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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6, Jul 2015

앨리스 앤더슨: 데이터 공간 디지털 시대의 기억, 붉은 빛 구리선에 새겨지다

France

Alice Anderson: DATA space
2015.6.5-2015.9.20 에스파스 루이비통

지금으로부터 약 8세기 전 태동한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원근법이 존재했다. 만물의 이치를 인간의 눈을 통해 꿰뚫을 수 있었던 시대. 이 화려한 역사 속에서 인간이 바라본 세상은 곧 무결점의 이미지와 새로운 도시들로 구현되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세상을 정확히 재단하고자 했던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둠상자 속에서 거꾸로 맺힌 세상의 모습을 관찰한 거장들의 측량과 재단의 기술적 전통이 마침내 사진기라는 기계로 진화한 것이다. 사람의 붓질보다 더 정밀하고, 찰나의 순간을 담아낼 정도로 더 신속해진 사진기는 인간의 삶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비록 사진 그 역시 가상일지라도, 현실을 꼭 빼다 닮은 사진이미지의 사실적인 묘사력은 화가의 눈과 손, 그리고 회화를 재현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어디 이 뿐인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마저 정지시켜버린 사진기는 인간의 기억마저 대신했다. 세월이 흘러 점점 흐릿해져 가는 우리의 기억은 사진 속 멈춰버린 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화폭에 건설된 이상적인 세계를 발견한 르네상스시대의 사람들, 사진의 놀라운 재현성과 복제기술을 눈앞에서 지켜본 19세기의 사람들은 과연 다가올 새로운 미래의 문명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거장들이 화폭에 남긴 붓질은 미술관 벽을 촘촘히 메우고, 얇은 젤라틴 필름조각 위로 빛이 지나간 흔적은 먼지가 수북이 쌓인 두꺼운 사진첩에 차례대로 꽂혀있다. 필름카메라가 ‘빈티지’라 불리는 지금, 우리는 또 어떠한 새로운 문명의 변혁과 마주하고 있는가?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Floorboard diagrams' 2015 Fil de cuivre Sculpture de 7 cercles chacun d’un diametre de: 2.24m×15cm×0.02m Courtesy: Alice Anderson Studio&Espace Louis Vuitton Paris ⓒ Pauline Guyon/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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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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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이자, 발자취로 존재해온 과거의 이미지와 텍스트(문자)는 어느덧 아날로그 매체가 되었다. 오늘날의 이미지와 텍스트는 마치 허공에 맺힌 상처럼, 시각으로만 지각될 뿐 손으로는 직접 만져볼 수 없는 무형의 형태로 우리 눈앞에 더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책과, 회화, 사진과 같은 물리적 특성을 지녔던 아날로그 매체의 정보들이 비물질적 상징기호로 치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벌써 꽤 오래 전부터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고, 실상과 허상의 경계가 철저히 허물어진 디지털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인류 최초의 복제기계로 등장한 수동 사진기가 남긴 종이 사진들이 어느새 인류의 마지막 물리적 이미지가 되어버린 시대. 아라비아 단 두 개의 숫자 ‘0’ ‘1’로 조합된 수열이 무한히 펼쳐지는 연산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수천만 개의 픽셀들로 쪼개어지고 부서진다. 




<Skylights> 2015 Fil de cuivre 12 

sculptures 0.89×0.66m Courtesy: 

Alice Anderson Studio&Espace Louis Vuitton Paris 

ⓒ Pauline Guyon/Louis Vuitton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 침묵이 흐르는 깊은 사유의 시간도, 메모할 종이와 연필도 아니다.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오르는 높은 비트의 값과 픽셀의 수만이 필요할 뿐이다. 사유의 시간과 아날로그감성을 송두리째 잠식시킨 디지털문명과 함께 현대미술의 큰 근간을 이루는 미디어아트 역시 거대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출현, 뉴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실험적인 표현양식들은 디지털문명을 뒤이어 등장할 미래의 모습을 예견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문명이 가속화될수록, 선 미래적 예술작품만큼이나 고전적인 작업형태와 방식, 아날로그 시대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 역시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영국 출신의 떠오르는 신예작가 앨리스 앤더슨(Alice Anderson) 역시 디지털문명에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루이비통 본 매장건물의 꼭대기 층은 지난 6월부터 앤더슨의 <데이터 공간(DATA space)>전을 선보이는 중이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앤더슨의 이번 작업들은 매일매일 홍수를 이르는 정보들의 저장 공간을 테마로, 디지털시대에 인간의 기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Cut-out sculptures> 2014

 Maille de cuivre Dimensions variables Courtesy: 

