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155, Aug 2019

김택상
Kim Taeksang

빛의 길이, 색의 지속

김택상은 30년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다. 다른 소재를 탐내지 않으면서 오직 하나의 방식에 천착해 자신만의 기법을 연구했다. 작가의 60평 남짓한 작업실 바닥에는 물 고인 캔버스 천이, 벽에는 미완의 작품들이 걸려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고 먼지가 생기지 않도록 청소하면서 청결을 유지한다. 이때, 작품을 만든 주체는 본인보다 ‘시간’인 듯 보인다. 진행의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은 작가에게 필수다. 이런 작업 제작 과정이 3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성실함과 꾸준함의 비결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마치 연애하는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좋아하는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하고 싶고,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작업을 마주한다는 것. 물론 자신의 작품을 동반자 삼는 작가는 많다. 그러나 그 태도를 아주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작품과의 싫증나지 않는 연애는 어떻게 지속되는 걸까. 작업의 면면이 궁금한 이유다.
● 최재혁 객원기자 ● 사진 작가 제공

'시간에 머물다'(2018.10.25-2018.11.10, 풀꽃 갤러리 아소) 설치 전경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최재혁 객원기자

Tags

김택상 작가가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의 분화구를 보면서부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의 그랜드 프리스매틱 온천(Grand Prismatic Spring)은 화려한 색채로 유명하다. 지름이 90m에 달하며, 온천의 가장자리가 붉은 색부터, 주황색, 노랑색으로 층을 이룬다. 이 층은 지표면부터 수중까지 이어지는데, 50m에 달하는 깊이에 녹색, 에메랄드색, 파란색으로 연결되며 황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지표면의 색은 온천에 사는 박테리아가 층을 이루면서 드러나고, 수면의 색은 빛의 산란(散亂) 작용으로 가시화 된다이 다채로운 색의 호수는 작가의 작업실 바닥 곳곳에 놓인 캔버스 천으로 옮겨진 듯 보인다. 캔버스는 여러 색으로 희석된 물에 잠긴 채 고요하게 넘실거린다


김택상의 작업은 단순히 한 대상의 색을 쫓지 않는다. 그는 을 인식하는 방식과 그것의 재현을 고민한다. 가령, 물빛을 재현할 때 우리가 인식하는 색 중에서 물의 성질을 가장 유사하게 드러내는 것은 푸른색이다. 하여, 작가의 초기 작업은 주로 파란색을 띤다. 물론 공기와 물 자체에는 색이 없지만, 빛의 산란 작용으로 인해 파랗게 보인다. 태양광이 공기 중의 질소, 산소 등의 입자와 충돌할 때 밀도가 높고 가시거리가 짧은 청색광에 의해 우리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태양과 지표면의 거리가 비스듬하게 길어지는 석양은 적색광에 의해 붉은 하늘이 된다. 이러한 원리를 깨달은 이후, 작가는 대상에서 가시화되는 색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색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매개되는 원리를 바탕으로 어떤 색이 도출되는지 그 과정을 담아낸다. 이는 공기의 색을 담아냈다는 의미의 작업, <Breathing light-Air>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Breathing hue-red in the blue> 2015 

캔버스에 물, 아크릴릭, 우레탄, 에폭시 59x54.5cm





한국적 풍토성, 칠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은 물론 인내와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 과정을 보자면 우선 특수하게 제작된 수채화용 캔버스 천을 바닥에 펼친다. 그리고 원하는 색채의 아크릴 물감을 물에 엷게 풀어 캔버스 천 위에 붓는다. 이때 캔버스 천 아래에는 장판과 스펀지, 벽돌이 물을 얕게 고이게 할 만큼 경사를 준다. 시간이 흘러 물감의 안료가 침전되고 물과 색이 분리되면 조심스럽게 물을 따라낸다. 자연광을 이용해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최종적으로 침전된 색채가 얇은 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한다. 층마다 색의 차이를 주면서 중첩시키기도 한다. 다양한 색 층이 누적되어 최종적으로 오묘한 색상을 만든다. (화면의 주변부를 자세히 관찰하면 각각의 층을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의 원류를 과거부터 전해져 온 한국미술의 풍토성(風土性)에서 찾았다





