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24, Jan 2017
조숙진
Jo sook jin
숭고와 비장미,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비유로서의 예술작품
Ⅰ. 조숙진은 8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전에 한국에서 이루어진 그의 화단 활동을 보면, 1983년의 '제10회 앙데팡당전'을 시작으로 1988년 중반까지, 세 차례의 개인전과 약 20여 회에 이르는 단체전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숙진이 화단 활동을 하던 80년대 초중반의 분위기는 70년대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민중미술과 한강미술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형상미술 등 전반적으로 구상미술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미술대학원 시절에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지만, 오랜 군부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등장한 민중미술이 화단을 점진적으로 장악해 가는 모습을 보며 작품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이 시기의 서울 화단은 70년대의 미협을 중심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계열의 헤게모니 장악에 저항한 20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룹을 결성, 새로운 진로 모색을 탐색하고 있었다. 1980년의 횡단그룹을 필두로 [한국 현대미술의 모색전](1982), [젊은 의식전](1982-1983), [실천그룹전](1982), [대성리전[(1980), [시대정신전](1983)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그룹을 결성, 기성 화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20여 년간의 핵심적 구조가 헤게모니의 추구로 인하여 상대적 파워의 구축을 초래”(한국 현대미술 모색전), “밖으로부터의 예술 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현실과 발언)과 같은 선언문들은 당시의 젊은 작가들이 품었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의 단면을 보여준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사진 작가 제공
'Wishing Bells/ To Protect and To Serve' 2009 108 bronze bells, nine cedar columns, plaza design, lighting Public plaza at the LA Metro Detention Center Commissioned by the City of Los Angeles Cultural Affairs,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