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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예술가와 문신을 새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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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Tatoueurs, Tatoués
2014.5.6-2015.10.18 파리, 께브란리 뮤지엄

16세부터 시작해 온몸을 덮은 문신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준 릭 제네스트(Rick Genest). 그 놀라움도 이제는 옛말이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노출의 계절 여름이 오면, 이제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몸에서 그에 못지않은 문신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문신 모양으로 자기를 과시하기도 하고, 혹은 굳이 밖으로 내보이지 않더라도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곳에 비밀스런 문양 하나쯤 간직하는 것은 이제 유행이 돼버렸다.
● 김혜덕 프랑스통신원

Anony me 'Women wearing tattoos and costumes' Photographie Noir et Blanc, tirage sur papier albumine ⓒ CORBIS pour Bet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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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론연구소(IFOP)와 미국 해리스 연구소가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연구해 내놓은 결과에 의하면, 25-34세의 프랑스인 중 20 퍼센트, 미국인의 25 퍼센트가 문신을 했을 정도다. 전세계적으로 패션, 디자인, 광고, 미디어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이 ‘문신현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후 호주 또는 뉴욕박물관 등지는 ‘문신’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들을 주최하면서 문신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여기, 파리 께브란리(Musee de Quai Branly) 뮤지엄에서 또 하나의 전시 <문신예술가와 문신을 새긴 자(Tatoueurs, Tatoués)>가 열리고 있다. 사실, 문신은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했고, 병의 치유, 신성화 또는 소외나 처벌 등 다양한 목적에 의해 행해져온 지울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HS웰스리서치에 의하면 이미 선사시대에서 문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에선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에서 첫 번째 문신을 언급하나 사실상 1991년 알프스티롤산에서 발견된 기원전 4,500년의 57개 문신이 새겨진 오치(Otzi)인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의 문신에는 특징이 있는데, 주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혹은 상징적인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에선 골관절염치료를 위해서 몸에 특정의 신을 새기거나, 남부시베리아에선 문신으로 사회적인 지위를 표시했다. 그러던 중, 기독교 세력이 19세기까지 마술적이고 종교적인 전통문신을 대거 억압했고, 문신은 주로 범죄의 표시로 상징됐다. 하지만 표면적인 문신 금지이후로도,  중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암암리에 성지의 콥트교도, 아르메니아정교, 일부 기독교인 등에 의해 실행되곤 했다. 




Tin-Tin <Motif de tatouage sur un buste feminin> 

2013 Silicone photo Thomas Duval 

ⓒ musee du quai Branly 




반면에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미주에선 13세기 마르코 폴로 이후 서양대탐험여행가들에 의해 문신이 재발견된다. 일명 ‘문신여행’은 체포된 포로들 또는 모험가들의 여정에 따라 시작된다. 신세계에서 들어온 문신을 새긴 자들은 호기심의 오브제로 보였고,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서양의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즉 미주, 유럽, 일본 등은 문신에 관련한 교류(도구, 사진, 자료교환, 자료 공유)를 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문신은 크게 발전하게 된다. 거의 독점적으로 선원과 모험가들의 피부를 여행하면서, 문신은 유럽 이외의 사회를 채우던 의식적이고 동화적인 기능을 잃는다. 그리고 하나의 예술로서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새로운 문신예술가들을 발굴할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문신은 소외화와 일반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확산되고, 거리와 감옥 또는 공연예술 등에서 불규칙하게 자리를 잡아간다.


유럽이외 다른 지역의 문신의 역사를 살펴보자. 먼저, ‘문신(tatoo)'이라는 명칭이 유래한 마르키즈, 타이티, 하와이 등이 포함된 폴리네시아 지역(문신은 18세기 하와이 제도를 발견한 선장 제임스 쿡에 의해 발견된 폴리네시아 타투(Tatau)라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시대에는 문신이 국가 간에, 종속하는 자와 종속된 자들 사이에서 실행되고 있었다). 동부 폴리네시아의 문신은 분명하게 또 다른 노선을 보여주지만, 19세기부터 시작된 식민지화와 기독교화의 영향으로 동일한 면을 보여준다. 토착종교 시스템의 전복과 외국정부의 설립은, 19세기 간단하고 순수한 문신을 포기하게하고 도상학적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가 되어 이들의 전통문신이 재활성화되면서 폴리네시아의 모티브가 재삽입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La derniere femme Kalinga tatouee> 2011 

