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77, Feb 2013
박진아
Park Jin A
‘회화’라는 불편함
박진아를 말할 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회화'다. 왜 아직 회화인가? 이 고리타분한 질문은 회화작가, 즉 화가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터. 터놓고 이야기하기에는 논쟁적 지점이 아직도 많기에, 이른바 괄호( )를 치고 넘어가는 것이 상례일 법도 하다. 사실, 회화는 사진이 발명됨으로써, 최초의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으며, 그 뒤 그린버그가 그 유명한 모더니즘론으로 되살렸던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한 때)그의 추종자였던 미니멀리스트들에 의해 다시 한 번 폐기됐다. 그 뒤 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신표현주의 경향에 힘입어 다시 복귀했지만, 이내, 옥토버 그룹에 의해 개념적으로 힐난당한 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끊임없이 복귀한다. 물론 과거의 제 영광을 포기한 채, 끊임없는 자기 수정을 거치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아의 작업은 특별하다. 그녀가 그간 보여준 실험들은 회화사적 유산을 참조하면서 대안적 형식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안대웅 기자 ● 사진 서지연
'로모그라피 시리즈-정원' 캔버스에 유채 109×145cm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