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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5, Oct 2018

임민욱
Lim Minouk

기억을 베어 묶은 감정의 볏단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의 경계처럼, 임민욱의 '만일(萬一)의 약속'을 알아채는 관람객 커트라인은 1970년대 생까지임이 분명하다. 1983년 한국방송공사가 마련한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남북분단이 낳은 약 1,000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기획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연속드라마, 만화영화 등 정규방송을 무시하고 닷새간 방송이 계속됐고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시작하는 멜로디는 그야말로 전 나라를 뒤덮었다. 한국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되는 듯,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하고 화면 속 주인공이 찾는 이가 혹 내 주변에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 책임이 각자에게 주어졌다. 임민욱은 이 수많은 사연과 인물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시간이 품은 아픔과 정치・사회 제도 등에 초점 맞춰 작품을 만들었다. 라텍스, 촛농, 깃털, 뼛조각, 잔여물 등을 혼합해 선명한 이미지를 선보이는 작가는 일견 ‘명확한 사실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가이며 동시에 완벽하게 구성된 장편소설처럼 연작을 완성하는 온고잉 아티스트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작가 제공

'시민의 문' 2015 스틸(운송 컨테이너의 잔해), 사운드 517×410×288cm '만일의 약속_임민욱 개인전' 설치 전경 플라토 삼성미술관, 서울 ⓒ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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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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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이산가족에 시선이 쏠리지만 35년 전 그 낯설고 강렬했던 기억은 특정세대 이상에서 공유된다. 그런 까닭에 임민욱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나이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는데, 어떤 세대는 그의 작품에서 애달픔을 넘어 전쟁까지 읽는다. 전쟁의 근거지,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긴 여정을 달려온 어머니, 형제, 아버지, 부인, 친구와 가족의 비통함으로 사무친 극장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아직 어린 관람객들은 명확히 알 수 없는 공포를 전제로 스릴러 영화를 보듯 긴장한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내 조국이 겪은 사건 앞에서 그들은 숙연함과 어색함,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복합적으로 품은 채 작품과 마주한다. 이는 철저히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작품을 구성할 때 가장 중점에 두고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불화라고 답하는 그는, 개인과 한국 사회의 전환점을 주제로 다루며 낯설고 거친 작품을 통해 보는 이의 능동적 태도와 자율적 해석을 끊임없이 유도한다사라짐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복원을 조형화하는 작가에게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질감과 공통감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사라짐 너머에 불확실한 그 무엇이 어떻게 지속되는지, 혹은 그것을 토대로 형성된 공동체 관계와 라는 주체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것이 창작 실천으로 관계를 맺는다. 분리와 부재가 가져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전환해왔는가를 들여다봄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이해할 수도 있다.” 




<허공에의 질주> 2015 <만일의 약속_임민욱 개인전> 

설치 전경 플라토 삼성미술관, 서울 ⓒ the artist 




1998년 프랑스에서 돌아와 굵직한 기획전에 도발적인 미술을 내놓으며 줄곧 주목받은 그이지만, 특히 2014 광주비엔날레에서 유독 임민욱이란 이름은 강하게 각인됐다. 작품 <Navigation ID> 2년 만에 개최된 행사의 국내외 관람객 동선을 마비시키며 도대체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 구경꾼인지 알 수 없는 대혼란을 야기했다. 작가는 한국전쟁 희생자들의 유해가 실린 컨테이너가 고속도로를 거쳐 광주로 이동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며 이념 대립과 전쟁, 분단의 역사를 읊었다. 광주에 도착한 두 대의 컨테이너는 비엔날레 홀 광장 한복판에 놓였는데 이 안에는 장례를 치르지도, 땅에 묻히지도 못한 유해들이 플라스틱 박스에 보관돼 있었다. 이어 흰 소복을 입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을 맞이했다. 유골 컨테이너와 유가족 버스는 헬리콥터와 구급차의 가이드를 받으며 현장에 등장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당시 부모를 잃은 유족들을  광주 5.18 당시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이 맞이했는데, 이 생경한 스토리를 파악하려는 관람객들과 한 컷이라도 건지려는 취재진들의 열기가 들끓으며 광장은 마치 벌건 분화구 같았다. 사람에 밀리고 엄청난 소음에 치여 현장에 있으면서도 나는 한 웹 채널이 스트리밍하는 화면으로 작품을 봐야 했다.  




