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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5, Apr 2016

이승희
Lee Seung Hee

이승희의 도자작업과 그의 그릇

1. 다시 한 번 그의 ‘평면도자’ 작업을 처음 보았던 몇 해 전을 떠올린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을까…?” 다소간 당황스럽고, 다소간은 기이하기도 하고, 또 다소간은 기발하기도 한… 알기 어려운 그의 작품 앞에서 아마도 살짝 미소가 지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간이 보아왔지만 깊은 데까지는 미처 알만큼은 아니었던 그의 기질이 삐져나오는 듯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중국에서의 고군분투가 떠오르기도 했던 꽤나 당혹스런 작업. 그는 오랫동안 도자 작업을 해왔다. 그 여정에서는 전형적인 그릇 뿐 아니라, 흙을 빚고 색을 입혀 구운 다종다양한 형상을 오브제 삼은 설치작업이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런데 문득 도자기를 평평한 도판에 형상화한 작업이다. 어쨌거나 도자기를 만들던 사람이 그것을 평면 위에 묘사한다…? ‘도예’란 기본적으로 그릇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하여, 나아가 소용에 닿는 물건들을 빚어 만드는 작업이다. 애초에 쓸모와 거리가 있는 것은 대상도 아니니 평면에 형상을 묘사하는 일을 염두에 둘 일도 없다. 따라서 ‘대상의 재현’이란 회화의 기능과도 거리가 멀다. 한데 그는 그릇을 만드는 전형적인 기법을 동원해 그릇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미술의 장르간 구분이 사라지고, 과거의 미술과 미술의 주변부로 여겨졌던 분야의 성과들이 쓰이는 한편으로, 새로운 매체들(미디어)이 수용되어 기존의 미술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 오늘이다. 이런 형편에서 보아도 그의 작업은 그 어느 것을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 박정구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 ● 사진 작가 제공

대청호미술관 설치 전경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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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구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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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침대를 그린 그림이 침대를 만들기 위해 목공이 그린 침대 설계도 보다 더 저급한 모방이라고 했다는 플라톤(Plato)의 말이 생각난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그릇을 만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고, 평면에 그릇을 모방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닌 그보다 저급한 모방을 버젓이 작품이라고 내어 놓고 있는 셈이다그러한 점에서 볼 때 그의 작업은 발상의 전환이며 또한 통념에 대한 도전이다. 어차피 요사이 도자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실용적인 목적에 쓰이는 예는 많지 않다. 상당 부분 실용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실제 사용을 위해 만들었다 해도 통상의 그릇보다 엄청나게 비싼 탓에 웬만한 이들은 그것을 일상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현대의 도자기는 그 생김새 여하를 떠나 실용성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TAO> 2015 Ceramic 127×102cm 





2. 실용성을 잃은 실용미술품. 그것은 이미 실용미술품이 아니다. 장식이나 완상의 대상이다. 장식이나 완상의 대상은 원래 무엇인가. 바로 순수미술로 불리어 온 회화와 조각이 그 ‘대표선수’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는 흙을 빚어 형태를 부여하고 불에 구워 무엇인가를 담는 기능을 가진 물건을 만들 줄 알게 된 이래 인간의 식생활에 혁명적인 기여를 해온 그 그릇을 온전히 감상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린 셈이다. 실용의 여하를 떠나 물 한 방울도 담을 수 없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릇을 그린 그림과 같은 것인가? 흔히 기명절지화나 정물화로 불리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그릇과 말이다. 우선 이차원 평면에 삼차원의 그릇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회화와 동일한 원리와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그의 작업이 여러 차례 묽은 흙물을 반복적으로 올림으로써 얇은 부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회화란 것도 어차피 바탕에 물감을 올리는 것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그 차별은 보다 모호해진다반면 회화는 그릇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와 기법을 동원해 그릇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그릇을 만드는 재료와 기법, 심지어는 제작순서마저 동일하다. 그것이 아니면 그의 작업은 완성될 수조차 없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이승희의 그릇은 그림 속 그릇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릇을 묘사했으되 그림과는 또 다른 무엇. 그것이 그의 작업이다. 실용성을 잃었으나 평면화되어 벽면에 종속됨으로써 장식성을 획득한 도예작품이다그러고 보면 일찍이 화상전(畵像塼)이라는 것이 있었다. 백제의 산수문전(山水文塼)처럼 편편한 흙판에 문양을 새겨 구워 벽면을 장식한 일종의 벽돌이다. 물론 청자나 백자를 만드는 기술이 생겨나기 이전에 질그릇을 굽던 기술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벽면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보면 기능은 유사하다. 그러고 보면 그러한 기능은 서양의 모자이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을 이승희의 도자 작업과 곧바로 병치시킬 수는 없을 터이다.





