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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파리비엔날레(Biennale de Paris)’에서 젊은 한국 작가의 패기를 보여준 바 있는 이강소 화백이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후 프랑스에서 갖는 개인전이라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도 의미가 더욱 크다. 한국의 대표 아방가르스트 이강소는 사군자처럼 꼿꼿하고 타협하지 않는 강한 선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미술 시장이 아닌 진정한 예술 그 자체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미술계는 한국의 단색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서양의 돌고 도는 예술 경향의 낡은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서 제3세계의 정신을 말한다는 미술을 열심히 찾아 헤맨 결과이자, 새로운 투자가치를 창출하려는 목마름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 이강소는 굴복하지 않는다. 비록 생떼띠엔 현대미술관 관장 로랑 헤기(Lorand Hegyi)는 이강소의 단색화 풍의 정신적인 추상미술이 유럽 추상미술과는 비교되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 굳게 믿고 전시를 기획하였다 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신은 단색화 화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강소는 늘 단호하다. 전시실에 가득 찬 그의 그림들이 모노크롬, 단색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게 단색화란 집중과 반복의 행동에 의해 영원불멸한 곳으로 가기 위한, 마치 승려가 해탈하듯 도를 트기 위한 작업 방식인데, 스스로 도인일 수 없는 예술가 이강소는 그의 작업에 매우 솔직하고 겸손한 것이다.
생떼띠엔 현대미술관 전시전경
자신을 최대한 내려놓고 지움으로써 만들어지는 그의 회화는 모든 것이 결국은 소멸하는 세계의 본질과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다. 세상의 기초 입자인 원자에 대해 고민하고 기본을 중시한다. 스스로 신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믿고 내맡기는 그의 담대함은 이미 1975년 닭다리에 끈을 묶고 바닥에 석고 가루를 뿌려놓은 후 사흘 동안 닭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흔적의 리듬을 그대로 전시한 ‘파리비엔날레’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의 관심은 늘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이다. 회화란 무엇인가? 세상의 근본에 대하여, 나와 너의 존재, 실존에 대한 질문들을 꾸준히 던지며 실험하고 탐색하고 도전해 왔다. 그 결과는 표현 매체의 한정 없이, 사진, 퍼포먼스, 조각, 설치, 회화 등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강소의 다양한 작품 세계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관객의 참여가 포괄적으로 녹아든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결과가 아닌 과정과 진행이 늘 중요시된다는 것이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청운회’라는 그룹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하고 관객과 소통하기를 좋아한 그는 천성적으로 당차고 열린 아티스트인 듯하다. 하나의 작품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늘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였던 그의 작품 이야기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기록이다.
<虛 Emptiness-09143>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3cm
우주의 본질에 관심을 가져왔던 이강소는 1980년 후반부터 오리, 사슴과 같은 동물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동물이 등장하는 자연풍경을 화면에 담기 시작하였다. 오리화가라는 닉네임이 그를 따라다니는 이유이다. 또한, 그의 풍경 안에는 나룻배 한 척이 떠다니고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고 유유히 떠다니는 인생의 모습과 같다. 생떼띠엔 현대미술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들 역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991년부터 2011년도까지의 ‘무제(Non titre)’, ‘허(Emptiness)’ 회화 연작 19점이다. 큰 화폭 속 그의 작업은 캔버스의 평면을 넘어서는 그가 투영하고자 하는 세계의 잔영들이 힘차고 자유로운 붓질로 재현되어 있다.
때로는 단순하고 간결한 사군자의 기품이 느껴지기도 한다. 풍경의 모습들은 찰나의 직접적이고 뚜렷한 형상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그의 움직임에 의해 중첩되고 뭉개져 오히려 공간 안에 흡수되어 지워져 버린 모습이다. 작품의 프로세스 즉, 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주 본질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관람객들에게 숨은 형상 찾기와 그가 제시하는 몇몇 제한된 소재 안에서의 자기 투영이라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형상이 전부가 아닌 형상이 만들어 지기 위한 우주의 질서 체계, 나와 우리, 사물과 자연의 관계성에 의해 생성된 연상에 대한 이미지 기호들이다. 자연과 개체들의 관계에 의해 본질은 존재하고 변화한다. 따라서 고정된 절대 형상이란 그의 작업 속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Emptiness-09092>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259cm(200F) Courtesy the artist
형상은 없고 기운찬 몇 개의 획만이 캔버스의 빈 공간을 울리며 역동하고 있다. 지워져 버린 것들의 에너지 흐름을 보여주는 ‘허(Emptiness)’ 연작 앞에서 기운 생동하는 숨어버린 형상들의 거센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의 작업세계에서 늘 중요시 되었던 사물과 객체, 자연의 상호관계가 여백 안에서 서로 얽히어 힘찬 필체로 강하게 꿈틀대고 있다. 이는 한국 미술의 정신성을 잘 알지 못하고 회화의 물성에 익숙해 있는 유럽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 확실하다. 캔버스에 정밀히 묘사되어있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를 표현할 수 없었던 것임을 깨달았던 빛의 화가들, 인상주의의자들의 후예이니 형상을 최대한 지움으로써 드러나는 가장 본질적인 것들의 되살아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보게 된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닌 일률적이지 않은 각자의 기, 개별 에너지, 그것들의 소통 에너지의 흐름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이번 전시에서, 평면 회화로만 전시 작품이 한정되고, 이강소의 작업 역사를 초기부터 총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작가의 꾸준한 실험 정신과 도전의 결과로 쌓여진 그동안의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음에는 분명하다.
글쓴이 이민영은 파리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하여 현재 Art'Loft/ Lee Bauwens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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