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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0, Nov 2015

안영일
Ahn Young Il

무(無)를 향한 의지-명상과 침묵의 공간

“80년 동안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나와 그림은 이제 분리될 수 없는 것, 바로 나 자신이 되었다. 나에게 그림은 사랑이고 기도이며, 나를 열고 타인에게로 나가는, 또한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 같은 것이다. 그림은 내게 있어 존재의 표현이고 이유이며, 소통이고 해방이다. 화가로 살기 때문에 겪는 고통과 어려움도 많았으나 화가가 아니었으면 못 느꼈을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이 내 삶을 깊게 하고 넓게 해준 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지난 1월 23일 LA 소재 한국문화원 갤러리에서 재미교포 화가 안영일의 초대전이 열렸을 때, 전시장을 찾은 약 200여 명의 관람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병력이 있는 그가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많은 대작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빨강, 초록, 검정, 흰색, 청색, 회색, 보라 등 원색의 단색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반짝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작은 색점들로 뒤덮여 있었다. 안영일 특유의 나이프 그림이 참으로 오랜만에 대규모로 공개된 것이다.<물과 빛의 변주곡>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물의 화가 안영일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자리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기위해 LA에 있는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100호에서 300호에 이르는 대형 단색화 작품들이 시렁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광경을 보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를 직접 대면,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이프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덮여있는 물감의 흔적이 저처럼 불편한 몸에 의해 이루어졌단 말인가. 처음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고 집념에 가득 찬 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의 투철한 예술혼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작가의 말이 시사하듯 “사랑이고 기도이며, 나를 열고 타인에게로 나가는, 또한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사진 세솜 갤러리 제공

'WATER ALG-14' 2014 캔버스에 유채 72×60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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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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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술가에게는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된 계기가 있다. 안영일에게 있어서 ‘물’과의 인연은 삶의 도정에서 찾아온 실의와 절망이 계기가 되었다. 그 긴 사연을 이 자리에서 상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그에게는 도미하기 전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은인과도 같은 한 미국인 후원자가 있었는데, 작품의 판매 건으로 인해 컬렉터인 그와 전속화랑 사이에 송사가 발생했다. 10년간이나 끈 송사의 결과, 컬렉터가 패소하고 화랑은 문을 닫게 된다. 안영일은 이 지루한 송사가 계속되는 동안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격이 돼 몸과 마음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그는 실의에 빠져 그림을 집어치우고 날마다 LA 인근 바닷가를 찾아 젊은 시절부터의 취미인 낚시로 소일했다. 그와 바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기잡이는 한 낱 핑계에 지나지 않을 뿐 그때부터 그는 바다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경제적 궁핍이었다. 송사가 계속되는 동안 그는 그림을 전혀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궁핍의 와중에서도 그의 마음은 송사에서 패소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초래한 은인 스탠리 히텔라(Stanley Hietela)에게 가 있었다. 이 사건은 그에게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었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그림에 대한 일체의 열정과 의욕을 잃게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바다, 그러나 그 바다가 훗날 그 특유의 단색화 양식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줄을 당시만 해도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안영일이 완벽하게 ‘무’를 체험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이 무렵의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처럼 작은 보트를 타고 산타모니카의 해변에서 대양의 수평선을 향해 나갔다. 




<WATER ALB> 2014 캔버스에 유채 72×60inches  

 



송사에 지친 마음도 달래고 그로 인한 좌절감을 극복하고자 찾은 바다였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거기서 짙은 안개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앞에 놓인 자신의 손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순간, 그에게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것 같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하늘과 대양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 깊은 고독감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극지에서 만난다는, 천지가 온통 하얗게 덮여 좌우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whiteout)를 체험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광대한 대양에서 하나의 작은 점을 느끼게 된다. 그때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의 끝에서 찾아온 것, 그것이 바로 ‘무’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나이프에 의해 이루어진 사각의 작은 점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반짝이며 밀려오는 파도의 축소판과도 같다. 그의 회상에 의하면 마침내 짙은 안개가 걷혔을 때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마치 진주로 이루어진 밭처럼 수만 가지의 색으로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던 것이다. 그는 그때의 광경을 가리켜 “심장이 기쁨으로 터질 듯 하고 전신이 흥분으로 떨렸다”고 회고한다. 어쩌면 안영일의 단색화는 오래전 자신이 경험한 이 진기한 광경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싶은 열망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때 받은 감동을 어렸을 적부터 연마한 숙련된 나이프 기법을 통해 양식화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음악에 심취해 왔고 또 그 자신의 피아노와 첼로, 클라리넷을 다루는 그는 마치 음악에서의 스타카토 기법처럼 뚝뚝 끊어지는 비슷한 크기의 사각형 단위를 캔버스 전면에 포치(布置)하는 특유의 양식을 정립한 것이다. 그의 ‘물’ 연작에서 이채를 띠는 부분은 사각형의 단위들 사이에서 빛나는 틈인데, 이는 마치 밀려오는 파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WATER-16> 1996 캔버스에 유채 90×80inches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려 대양에 도달한 광선은 넘실대는 물의 무수한 입자들이 프리즘을 거쳐 나오면서 각가지 색깔로 분해되고 또 반사하며 때로는 영롱하게, 때로는 은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공기와 소리, 그리고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서 변해가는 빛과 광선들, 그것은 단 한 순간도 ‘정지’가 없고 ‘같음’도 없이 ‘재탄생’하고 ‘변화’해가는 그러면서도 영원한 것, 우주의 몸짓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안영일의 단색화는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온다. 그것은 작가 안영일이 자연과 나눈 끊임없는 대화의 결과물이다. 