<TAO> 2014 Ceramic 203×50cm  





3. 아무래도 나에게 그의 작업이 주는 충격이라면 충격이라 할 점은 도자를 해온 그가 그릇을 그릇의 이미지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자신이 배우고 추구해왔을 무엇을 담는 그릇이 되었건 요즘은 흔히 도조(陶彫)라고도 지칭되는 조형작업이 되었건, 흙을 빚어 구워내는 삼차원의 공간성을 제거한 작업. 그리하여 그와 관련한 일체의 관습적 혹은 비평적 언술들을 일거에 당혹하게 만들고 만 그 무엇을 제시한 일. 충격이라는 표현 역시 다른 장르의 누군가가 도자 기법으로 그릇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릇을 만들던 사람이 그릇을 2차원으로 ‘차원이동’시켜 버렸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일 터이다. 그것은 4차원으로 확장하는 인간의 물리학적 지식에 반하는 수축(혹은 움츠러듦)일까? 그래서 그의 작업과 그것을 실행한 그의 의식 역시 퇴행을 감수하는 일종의 고육책(?)을 선택한 것이 오늘의 결과를 만든 이유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TAO> 2014 Ceramic 168×82cm





그는 자신의 작업에 <TAO()>라는 제목을 붙인다. ‘도’라 함은 만유의 실재이자 진리를 의미한다고 할 때 그가 자신의 작업에 그러한 제목을 붙였다는 것은, 작업을 대하는 의식 어딘가에 그러한 의미부여나 지향을 담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일 터이다. 도를 향하여. 혹은 도를 닦듯. 혹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그도 아니라면 도를 꿈꾸며어찌되었건 그의 그것이 번잡한 현상과 그로부터 연유하는 미혹을 버리고 본질을 지향하는 일이라면, 그가 굳이 조금은 거창해 보이는 제목을 다는 연유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에 더불어 도예를 일로 삼아 그릇이나 이러저러한 형상을 만들어내던 것에서 떠나와 도예의 핵심으로 환원, 혹은 수축, 혹은 집중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도 그는 자신의 작업에 <ClayGen()>이라는 제목을 달아 왔다는 사실은 작업에 대한 그의 의식을 엿보게 하는 점이다.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설치 전경





4. 그는 자신이 해온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도자기를 지속하고자 했고, 아울러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서양미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도자 본연의 미감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그 미감은 다름 아닌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자신에게도 각인되어 있는 과거로부터의 그 무엇이라는 깨달음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그릇으로부터 본연의 기능을 제거해버렸다. 핵심으로 다가서는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평면화된 그릇들의 기형과 문양은 모두 전통 도자기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청화나 철화백자, 혹은 아무런 문양도 없는 백자 달 항아리와 사발… 그 기형과 문양 하나하나가 바로 전통 도자기에 관한 우리 관념의 표상(表象)이라 할 만큼 전형적이다. 


하지만 조명을 받으며 진열장 안에 저만치 거리를 두고 물러나 있는 박물관의 도자기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주 도발적이고도 요염하게 우리 코앞에서 아른거린다우연히 찾은 중국 경덕진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그곳의 작업장에서 중국의 흙과 유약으로 만들어진 도판(陶板) 위에 수십 번 반복해서 얹은 흙물과 그림으로 만들어진 도자기. 그래서 그의 도자 작업은 전통도자 기법의 복원이라는 일과는 전연 궤를 달리하는, 그 본질적인 핵심에 대한 자신의 사유의 결과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며 작업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긴 시간 연마한 장인적 솜씨와 노동이 담긴 현대적 미감과 장식성이 어우러진 작품이기에 앞서, 긴 시간 도자를 해온 한 작가가 자신의 이념을 한 걸음 한 걸음 다듬어 드러내는 노정 위의 한 모습이라고 하고 싶다.   

 

 

 

이승희

photo by CHUU courtesy of the artist and L153 Art Company




작가 이승희는 1958년 청주 출생으로 청주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93년 서울 서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사유된 문명>을 선보인 후 청주와 대전, 서울을 비롯 미국 뉴욕, 중국 베이징 등에서 열 다섯 남짓의 전시를 개최했다. 2013년 뉴욕 신 갤러리에서 ‘TAO’라는 타이틀을 사용했던 작가는 지난3월까지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 마련된 개인전에도 같은 제목을 내걸고 다양한 신작을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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