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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3, Aug 2023

김태호_말 없는 말이 하는 말

2023.5.27 - 2023.8.15 대추무 파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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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은 문화예술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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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쓸모


1.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소설 「풍경의 쓸모」는 사진 찍는 순간을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인 순간으로 묘사한다. 한편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풍경”은 “하얗게 날아”가고, 오래된 사진 속 표정은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해상도 낮은 미소”를 띤다. 언젠가는 잊힐지 모를 순간과 그 순간을 둘러싼 시간을 붙잡는 풍경들은 사라지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빛바랜 사진 속 풍경의 쓸모를 묻는 화자의 정서는 낮은 해상도만큼이나 어둡지만, 잃어버린 것은 언젠가 지녔던 것. 없어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 시간은 그걸 기억하고 그 기억은 쌓여 있다.

그렇다면 작가 김태호의 개인전 <말 없는 말이 하는 말>에서 관람객 스스로 불러내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오랜만에 떠오른 이미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것과 같다. 빛바랜 사진처럼, 플래시와 함께 하얗게 센 자리처럼 사라져가거나 사라진 풍경은 지난 시간에 대해 아련하면서도 생경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럼 이런 감정은 어떤 쓸모를 갖는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고픈 절실함을 환기하는 것만으로 쓸모를 설명할 수 없다면, ‘말 없는 말이 하는 말’이라는 말의 모순만큼 모호한 그림 앞에서 풍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2. 펄감 또는 금속성을 띠는 파스텔톤 캔버스가 띄엄띄엄 걸렸거나 일직선으로 줄 맞춰 늘어선 배치는 크기가 크지 않은 이미지를 아주 크게 확대한 다음 집어낸 픽셀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테트리스’ 게임을 해본 관람객이라면 화면 위쪽에서 내려오는 블록과 아래에 쌓인 블록들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픽셀을 닮은 화면은 ‘말’과 ‘말 없음’이라는 화두를 불러낸다.

캔버스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말이 되기도 하고 말 없는 잔상이 되기도 한다. 말이 되었다가 말 없는 잔상이 되기를 거듭하는 감상은 ‘말 없는 말이 하는 말’로 수렴할 수 있을까. 관람객의 마음에 떠오른 이미지가 제각각이듯 전시장 한 편에 모인 독특한 오브제들은 작가의 마음에 남은 이미지들을 구현한다. 이 이미지들이 색면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는 관람객은 제 마음속 이미지들을 색면으로 추출하는 과정에 동참할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마음속 이미지를 아주 크게 확대한 다음 집어낸 픽셀은 어떤 색을 띨까.



전시전경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라는 작가의 말은 말 없는 그림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하는 듯도 하다. 작품 정보를 알리는 캡션이 없는 전시는 그래서 모호한 한편 관람객의 자유로운 감상에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 말로 된 정보를 되도록 멀리하고픈 작가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말로 전시장 입구에 짧은 서문을 남겼고, 최소한의 말을 이정표 삼아 관람하는 전시는 작가의 이력을 잘 알지 못하는 관람객에게 물음표로 남을 테다. 다만, 말로 된 정보 대신 작가가 40여 년간 수집해 온 다양한 사물을 들여다보며 감지한 정보가 색면을 다시 보고 달리 보게 하는 나침반이 되어 관람 동선을 안내한다.  

3. 좁고 긴 나무판을 겹겹이 이어 붙여 만든 구조물은 건물 안에서 밖으로 이어진다. 유리로 된 벽면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 설치된 구조물은 마치 벽을 뚫고 이어진 듯 보인다. 영동지방의 높새바람을 형상화한 구조물은 색면화한 풍경과는 다른 결로 현현한 풍경의 일면을 내보인다. 마음속에서 빛으로 화한 풍경의 인상이 색면이라면, 마음속에서 감촉으로 화한 풍경의 인상은 날개를 닮은 구조물이다.

말 없는 말이 하는 말로서 시각적 조형물을 제시하는 작가의 바람은 관람객의 상상력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일 테지만, 말에 익숙한 관람객에게 ‘말 없는 말이 하는 말’은 난해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말 없는 그림과 말없이 교감하는 가능성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이번에 전시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 가운데 의자를 그린 그림이 있다. 사진의 피사체처럼 그림의 중심을 잡는 의자의 무게감은 의자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의 쓸모를 생각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라는 작가의 깨달음에 공감하려면 거듭 보고 오래 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시장 2층에는 편안한 의자가 여럿 놓여 있고 벽면에는 은은한 색감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의자에 앉아 그림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한쪽 벽면의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탁 트인 풍경을 눈에 담는 시간과 맞물려 마음속 풍경의 인상을 어떤 색으로 남길지 모른다. 안팎을 드나드는 바람처럼 안팎을 드나드는 풍경의 가능성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한편 모든 것이 되기도 하는 풍경의 어떤 쓸모는 그 모호한 존재감에 있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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