ⓒ Jake Verzosa Collection de l'Artiste Philippines




북미에서는 관습적으로 문신을 새겨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행이 크게 국경을 넘지 못한다. 기존의 고전 유럽회화의 도상에 의존하나, 20세기 초부터는 그들의 고유의 특정 그래픽이라 할 수 있는 대담한 색상, 두꺼운 윤곽선이 두드러진다. 문신은 19세기부터 미국대륙에 널리 확산되어 빈민층뿐만 아니라 귀족사회에서도 볼 수 있었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예술의 맥락으로 전향한다. 뉴질랜드의 문신인 모코는 양치류식물에 영감을 얻은 곡선 또는 나선형으로 족장들의 장식용으로 쓰였으며, 사모아 섬에서의 문신은 의식의 수단이었다. 특히, 남자들은 결혼을 하기위해서 또는 자신이 속한 족속의 파워를 자랑하기 위해, 원기 왕성한 젊은 남자의 그룹의 상징으로서 문신을 새겼다. 한편, 20세기 상반기, 보르네오,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문신은 식민지화와 선교사의 영향으로 인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강력한 지배적인 세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지리적인 조건과 접촉으로 인해 전통적인 문신은 암암리에 계속 실행됐다. 이들의 문신은 정령숭배와 머리사냥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현재 유동인구와 도시화된 삶에도 불구하고 원시적이고 토착적인 문신의 형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Mark Kopua 

<Motif de tatouage sur un corps masculin> 

2013 Silicone Photo: Thomas Duval 

ⓒ musee du quai Branly




태국문신, 사크얀(Sak Yan)이 겪은 역사 역시 유사하다. 전통적인 애니미즘과 브라만교와 불교에서 나오는 복잡한 시스템을 지닌 사크얀의 도상학은 주로 신들과 동물로 표현되는데, 신성한 기복이나 건강과 직장 생활을 보호하는 부적 역할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유럽선교사들 영향으로 거의 쓰이지 않던 문신은 17세기 이후 다시 활성화되어 국민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주고 있다. 중국의 문신은 복합적이고 여러 상징을 나타낸다. 기원전 500년 유교원리는 몸에 하는 문신을 배척했다. 서서히 문신은 상류사회에 의해 징벌로서 허용되어 실행되기도 했고 학자나 고위 인사층에 의해 멸시되면서,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외부의 소수민족에게만 영속됐다. 중국에서 문신은 정상적으로 인정받진 못하지만, 약 15년 전부터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본문신과 미국문신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일본문신의 역사는 17세기 일본 북쪽에 사는 아이누족이 문신에 사회의 장식적인 역할을 부여하면서 절정에 이르렀고, 1872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새로운 세대에겐 열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놀라운 장수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문신은 사회적인 배제 또는 부차적인 삶의 기호로 간주되었고, 아시아에선 예외 없이 하층민에 속하는 것이었다. 오직 일부에서만 사회적 위치나 자부심을 상징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자부심과 쇼의 상징으로 영구화됐다. 문신이 탐구예술적인 표현의 하나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유럽과 아시아, 북미 문신예술가의 끊임없는 기술적, 예술적 면모에서의 혁신에 있다. 1891년 미국인 사무엘 오렐리(Samuel O’Reilly)가 발명한 전기문신기계는 문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보급을 촉진한다. 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신의 국제적인 대화는 더욱 강해지고, 1953년 영국 브리스톨에선 일본문신모델에 따라 첫 번째 문신 국제규약클럽이 설립되면서 문신의 글로벌한 재건을 알린다. 또, Tin-tin(프랑스), HoriyoshiIII(일본), Filip Leu(스위스), Jack Rudy(미국), XEDLe Head(영국), Chime(폴리네시아) 등 소수 문신예술가들의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현대 문신의 기술과 코드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제, 의식, 마법 또는 사회적인 모든 용도를 넘나드는 문신은 하나의 예술행위로서 간주된다. 이번 전시는 문신을 향한 현대사의 흥분을 반영하는 한 대목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Vue de l'exposition Photo: Gautier Deblonde 

ⓒ musee du quai Branly




새로운 기술 출현과 근접이 수월해진 세계는 문신의 두 번째 예술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문신예술가 사이의 정보이동과 교환은 새로운 문신라인의 출현을 도발하는 한편, 잉크를 스며들게 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문신은 점차 정교하게 온몸을 장식하며 그 크기가 확대되어간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 알려진 문신예술가들은 문신을 진정한 예술의 한 움직임으로 이끌어가려 노력하고 따라서 조형적으로 흠잡을 수 없는 문신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시는 기존의 문신이 가지고 있던 조형성과 현대적인 변형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가장 오래된 문신부터 최근의 문신까지를 광범위하게 선보인다. 이를 살펴보면서 관람객은 첫째로 그 형태들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둘째로는 맥락을 따라 역사적인 발전성과 지리적인 특이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현대 작품을 보는 미적 관점을 문신에 투영시켜볼 수도 있으니, 굉장히 포괄적인 전시라 하겠다. 전시된 300여 점의 작품은 그 자체가 스스로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다양한 문화적 증언으로 역할하고 있다.  



글쓴이 김혜덕은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보자르와 조형미술석사를 졸업한 후,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기획전에 초대된 바 있다. 현재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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