어느 면에서 예술은 대화가 아니던가. 미술의 경우, 자연을 비롯한 대상과 작가가 나누는 대화, 그 대화는 작품으로 형상화돼 다시 관람객에게로 향하지 않던가. 나는 오랜 세월 안영일을 곁에서 관찰해 온 정숙희 기자의 이 같은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안영일의 그림에는 빛의 출렁임과 파동이 육화돼 있다. 작은 색의 무수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은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망막을 자극한다. 관람객들은 그의 그림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무수한 파도를 느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하나의 유비(analogy)임에 분명해 보인다. 같은 것 같지만 다 다르고, 정지한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철리(哲理)를 안영일의 그림은 하나의 화면에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WATER SLW-15> 2015 캔버스에 유채 90×80inches





안영일의 그림은 사각형의 작은 색점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 같은 반복적 특징은 김환기를 비롯하여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등등 한국의 1세대 단색화 작가들 작품에서 보이는 반복적 특징과 궤를 같이 한다. 안영일은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앵포르멜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1950년대 후반에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앵포르멜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이프를 사용하여 두터운 마티엘을 강조한 갈색조의 작품들은 그가 한때 앵포르멜 화풍에 관심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증거이다. 비록 1950년대 후반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과 교류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화풍 상으로 볼 때 동시대적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영일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이대원이 운영하던 반도화랑에 작품을 전시, 판매한 일은 훗날 그가 미국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거기서 훗날 자신이 은인이라고 부른 미국인 컬렉터 스탠리 히텔라를 만났는데, 그 만남이 그가 도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뉴욕을 거쳐 LA에 정착하게 되는데, 라시에네가에 있는 재커리 웰러갤러리의 전속화가가 돼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컬렉터와 전속화랑 사이에 송사가 벌어져 불행한 일이 발생했던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안영일은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훨씬 길다. 한국 나이로 83세인 그가 1967년 이후 약50년의 세월을 미국에서 보냈으니 한국에서 산 것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세월을 미국에서 보낸 셈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화인(火印)처럼 하나의 원형으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깊이 박혀 있다. 그는 경계인이다. 그의 의식은 자신이 태어난 한국과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캘리포니아 사이에 걸쳐 있다. 90년대에 제작한 ‘캘리포니아’ 연작에 대해 쓴 작업노트에는 그의 감회가 담담하게 기술돼 있다. 그는 예술의 꿈을 좇아 조국을 떠나 낯선 캘리포니아에 정착을 했다. 이곳의 깊고 푸른 태평양을 끼고 달리는 광대한 공간에서 자신은 깊은 안식과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WATER ALG-14> 2014 캔버스에 유채 72×60inches  





연중 내내 피고 지는 꽃들의 잔치가 요술처럼 자신을 사로잡는다고도 했다. 캘리포니아 특유의 작렬하는 강한 태양과 순수하고 투명한 빛은 작품 제작을 위한 특별한 동기를 부여하는데, 그럴 때면 정신이 고양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At the Beach>, <현악 사중주(String Quartet)>, <항구(Harbor)> 등등 ‘물’ 연작에 앞서 제작한 작품들은 구상적 형태를 지니던 추상적 형태를 지니든 간에 나이프에 의한 면의 분할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페인팅 나이프의 사용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체질화된 것으로 위에서 언급한 연작들을 거쳐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물’ 연작에 보다 정교하게 집약되기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다색의 사용이 단색으로 제한되면서 금욕적인 성격이 짙어진다. 그러나 안영일의 작품이 문자 그대로 단색화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보색의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상반된 색을 캔버스 바탕에 칠함으로써 발색의 효과를 꾀한다. 색과 색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가운데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단색으로 보이는 미적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안영일의 작품세계 형성에 미친 요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그는 “회화는 시각예술이지만 예술의 청각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예술에서 음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예술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로 매우 크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그림에서 페인팅 나이프로 이루어진 터치들이 일정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엿보이는 공통적 특징인 바, 작은 사각의 단위들이 반복적으로 축적돼 이루어진 ‘물’ 연작 역시 리듬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WATER G969> 2009 캔버스에 유채 57×44inches





올해 안영일은 겹경사를 맞이했다. 지난 1 LA 한국문화원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진 것을 비롯, 2월에는 롱비치미술관(Long Beach Museum of Art)에서 초대전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LA 카운티미술관(LACMA)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미국에서 작가로서 그의 진가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물’ 연작은 생의 후반기에 그가 거두어들인 예술적 성과로 그에 대한 화단의 평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롱비치미술관 초대전과 LA 카운티미술관 이후 안영일의 예술세계에 대한 미국 주류미술계의 평가는 상승될 전망이다. 특히 작품 제작에 용이하지 않은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새로운 예술의 창조와 갱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보는 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60년에 걸친 창작 활동의 정점에서 그가 맞이한 이 같은 결실은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화가가 갖는 인생의 결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예술의 창조를 위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 하다. 마침 한국의 단색화가 국제화를 맞이한 중요한 시점에 안영일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안영일




작가 안영일은 개성에서 태어나,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 후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미술대학 재학 중 미 대사관이 실시한 공모전에서 미 국무부 심사위원에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한국 뿐 아니라 핀란드, 영국,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 시카고 등지에서 전시를 개최하면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은 그는 지난달 막을 내린 KIAF에 참가해 큰 호평을 받음으로써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 이 원고는 안영일 개인전(2015.10.7-11, 세솜 갤러리, KIAF) 서문을 바탕으로 각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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