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57, Oct 2019
양혜규
Yang Haegue
다중 감각의 장
“시간이 없는 세상에는 시간의 순서, 미래와 다른 과거, 유연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했던 시간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우리의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위해, 우리 주위에, 우리의 척도에 맞게 나타나야 한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모든 장소에서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심리적인 반응이나 문학적 비유일 뿐 아니라 물리학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도 유의미한 논의 주제다.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며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2019년 9월의 서울, '서기 2000년이 오면'이라는 전시의 한복판에서, 나는 로벨리 문장 속 ‘시간’을 제법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 단어를 ‘양혜규의 작업’으로 슬쩍 바꿔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 이가진 프랑스통신원 ●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서기 2000년이 오면'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3관(K3) 양혜규 개인전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