<Navigation ID> 2014 ‘10회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워라 오프닝에 선보인 라이브 스트리밍  





강렬한 이 작품은 작가에게 역시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들며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결코 끝나지 않은 과거사와 공동체의 형성 혹은 해체 과정에 눈뜨게 됐고 그 가운데 미디어의 역할과 장소성에 주목했다. 그러다 이산가족이 점령했던 1983년의 방송국이 떠올랐다.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 국가로부터 혹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던 사람들의 주체적 혹은 주관적 자기 인식이나 기준선의 변경은 미적 실천과 맞닿아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 애도라는 기준선이 있었다. 더 나아가 월남민들의 증언으로서의 자기서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만일의 약속>이다. 2018 부산비엔날레에 펼쳐놓은 설치 작품 <내가 지은 이름이에요> 이산가족에서 파생된 신작이다. 피붙이를 찾기 위해 방송국에 걸고 세워 놨던 오브제들로 구성된 작품은 바라보는 각도와 순간에 따라 무기력함의 광활한 지평선이 되었다가 피폐로 가득 찬 슬픈 풍경이 되고, 혹은 무언가 간절히 기원하는 주인공이 포커싱 되기도 한다. 작가는 애타는 가족들의 모습과 방송사 한가운데 놓였던 여러 오브제들을 켜켜이 쌓아 사랑하는 이들의 상실 전쟁 뒤에 남겨진 아픔을 발언한다.  




<Portable Keeper> 2009 HD 단채널 비디오 & 사운드 프로젝션, 

비디오 스틸이미지 12 53초 가변설치 ⓒ the artist  




임민욱의 작품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으며 장르를 넘나든다. 그가 만든 압도적 공간에 대해 스펙터클이란 표현을 사용하자 작가는 많은 레이어와 복잡한 세팅은 연극성과 환경으로서의 설치에 대한 강조이자 미니멀리즘에 대한 저항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의 구사라기보다 아예 장르를 무시하는데서 오는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설치는 아이들 놀이 같은 유치함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세련된 현대미술 문법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더 벗어나고 싶다. 앞으로 더 자유롭고 싶다고 피력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분단이 가져온 공식 역사와 또 끊임없이 수정해가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작가는 거기서 배제된 역사와 가려진 존재들을 본다. 그것은 이산과 실종의 또 다른 현주소 같은 것으로 작가는 이 사실에 근거해 향후 작업의 맥락을 잡았다. “나는 노래를 통해 보편성과 전체주의의 양면성, 심리적 영토와 뿌리를 추적하고 있다. 전나무는 붉은 깃발로, 애국가로, 소나무로, 크리스마스로 돌아다닌다. 충정과 절개의 상징, 폭력과 억압의 역사와 함께 아시아에는 소나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것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연장해서 질문하고 있다.” 어떤 사실이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실존적 물음을 갖고 그 해답을 찾는 임민욱은 바로 9 30일 도쿄 도심에서 선거방송차량과 악단을 이용한 <소나무야 소나무야 네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점프 컷_임민욱 개인전> 2008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서울 ⓒ the artist




“‘임민욱은 한심(寒心)한 작가다라고 쓰고 슬퍼한 작가라고 읽는다.” 인터뷰 끝에 그가 한 말이다. 기억의 용량이 모자라서, 공감의 역량이 벅차서 우리는 기억을 내버리고 불합리를 외면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하며 말이다. 그런데 임민욱은 다르다.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기억까지 애도하고 사라진 것을 복원하느라 그는 머리와 가슴이 늘 늪처럼 차갑고 깊다. 그러니 스스로 한심할 수 있다. 동시에 스스로 애틋하고. 현상을 읽고 사실을 신랄하게 전하는 스토리텔러 임민욱. 그는 설치 미술의 양상을 변화시켰다는 평가 또한 얻고 있다. 그의 독특한 형식과 주관적 시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는 국가의 기억과 슬픔을 캡처하며 그의 작업은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함과 동시에 특별한 인간적 감동과 공감을 새겨 넣는다. 그는 오래도록 한 주제를 파헤치는 연구자 자질을 기본으로, 경계 짓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강인함과 인내는, 그의 작품을 그저 역사의 소환’으로 치부하려는 외부의 시선을 꺾고 동시대 아트 신에 깊게 공여하고 있다.    

 



임민욱




작가 임민욱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다니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 DNSAP 펠리치타시옹 석사를 졸업했다. 1997년 파리에서의 전시 <임민욱-제너럴 지니어스 갤러리 베로니끄 스마그>를 시작으로 2000년 <주관적 이웃집>(인사미술공간) 2008년 <점프 컷>(아트선재센터), 2013년 <미열이 전하는 바람>(아트센터 나비 COMO, SKT타워), 2015년 <만일의 약속>(PLATEAU) 등 서울에서의 개인전과 2015년 <United Paradox>(PORTIKUS, 프랑크푸르트, 독일), 2017년 <PROSPECTIF CINÉMA>(퐁피두 센터, 파리, 프랑스)를 비롯한 국내외에서 전시와 퍼포먼스 그리고 프로젝트를 선뵈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하며 “작업에서 표출되는 복잡함과 불안은 진리와 미지와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겸허와 무모한 도전에서 비롯됨”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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