인트를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오는 10월 그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에서 개인전을 선보인다. 전시는 장장 1년여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 오프닝에 브루클린 전시 관계자 외에도 뉴욕 및 미국 서부 유수 미술관 디렉터와 큐레이터들이 한꺼번에 집결한 것은 그에게 집중되는 관심과 기회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국 전통과 역사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더 활약하는 작가 전광영. 복잡하고 추상적 구성임에도 현대적 맥락을 세련되며 무엇보다 순수하게 표현하는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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