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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3, Aug 2023

도리스 살세도
Doris Salcedo

활짝 꽃피웠던 시간은 모두 거짓말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Fondation Beyeler 제공

[Palimpsest] 2013-2017 Hydraulic equipment, ground marble, resin, corundum, sand and water;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Fondation Beyeler, Riehen/Basel 2022 Courtesy of Doris Salcedo and White Cube © Doris Salcedo Photo: Mark Nied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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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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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에 꽃잎을 연결한 <A Flor de Piel>(2013-2014)이 바닥 전체에 부드러운 파도처럼 펼쳐져 있다.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는, 수천 혹은 수만에 달하는 송이의 장미 꽃잎을 화학적으로 보존한 후 수술용 실을 사용해 손으로 미세하게 꿰맸는데, 이 장막에 갇힌 꽃잎들은 마치 삶과 죽음 사이의 상태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사랑과 열정의 상징이었던 그 붉은 꽃 이파리들은 이제 너무나 연약해 살짝만 스쳐도 찢어질 듯한 상태가 되었다.

작품 제목 ‘A Flor de Piel’을 곧이곧대로 영어로 번역하면 ‘To flower of skin’이지만, 스페인어 뉘앙스 상 이는 감정적으로 압도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을 설명하는 표현인 까닭에 ‘on edge’ 혹은 ‘raw’로 옮기는 게 보다 정확하다. 형식적으로나 색채로도 어떤 것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살세도의 작품은 배려와 상처가 공존하는 다각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Fondation Beyeler)에서 살세도의 <A Flor de Piel>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약속한 듯 팔다리를 오그려 몸을 낮춰 앉는다. 2012년 완성된, 장미 꽃잎을 하나하나 연결한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다. 자연스레 형성된 주름 끝 여백을 조용히 걷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쪼그려 앉은 채 하염없이 디테일을 살핀다.



<A Flor de Piel II> (detail) 2013-2014 
Rose petals and thread; dimensions variable  
© Doris Salcedo Photo: Patrizia Tocci Presented 
as part of the D.Daskalopoulos Gift to Tate



그저 조용하고 우아해 보이는 작업은 실은 납치돼 고문으로 사망한 콜롬비아 간호사의 삶에 대한 살세도의 연구 맥락에서 고안된 것이다. 타이틀이 압박적인 상황을 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품에 구현된 바느질의 행위와 살갗 같은 표면 그리고 주된 재료 모두,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도 폭력과 고통을 묘사할 수 있는 살세도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바이엘러 재단은 전 세계 아트 피플이 모이는 6월의 바젤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콜롬비아 예술가 도리스 살세도의 전시를 내걸었다. 어쩌면 폭력적 갈등의 경험과 영향을 다룬 그의 작품이야말로, 뜨겁고 빠르고 즉물적인 바젤의 여름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된 걸지 모른다. 그리고 미술관의 그러한 기획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현대미술을 쫓던 많은 미술인은은 살세도의 전시에서 비로소 가슴과 머리를 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과 콘크리트부터 목재가구, 옷, 바늘처럼 일상적 오브제는 물론 풀, 물, 꽃잎, 머리카락 등 일시적 재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는 작가는 세심한 수작업으로 물체를 독특하게 연결하거나 겉보기에 모순되는 재료를 조합한다. 그는 종종 특정 사건을 작품의 시작점으로 삼지만 누구나 공감하고 기억하는 보편적 도달 범위에 결과를 갖다 놓는다. 그리고는 추가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 제목을 붙인다.  



<Atrabiliarios> 1992-2004 Shoes,
 drywall, paint, wood, animal fiber, and surgical thread; 
dimensions variabl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Accessions Committee Fund purchase: 
gift of Carla Emil and Rich Silverstein, Patricia and 
Raoul Kennedy, Elaine McKeon, Lisa and John Miller,
 Chara Schreyer and Gordon Freund, and
 Robin Wright © Doris Salcedo Photo: Ben Blackwell



살세도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려면 먼저 몇 가지 키워드를 숙지해야 한다. 작가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전시를 기획한 바이엘러 재단 큐레이터팀 또한 전시 가이드에 이 사항을 각별히 안내한다. 살세도에 관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시인 ‘폴 첼란(Paul Celan)’. 1920년 당시 루마니아의 일부였던 체르니우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첼란은 독일어 시인으로, 그의 부모는 둘 다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됐으나 그만은 가까스로 탈출해 살아남았다.

