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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7, Jun 2021

이아린_더 그린 룸

2021.5.12 - 2021.5.17 갤러리 인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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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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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실로 진실되고 투명한



연극에서 배우와 공연자의 대기실을 일컫는,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간 ‘그린 룸(Green Room)’. 동명의 연극용어를 차용한 전시는 1층과 지하 1층, 두 개의 무대를 배경으로 작가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점철된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공연을 이끌어가는 연출자이자 기획자로서 이아린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의 작품 중 공간과 분위기를 고려해 선택하곤 각각을 독립적인 캐스트로 등장시킨다. 전시는 극이 시작되기 전의 설렘과 불안, 공연이 진행될 때의 긴박함과 혼란, 모든 것이 끝난 후의 고요와 정적 등이 혼재하는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공상의 벽(Day-dreaming Wall)’(2017-2019)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왼쪽 벽면 한쪽에 아카이브 형식으로 걸려있는 페인팅 작업 25점은 반 층 위 공간까지 채우며 그 이름에 걸맞게 다분히 서사적이고 내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령 <침묵 속의 휴식(Resting In Silence)>(2019), <떠오르는 마음(Floating Heart)>(2017), <혼란의 방(A Room of Confusion)>(2019), <내가 녹아내릴 때를 기억한다(Remember When I was Melted)>(2019), <벽 뒤의 누군가(Someone Behind the Wall)>(2018), <내가 사랑한 순간(The moment that I Love)>(2017) 등이 그것이다. 하나의 단편 시리즈 제목 같기도 한 일련의 작품은 작가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느낀 감정을 다시금 일기장에 기록하듯 보여준다. 이때 증폭되는 감정의 총체는 대비가 뚜렷한 원색 사용과 액자 프레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기밀하게 작용하는데, 이는 표현적으로는 과감하고 명확한 경계를, 심리적으로는 묘한 불안과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공상의 벽’을 지나면 조각 작품 <내 안에 피어나는 꽃(The Flowers Bloom within Me)>(2018)과 회화 작품 <욕망이 꽃피우는 날(The Flowering Day of Desire)>(2017), <자화상(Self Portrait)>(2017)이 반 층 아래 ‘쿵쾅거리는 심장과 상기되는 얼굴(Pounding Heart and Flushing Face)’(2017) 연작과 함께 어우러진다. 이는 작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위치 또는 지위로 인해 받았던 사회적 억압과 압박을 담아낸 집합체로, 경험에 기반한 솔직한 감정과 느낌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무대는 지하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이용해 조금 더 비밀스러운 장소로 꾸며진다. ‘공상의 벽’과 연결되는 16개의 회화작업 시리즈 ‘찰나의 벽(Momentary Wall)’(2020)을 비롯 어릴 적 할머니가 운영하던 앤틱 가구점에서 영감을 받은 <내 안의 방(The Rooms In Me)>(2020), 벽면에 스크리닝되는 기록물적인 영상들과 이를 재현한 설치작까지,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의 향연은 극의 분위기를 더하며 피날레를 성대하게 장식한다. 특히 영상작업은 <네 개의 벽(Four Wall)>, <나의 불면증의 증거들(The clues of my Insomnia)>, <당신은 초대되었습니다(You are Invited)> 등의 시퀀스로 상영되는데, 각각의 주제에 따라 클로즈업, 화면의 전환, 음악, 색감, 디테일 등의 요소가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커튼콜을 연상시키며 작품을 더욱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지각하게 만든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면 그의 기억과 경험에 비추어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아마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기 때문일 테다. 어렵게 뱉은 말과 이야기마저 너무나 쉽게 퍼져나가는 세상. 그렇기에 어떤 종류의 이야기는 합의되지 않은, 약속되지 않은 누군가에겐 결코 전달될 수 없는 그 안도감이 발화에 힘을 더하기도 한다. 연극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방백(傍白)은 등장인물의 혼잣말 대사라는 점에서 독백(獨白)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관객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특별함을 지닌다. 일종의 암묵적 약속과도 같은 장치는 전시장에서 방백의 주체이자 발화자인 작가와 관람객이자 청자인 나 사이의 자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부여받은 이 약속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실행할 수 있다. 실로 솔직하고 투명하게, 그간 삼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 그 용기를. 




*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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