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10, Nov 2015
미리 보는 포스트휴먼들의 사회
France
Julien Previeux Prix Marcel Duchamp 2014
2015.9.23-2016.2.1 파리, 퐁피두센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 틈새에 끼어 아등바등 거리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의 모습과 최근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의 풍경 속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 인간 자신이 만들고 개발한 창조물들에 의해 도리어 인간이 고통 받고 파괴된다는 점이다. 우리를 파괴하는 주체가 공장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컨베이어 벨트든, 인간의 지능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스마트한 로봇이든, 창조주로서의 인간과 기계와 기술로 태어난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어려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온 문제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늘 발전하고 진보하기를 원한다. 그 발전과 진보 속에는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편리와 안락이란 가치가 함께 내제되어 있다. 이때껏 인간이 창조한 기계와 기술들은 모두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었을까?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은 높아졌다고만 자부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기계 속에서 파멸되어가는 삶과 로봇들에 의해 지배되는 어두운 사회를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률이 뛰어난 기계를 통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지만, 노동과 시간에 늘 쫓기는 찰리 채플린의 인생처럼 인간의 삶은 더 많은 노동의 짐을 짊어져야만 했다. 오늘날의 사회 역시 '모던 타임즈'와 많이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빠르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주는 기계들 때문에 현대인의 삶은 더욱더 각박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잘게 재단된 하루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계속된 기계와 기술의 눈부신 성장은 우리에게 늘어난 노동의 짐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이 하나의 디지털 정보로 취급되는 통제시스템을 구현해냈다. 하늘에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보던 신의 눈은 이제 도처에 편재하는 기계의 눈으로 새롭게 대체된 셈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Patterns of Life' 2015 Video HD/2K, 15' 14" Photos de tournage ⓒ Julien Previeux Courtesy galerie Jousse Entreprise,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