<담색물성(潭色物性)>(5.16-6.15, 웅갤러리) 설치 전경 

 



고려불화에서 활용된 배채법(背彩法)과 조선시대 초상화의 육리문(肉理紋)은 피부의 형태와 색을 담아내는 전통적인 명암법이다. 안면에 은은한 색감을 쌓고 무수한 붓질을 가해 미세한 음영을 만든다. 얼굴 면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운 색으로 피부의 결을 따라 그리면서 인물의 특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표현한다. 이는 단지 당시 화원들이 구사한 기술적인 특성이 아닌 인물의 인격과 정신을 담기 위한 우리 미술의 전통이다. 고려청자도 그렇다. 청자의 비색은 회청색의 바탕흙이 어우러져 엷은 녹색과 밝은 회청색이 유약에 의한 빛의 굴절과 만나 오묘한 빛깔을 만든다. 그 청명한 빛깔은 단순한 색채와 다르게 보이는데, 이는 청자를 보며 색이 좋다기 보다 빛깔이 좋다고 감탄하는 표현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김택상 역시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맥락에 대해 보다는 의 축적으로, 보다는 빛깔의 구현으로 접근한다고 전했다. 문화와 예술은 그 나라의 삶과 역사 속에서 발현 될 때 가장 자연스럽다 믿기 때문이다.

 



<Breathing light-orange air 20172> 2017 

캔버스에 물, 아크릴릭 57×48cm 





색면의 깊이가 주는 숭고미


1960년대를 전후로 활동한 작가 마크 로스코는 색면을 통해 인간의 정신성을 추구했다. 로스코의 색면 추상은 색채로 꽉 차 있지만 색채의 형태와 관계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발현되는 인간 고유의 감정에 더 큰 의도를 두었다. 로스코의 색채 앞에서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거나 종교적 체험을 했다는 일화는 많다. 작가의 사색과 고뇌가 담긴 색면은 보는 이가 시각적 경험을 넘어선 숭고미에 대한 깨달음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김택상의 작업 또한 색채가 갖는 시각적 효과 못지않게 보는 이의 명상적 체험을 중시하고 있다. 수없이 중첩된 시간의 겹, 자연과 빛을 담은 작가의 노력이 숭고함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로스코의 화면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도래하던 혼란의 시대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거하고 남은 색채인 반면, 김택상의 화면은 자연과 이 땅의 이치를 담아낸 꽉 찬 색면이다. 웅갤러리에서 열린 <담색물성(潭色物性)>전에 참여했을 때 전시의 제목이 엷은 색을 뜻하는 담색(淡色)이 아니라,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못 담()자를 쓴 것도 그런 이유다. 로스코와 김택상의 회화는 각각 색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시대와 지역이 다를지라도 관람객에게 숭고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김택상 개인전>

(2010.10.19-10.31 풀꽃 갤러리 아소) 설치 전경




김택상이 30년의 시간동안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여 지속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 자연과 전통을 이해하면서 작업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것.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설렘 덕분이다. 작가는 자연의 빛깔을 캔버스에 담아 예술과 미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다. 또한, 명상과 치유를 예술의 큰 역할 중 하나로 봤다. 관람자가 작품에 몰입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관람자의 몰입적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비가시적인 빛을 가시화하기 위한 작품의 긴 제작 과정이다. 이런 이유로 김택상의 작품은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세밀하게 보아야 한다. 그래야지 작가가 작품을 대할 때의 섬세함, 그리고 연애하는 듯 한 설렌 감정의 집적을 느낄 수 있다. 단지 색면 추상의 한 분류로, 단색화 그룹의 일면으로 판단해 넘기지 말자. 김택상의 회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일부를 인용해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김택상 

© 이진영


 



작가 김택상은 198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를 나왔다. 1992년 서울 서화갤러리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청주장흥파주부산대구 등 전국 각지를 비롯해 일본미국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선뵌 바 있다현재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비주얼아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