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05, Jun 2015
인간의 조건, 불안 속 균형을 찾아
France
Bruce nauman
2015.3.14-2015.6.21 파리,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어느덧 유행이 되었다.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삶의 지침서들부터 광고, 영화, 강연에 이르기까지 느리게 사는 삶은 현대인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느림예찬자들의 미담은 과연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쉬는 건 고사하고, 전쟁 같은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달콤한 꿈처럼 들려올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느림’을 앞세운 최근 각 분야의 마케팅이 숨 가쁜 현대인의 일상과 우리사회에 대한 위로와 자기반성으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트렌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본다는 것, 지금의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본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큰 용기를 요구할뿐더러, 우리가 용기 내어 느리게 살지라도, 우리사회는 흔쾌히 응원의 박수를 쳐주지 않는다. 결국 현대인의 삶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속도에 짜맞춰진 일상의 반복이다. 사회의 속도보다 내 삶의 속도가 느리다는 건 참으로 불안한 일이다. 사회의 속도는 곧 인간의 생존을 위한 속도이기 때문이다.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Untitled 1970/2009' Film stills ⓒ Bruce Nauman/ADAGP, Pari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