Alice Anderson Studio&Espace Louis Vuitton Paris 

ⓒ Pauline Guyon/Louis Vuitton 





작가의 아름다운 붉은빛 머릿결처럼, 반짝이는 얇은 구리선 뭉치들이 거대한 조각 작품이 되어 관객을 반긴다.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모두 단 하나의 마티에르(matiere)인 구리선으로 완성되었다. 촘촘하게 감긴 구리선들은 입체 원 고리와 직육면체, 광선형태 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상을 구현한다. 앤더슨이 작품 각각의 조형성을 위해 찾아낸 오브제들은 바닥에 까는 나무판자, 조명기구를 덮은 포장커버, 엘리베이터의 직육면체 박스와 같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품들이다. 긴 구리선으로 수차례 감긴 조각들의 표면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오브제들의 형체를 감쪽같이 숨기고, 구리선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유연한 질감을 드러낸다. 캄캄한 우주로부터 떨어진 듯한 거대한 암석들의 모양을 한 <천장채광창(Skylights)>(2015)은 구리라는 마티에르가 가진 질감을 완벽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곧지만 잘 휘어져 형태가 손쉽게 왜곡되는 구리의 특수한 성질 때문에, 구리선이 감기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선의 곧음과 휘어짐은 어두운 전시공간을 밝히는 조명에 반사되어 풍부한 입체감을 자아낸다. 앤더슨은 이처럼 상반된 특성을 지닌 구리를 통해 조형적인 미를 선사하는 한편, ‘전기 이라는 테마를 구리에 결합시켜 디지털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Connexions> 2015 

Fil de cuivre 2.20×1.77m Courtesy: 

Alice Anderson Studio&Espace Louis Vuitton Paris 

ⓒ Pauline Guyon/Louis Vuitton





구리선으로 뒤덮인 여러 개의 긴 막대들을 수직으로 서로 교차시켜 발산하는 광선을 재현한  <빛의 흔적들(Lighting tracks)>, 정신없이 뒤엉킨 전기선을 형상화한 <Connexions(접속)>(2015)은 전기와 빛으로 생명을 얻는 디지털시스템의 원천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전시공간의 한 복도벽면을 가득히 메운 <엘리베이터와 케이블(Elevator and Cables)> 역시 마찬가지다. 덩그러니 놓인 직육면체형의 엘리베이터박스와 그 공간을 끌어올리는 약 20m에 이르는 다섯 개의 기다란 줄은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기의 커다란 존재감을 일깨워준다. 사실, 앤더슨이 작업을 위해 선택한 빛과 전기, 구리는 우리 삶과 그리 동떨어진 오브제들이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통씩 주고받는 전자메일과 메시지에서 거리마다 걸린 대형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하루에 스치는 수많은 정보들은 빛과 전기를 통해 얻어진다. 빛과 전기가 공급되는 도처에 구리선들이 널려있다. 작가 역시 그랬다. 어느 날 우연히, 앤더슨은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자신을 깨우던 알람시계의 내부를 열어보았다. 그 때 발견한 얇은 구리선줄 하나, 그 줄 속에는 21세기의 이미지, 텍스트, 우리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담겨있었다. 


검은 의상을 입은 채, 말없이 구리선을 감고 있는 앤더슨과 동료들이 함께한 작업과정 영상은 흡사, 고대시대의 주술, 제례의식을 보는 듯하다. 무리를 지어 하나의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업과정은 디지털시대의 인간의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것들이 쉽게 기록되고 저장되는 디지털문명 속에서 인간의 행위와 기억을 물리적 흔적으로 남기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빚은 구릿빛 조형물들은 새로운 경험의 시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동일한 구리선,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지만, 각각의 경험은 그녀가 완성한 각기 다른 형태의 조형물들처럼 유일한 흔적이 된다. 주술적이며 수공업적인 작업행태, 물질적 형(shape)의 존재, 질감과 조형성이 강조되는 앤더슨의 작업은 상당히 복고적이다. 





<Elevator and cables> 2015 Fil de cuivre 5 cables: 

25m chacun/each cabine:15×1.66×0.89m

Courtesy: Alice Anderson Studio&Espace 

Louis Vuitton Paris ⓒ Pauline Guyon/Louis Vuitton





이처럼 과거로 점점 더 회귀하려는 듯한 디지털시대의 복고적 추세는 현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것도, 과거의 추억에 젖어 감성팔이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회기란, 죽음의 문턱까지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현재 우리가 서있는 곳을 기억을 통해 가늠하게 할 뿐이다. 자신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은 기억을 가진 인간의 본능이다. 온통 붉은 금빛으로 물든 앤더슨의 데이터공간은 모든 것들이 편해진, 하루바삐 돌아가는 세상 뒤편으로 서서히 잊혀가는 것들과 그 사라짐조차 침묵이 되는 것들에 대한 찬가이다. 얇고 가벼운 구리로 된 그물들이 층층이 산처럼 쌓여 <잘라 만든 조각(Cut-out sculptures)>이 만들어졌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조각조각 작게 잘린 구리그물처럼, 우리의 기억은 사라지고, 단절되며, 때론 왜곡된다. 완벽한 디지털 기호와 상징들의 재현만으로 완벽히 채워질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기억이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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