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43, Aug 2018
권아람
Kwon Ahram
말, 시간, 위치 태그의 납작함
PUBLIC ART NEW HERO
2018 퍼블릭아트 뉴히어로Ⅲ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계론적인 미디어 설치 작업의 부흥기가 있었다.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코딩을 해서 만들어지는 기술적인 부분이 돋보이는 작업은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두드러지면서 그 표피에만 머무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과학기술과 미술이 협업하는 한계에 대해 자문해 보기 시작했다. 반면에, 어느 지점부터인지 촬영 편집과 영상 콘텐츠에 집중하는 미디어 작업보다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기술적인 개념 너머에 확장된 기법과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미디어/영상 설치라는 매체에 접근하여 장르를 규정짓는 일이 무의미하게 되었다. 올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2018 SeMA 소장품전 [잃어버린 세계]에서 권아람의 [말 없는 말(Words without Words)](2015) 작업을 볼 수 있었다. 블랙아웃 되듯 바닥에 놓인 두 채널의 모니터에는 전면의 백색 화면과 흑백의 대비가 도드라진 돌의 텍스처가 교차되어 깜빡거린다. ‘딱딱딱’ 메트로놈 소리의 박자에 맞춰 화면은 빠르게 바뀐다. 광물의 거친 표면은 굉장히 솔직하고 강렬하다. 표면 텍스처의 이미지와 동등한 호흡으로 나타나는 텍스트는 소설 『파우스트』 문장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기에서 발생한 결과값의 오류다. 문구에서 드러나는 데이터의 오류는 어딘지 모르게 시적이기까지 하다. 어구가 맞지 않은 글은 반연극처럼 원인과 결과, 시제가 해체되어 기억의 이미지와 언어가 담고 있는 시간이 조악하고 체계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권아람은 돌을 무작위로 채집하듯이 기억의 이미지를 『파우스트』의 “멈춰라 순간이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를 떠올리며, 미니멀한 단면의 이미지로 지극히 납작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 추성아 독립큐레이터 ● 사진 서지연
'말 없는 말(Words without Words)' 2015 43인치 LED 모니터, 쇠 파이프 5분 23초(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