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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4, Mar 2016

정정엽_벌레

2016.1.21 – 2016.2.27 갤러리 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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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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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시리즈로 보여주었던 정정엽은 이번엔 나물과 벌레들을 데리고 화이트 큐브에 나타났다. 현대인들은 벌레를 싫어한다. 작가의표현을 옮기면, 자연과 함께 생활하려고 해도 제일 먼저 해야  일은 벌레에 적응하는 , 벌레와 함께 사는 것을 익히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  전시 덕분에 둘러보니 도시인의 화려한 공간 속에 벌레들은 추방되어 있었고,  추방된 벌레들의 생명의 움직임,  미세한 흔들림이 전시장 곳곳에서 꿈틀거리고있었다. 전시에는 도시 속에서 현대문명을 대변하는 공간, 대형 쇼핑몰, 대기업 복도, 미술관  화려하고 세련된 건물 속에 싹이  감자와 벌레들이 당당히 똬리를 틀고 나타났다. 


벌레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는 어쩔  없이 벌레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흉측해 보였던 벌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야에들어오기 시작했다. 당당한 벌레의 이질감이 화면을 압도하자,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공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미약한지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 스스로가 자기가 만든 공간에서 소외되고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무엇이 벌레이며, 도시는 무엇을 위해 벌레를 추방한 것이었을까? 노동현장에서 그림을 그릴 때부터 지금까지, 정정엽의 화면이 가진  하나의 매력은, 그의 화면이 보여주는 회화의 , 그린다는 행위의즐거움 때문이다.  즐거움은  시리즈에서 보이듯 초현실적 화면이 지닌 유쾌한 반란 때문일 수도 있고, <>이나 <가지>에서와 같이 형식의 맛을 감상하는 즐거움에서 유래하기도 한다.





<마을-밭두릅> 2013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이나 <가지> 등은 붓질의 속도, 붓의  하나하나의 촉감, 광목천의 까칠함까지 전달되는 작품이다. <마을-> 유화로 그린 작품들이,  위로 쌓아올리는 두께감을 주는 것에 비해, 마치 천으로 스며드는  작업 같은 깊이감이 전달되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썩어 문드러진 감의 중심을 통해 블랙홀처럼우주의 생명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무섭지 않고 포근하다. 어떤 <가지> 몰골 화법으로 그려진 사군자 같고, 어떤 <가지> 갈필법으로 그려낸 문인화같다. 어떤 <나방> 아크릴의 속도감이 있고, 어떤 <나물> 유화의 깊은 화려함이 있다. 정정엽의 작품이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도 향토적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 또한 여기에서 출발한다 하겠다. 그래서 그의 작품 <나물> <나방>처럼 화려하고 예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나물들이 시장에서 팔고 있는 자연에서  수확한 나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여성의 노동을 통해 흙을 씻고 다듬어 놓은 예쁜 나물만을 그린다.  먹을  있는 나물, 우리에게에너지를 주는 자연에는 드러나진 않지만 언제나 희생했던 어머니의 노동에 대한 오마주가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나물> 보고 있으면 여성의 시선이라는 거창하고 관념적인 개념이 아닌, 살림하는 손을 떠올리게 된다.  손의 건강함이 먹는 나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어두운배경을 꿈틀거리듯 전복하려는 <마을-밭두릅> <마을-고들빼기> 화면은 계몽적일  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초현실적 공간에 풀어놓음으로써 현실적 설득력이 있다. 낯선 존재를 익숙하게 하는 , 평범한 소재들을 가지고 동시대성과 현대성을 획득해내는 . 정정엽이 가진 힘이다. 그가 묻는다. 우리는 우리가 거세해 버린존재들과 화해할 수는 없을까? 화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거세해 버린  존재가 바로  아닌가? 작가는 말한다. 나는 벌레다. 다시, 촉각을 곤두세워 방향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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