이후 파리에 정착해 독일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자신의 작업을 정의하는 힘으로 늘 독일어에 대한 성찰과 수용소 탈출 후 겪은 ‘홀로코스트’를 대체하는 쇼아(Shoah)에 대한 경험을 꼽았던 첼란은 197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세도는 첼란의 시구를 작품 제목으로 삼거나 부제로 가져옴으로써 첼란에게 철학적 영감을 얻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또 다른 키워드는 ‘콜롬비아 내전(Colombian Civil War)’이다. 좌우익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1964년 시작된 내전은 2016년 정부와 게릴라 단체 간의 협정이 논의될 때까지 반세기 동안 계속됐으며 각종 카르텔, 마약과 연관됐다. 작가의 거의 모든 생애 그리고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내전의 영향을 받았을 터이니 그것이 작품에 녹아든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Untitled> 1989-2014 Cotton shirts,
 steel, and plaster;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Doris Salcedo Studio, Bogotá 
2013 © Doris Salcedo Photo: Oscar Monsalve 
Pino Collection of the artist



나머지 키워드 또한 ‘학살(Massacres)’과 ‘실종자(Disappeared persons (‘los desaparecidos’))’, ‘게릴라군(Guerrilla fighter)’으로 살세도가 집중하는 주제 모두 무겁고 진지하며 비평화적 맥락임을 드러낸다. 강철과 석고, 면 셔츠 및 동물 조직으로 1989년부터 2014년까지 계속해서 작업해온 <Untitled>는 살세도의 작품과 키워드가 연결되는 지점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금속 침대 프레임에 접힌 흰색 셔츠를 차곡차곡 끼우고 작가는 그것들을 줄지어 늘어세운다.

전체적으로 호스피스나 병원을 연상시키도록 연출되는데 자세히 보면 침대 틀은 상처 드레싱 재료처럼 동물의 가죽으로 싸여 있고, 일부는 셔츠가 단단히 감겨져 있다. 쌓인 셔츠는 회반죽으로 단단해졌고 긴 금속 막대로 가슴 높이를 꿰뚫은 설치는 부재하는 인체에 가해진 폭력을 상징하는 제스처다.

이 작업은 1988년 준군사 세력이 콜롬비아 북부 바나나 농장 노동자 살해한 우라바 대학살에서 출발했는데, 하나의 특정 사건에 초점 맞췄다기보다 군사, 게릴라 단체, 정치적 반대파들이 자행한 학살로 발기발기 찢겨진 콜롬비아 역사를 재현한다. 일반적으로 옷가지와 옷에 묻어 있는 흔적은 범죄 수사 시 중요한 증거가 되는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개성이 벗겨지고, 획일화되고, 익명이며 상호 교환이 가능토록 그것들을 늘어놓음으로써 무뎌진 도덕성, 폭력의 무감각함을 상기시킨다.  

작품 <Atrabiliarios>(1992-2004)는 어떤가. 살세도는 벽에 네모난 틀을 만들어 신발을 넣곤 반투명한 양피지 같은 재질과 수술용 실로 앞을 막아 버렸다. 큰 전시 공간에 대체 몇 켤레인지도 모를 신발들이 있는데 대부분 제 쌍을 갖췄지만 더러 한 짝인 신발도 있다. 인간의 몸을 대신해 어떠한 사람의 흔적으로 인식되는 신발을 벽에 고립시켜버림으로써 그게 누구의 것인지 관계를 상실토록 한 작업을 만들고 작가는 ‘애도와 관련된 우울함’을 묘사하는 제목을 붙였다. 수년에 걸쳐 살세도는 사라진 사람들의 신발을 수집했다. 그들의 개인적 이야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물 같은 작품은 그들 각각의 특별한 의미를 강조한다. 외과용 실로 벽에 꿰매진 막은 모순적 연관성을 이끌고 상처를 마치 보호된 것 같은 물체는 은폐를 연상시킨다.



