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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0, Nov 2015

연기백_곁집

2015.10.6 – 2015.11.28 송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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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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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된 삶의 흔적



연기백이 자신이 수집한 타인의 개인사를 공개한다.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벽지, 장판, 빗물받이 등은 모두 우리의 주거지를 이루고 있는 부속품으로, 집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이런 오브제들은 집주인의 삶을 고스란히 기록하기 마련이다. 유행이 지난 듯한 낡은 벽지, 장판, 흔적을 찾기 어려운 빗물받이는 과거의 우리에게 익숙했지만, 시대의 변화로 인해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선 것들이 되어 버렸다. 현대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먼 이 모든 수집품을 작가는 곁집이라 칭했다. 곁집의 사전적 정의는 본 건물의 부수적인 구조물 형태지만, 작가는 그 의미를 확장해 본체에 의지하는 장치뿐 아니라, 낙서와 같은 삶의 흔적 모두를 아우르는 삶의 태도로 바라본다.

 

 <낙엽이 달을 부수다>는 연기백이 수집한 낙서들을 두 개의 전시장에 나눠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수집된 낙서가 있는 공간 <낙엽이 달을 부수다>를 지나, 낙서의 본을 뜬 비닐들이 전시된 <생각 산>을 통과하면 <낙엽이 달을 부수다>가 이어진다. 전시공간은 어두웠고, 낙서가 남긴 흔적들로 가득 찬 마지막 공간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잘 보이지 않는 탓에 더욱더 집중해서 낙서를 바라보게 했다. 낙서의 내용은 다양했다. 특정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내용이 담긴 소원을 비는 낙서부터, 다소 장난스러운 글귀, 자살에 대한 고찰이 담긴 비관적인 내용까지. 종잡을 수 없는 낙서는 각각 주인들의 무의식의 산물들이면서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의 글이 아니기에 낙서 주인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매체다. 연기백은 지극히 개인적 공간인 주거지, 철거를 앞둔 건물, 한강 다리 등에서 낙서를 수집했다. 타인과의 접촉이 최소화되는 이러한 공간에서, 개인적 산물인 낙서는 얼마나 더 사적일 수 있겠는가?





<교남 55+가리봉 137> 2015 

도배지, 나무 가변크기

 




또 다른 곁집 <교남5+가리봉137> 2013년부터 진행한 것으로, 3개월간 직접 버려진 공간에 입주해 벽지를 떼어낸 장기 도배 프로젝트다. 벽지 디자인 자체로는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생김새가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기백이 주목한 공간은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공간이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벽지 인테리어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며 거주했을리 만무하다. 원래 있던 벽지를 썼거나, 도배집에서 가장 대중적인 벽지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벽지 위에 쓰인 삶의 기록은 달랐다. 많게는 10장 가까이 되는 벽지 레이어는 층마다 거주자의 삶의 흔적이 베여있다. 어느 곳엔 오래된 신문까지 덧 대여 있어 그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커피로 얼룩진 자국, 도배집 광고 스티커, 낙서 등 모든 것이 삶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집주인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벽지를 통해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벽지는 또 다른 연기백의 수집품이 됐다.

 

연기백은 타인의 흔적을 탐구하는 이유에 대해 나를 바라보기 위해 남을 바라보는 것이라 말했다. 나라는 대상을 정형화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며 나 자신을 찾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시장의 여러 장치는 나에게 타인의 인생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이름 모를 그들의 내면을 훔쳐보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익명인 누군가의 마음을 들춰보는 것은 실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어두운 공간은 누군가의 낙서를 통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했고, 개인사로 얼룩진 벽지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전시장에 가득한 타인의 흔적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에 빠져버리고만 나는 보기 좋게 작가의 의도에 걸려들었다작가가 말하는 곁집은 기생적 요소로 평행적이지도 위계적이지도 않은 부수적 존재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우리 삶의 한쪽을 차지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삶을 충실히 기록하는 매체들이며, 동시에 우리의 가치관이 편중되지 않도록 환기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나를 알기 위해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은 객관성이 흐려질 수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삶의 태도를 바라보는 곁집은 타인의 바라보며 동시에 나를 찾는 여정으로 일거양득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든다.  

 


* <낙엽이 달을 부수다> 2015 장판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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