<Untitled> 1998 Wooden armoire with glass, 
concrete, steel, and clothing; 183.5×99.38×30.8cm
 Installation view Pérez Art Museum, Miami, Florida 
2016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Lisa and John Miller © Doris Salcedo 
Photo: David Heald



내전이 지속되는 나라에서 ‘실종’이란 대단히 위협적인 단어일 것이다. 실제 국립역사기억센터(Centro Nacional de Memoria Histórica)에 따르면 1964년 이후 콜롬비아에서는 총 8만 742명이 실종됐는데, 2016년에 설립된 실종자 수색대는 납치, 전사 또는 행방불명으로 강제 징집된 사람들까지 포함해 총 실종자는 10만 명이 훌쩍 넘는다고 주장한다. 누군가의 실종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심리적 영향을 미치며, 그들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이 불안과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회적 구조를 파괴한다고 학구적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살세도의 최근 작업 <Disremembered>(2020-2021)는 옷과 바느질 바늘로 만들어졌다. 실크 실로 느슨하게 짠 거의 투명한 블라우스 네 벌이 벽에 걸려 있다. 보는 이의 시점과 빛의 입사각에 따라 소재의 가시성이 높아지거나 낮아질 정도로 섬세한 직물엔, 수천 개의 바늘이 꽂혀 있다. 날카로이 관통한 쇠바늘들 탓에 그저 은은한 그라데이션 문양의 옷이라 여기고 가까이 다가서던 이들은 목 뒤가 서늘해짐을 느낀다.

부서질 듯 연약하고 가벼운 몸통에 가차 없는 고통을 융합한 작가는 ‘잊혀진’이란 뜻의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이 제목은 반어법이다. 2010년대 중반 한차례 만들었고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완성한 이 시리즈는 시카고에서 무장 폭력으로 자녀를 읽은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는데, 미세한 바늘로 자아내는 의도적으로 불규칙한 패턴이야말로 여성들의 영원히 잊히지 않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Plegaria Muda> 2008-2010 
Wood, concrete, earth, metal and grass, 
166 part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CAM–Fundação Calouste Gulbenkian, 
Lisbon 2011 © Doris Salcedo Photo: White Cube
 (Patrizia Tocci) Collection of the artist



살세도의 작품은 몇 차례 전 지구적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7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터바인 홀(Turbine Hall)에서 바닥에 깊은 균열을 만든 작품 <Shibboleth I>은 사회적 분리와 배제를 공간적 측면에서 경험토록 제시하며 반향을 일으켰고 2003년 ‘제8회 이스탄불 국제 비엔날레(8th International Istanbul Biennial)’에서는 알마니아인과 유대인 가족의 추방으로 인해 도시의 두 건물 사이에 빈 공간을 약 1,550개의 오래된 나무 의자를 쌓아 채운 <Untitled>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름답지만 결코 평화롭지 않은 주제에 천착하는 살세도. 모두가 아는 고통과 처절함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려놓는 그이지만 그러나 종국엔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무와 흙, 콘크리트와 금속 그리고 잔디로 만든 <Plegaria Muda>(2008-2010)가 이를 어렴풋이 증명한다. 방을 가득 채우는 이 설치물 또한 시작은 로스앤젤레스의 갱단 폭력에 대한 연구였다. 작가는 면밀한 분석을 통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불우한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관 크기의 테이블을 거꾸로 한 쌍씩 겹쳐서 쌓은 살세도는 그 위에 흙으로 된 여러 층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 흙에서 풀잎이 싹을 틔우고 테이블 상판을 통해 자라나는데, 이는 비극적으로 얽힌 수백 명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짝 지워 상징한 것이라고. 무덤처럼 여겨지는 탁자의 흙은 풀을 잉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지속성을 피력한다. 가느다랗지만 생생한 녹색의 풀은 가장 끔찍한 곳에서도 생명이 움틀 수 있다는 믿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PA



Portrait of Doris Salcedo 
Photo: David Heald



작가 도리스 살세도는 1958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보고타 대학교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한 후 뉴욕 대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한 그는 1985년 콜롬비아로 돌아와 전쟁과 폭력의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떠돌았다. 전쟁, 소외, 이동 및 방향 감각 상실이라는 살세도의 인식과 민감성은 그 시기 대부분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번이고 강렬한 작품으로 세계적 관심을 끈 살세도는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이주 흐름을 다룬 작품 <Uprooted>(2020-2022)으로 최근 ‘Sharjah Biennial 15 Prize’를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 뉴욕의 MoMA, 시카고 현대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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