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공연 예술 자료의 디지털화를 담당하고 있는 취리히 무용 아카이브(Mediathek tanz.ch)와 방대한 무용 도서, 잡지 뿐 아니라 저명한 무용작가들의 사진, 의상을 수집해온 로잔의 스위스 무용 협회(Archives suisse de la danse Lausanne)가 만나 지금의 스위스 무용 아카이브가 설립되었다. 이 두 곳의 아카이브는 담당분야를 나눠,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도서자료나 의상 전시 면에서는, 로잔 쪽의 아카이브가 관람객에게 보다 많은 시각적 볼거리를 준다. 그중에서도 신고전주의 발레의 혁신가이며 다른 매체와의 혼합을 통해 무용의 새로운 길을 이끈 스위스의 저명한 무용인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의 무용 아카이브는 로잔의 핵심자료이다. 조지 던(Jorge Donn)의 볼레로(Boléro)라는 작품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이외에도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의 설립자인 필립 브라운슈바이크(Philippe Braunschweig)의 유산도 2011년에 이곳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Espace Maurice Béjart Collection>
Suisse de la danse à Lausanne ⓒ Gregory Batardon
취리히 무용 아카이브는 공연 예술을 시각 매체로 기록하는 것을 촉진하며, 기록 자료들을 디지털화 하는 기관으로서 매년 비디오 다큐멘테션 상을 통해 젊은 비디오 작가 유망주들을 지원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획을 긋고 있는 현대 무용인의 일회적 예술을 영구적 기록으로 환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아카이브 존재의 주 목적으로는 스위스 내의 저명한 무용가와 안무가, 또 국제적으로 명성을 구축한 컴퍼니들의 오리지널 자료들을 공연과 공연이 완성되는 과정을 다루는 연습 자료까지도 영구적 보관함으로써 학문적 연구와 수업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각각의 아카이브 설립자였던 에바 리히터리히(Eva Richterrich), 쟝 피에르 파스토리(Jean Pierre Pastori)를 포함, 베른의 연극과 교수인 크리스티나 터너(Christina Turner), 취리히 미술대학 총장 하르뭇 빅커트(Hartmut Wickert), 음성 아카이브 총장 피오 펠리자리(Pio Pellizzari) 등 협회 임직원의 구성이 보여주듯, 무용 예술 아카이브의 일은 단순히 무용 역사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연극, 영화 또한 음악과 음성의 기록, 이에 대한 기술적 연구와도 관련이 있다. 아카이브의 주요 자료로 손꼽히는 현대 표현 무용의 창시자 중 하나인 지구르드 레더(Sigurd Leeder) 자료의 보존 사례를 살펴보자. 함부르그 출신인 레더는 무용가, 안무가로 활동하기 전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무대 설치, 의상 미술로 공연 예술에 참여해왔다.
<Laban-Notation undatiert> Schweizer Tanzarchiv /
Collection suisse de la danse, Nachlass Sigurd Leeder
ⓒ Gregory Batardon
레더는 쿠르트 요스(Kurt Jooss)의 발레단 무용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독일 현대 무용작업의 무대 설치도 맡아왔다. 이처럼 많은 현대 무용가들은 다른 매체와의 혼합을 통한 총체적 예술 개념을 만들었기에, 작가에 관한 아카이브 역시 사진, 무대 예술 등 다양한 예술방면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레더는 영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40년대에 스스로 스튜디오를 열어 새로운 무용 교육기술을 개발했다. 라반 노테이션(Rudolf von Laban) 방식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스케치 방식을 통해 시공간에서의 몸의 움직임을 표현했으며 이러한 움직임 노트 또한 아카이브에 남아있다. 그의 교육 자료는 사진과 스케치 자료 뿐 아니라 안무를 기록한 필름 자료로도 남아있었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 디지털화를 담당하고 있는 카틀린 외틀리(Katrin Oettli)가 역사적 영화기록물이 어떻게 아카이브 내에 보관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매체의 디지털화를 그저 CDR 이나 DVD-R 같은 컴퓨터로 읽히는 매체의 전환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디지털화란 훨씬 엄청난 용량의 사용을 초래하는 거대한 작업임을 보게 됨으로써 생각의 전환을 맞을 수 있었다.
<Abteilung fur Videokonservierung>
Schweizer Tanzarchiv Zurich
ⓒ Schweizer Tanzarchiv / Collection suisse de la danse
외틀리는 셀룰로이드, 마그넷 밴드 등 아날로그 매체 뿐 아니라 잘 알려진 VHS, Mini-Digial Video 등의 디지털 매체도 불완전하고 영구 보전이 불가한 매체임을 피력했다. 파손이 심한 자료는 한번 기기에 돌리는 자체가 더 심한 손상을 유발하기에 디지털화는 오리지널 자료의 마모를 막는 것을 도와줄 뿐 아니라, 오리지널 자료가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대체적 역할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오리지널 자료는 그 역사적 가치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이 아카이브에 계속 보관될 것이다. 레더의 영화자료는 화학적인 데미지를 복원한 후 그저 한번 재생한 것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프레임을 기준으로, 모든 사진이 디지털화되어 보관된다. 커다란 박스의 하드웨어들이 책장 가득 쌓여 있었는데, 한편의 짧은 영상 기록이 얼마만큼의 저장 용량을 필요로 하는지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청각 문화재자료 협회인 메모리아브(Memoriav)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시작된 ‘레더 프로젝트’는 메모리아브 자체의 메모 베이스라는 데이터 뱅크를 통해 저장되고 있다. 메모리아브는 스위스 내 모든 영화, 비디오를 보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40년대 이후의 뉴스들과 라디오 방송, 또한 스위스의 일상을 기록한 2만개의 역사적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
<Abteilung fur Videokonservierung>
Schweizer Tanzarchiv Zurich
ⓒ Schweizer Tanzarchiv / Collection suisse de la danse
영상자료의 복원과 디지털 보관을 담당하며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한국영상자료원과도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영상작업의 디지털화 외에도 ‘스위스 무용사. 전통과 혁신사이’라는 구술기록 프로젝트를 통해 60년대와 80년대 사이 활발했던 스위스 현대 무용가들의 인터뷰를 담아낸 공을 인정하여 스위스 문화부는 2014년 스위스 무용 아카이브를 로잔의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 Suisse), 루가노의 포노테카(Fonoteca), 뷘터투어의 사진 협회(Fotostiftung Schweiz)와 함께 4대 스위스 시청각 문화재 보호재단으로 인정, 2016-20년 까지 국가 지원대상으로 선정했다. 취리히 무용 아카이브 관장인 베아테 슐리헨마이어 (Beate Schlichenmaier)가 이야기하듯 국가지원금을 통한 50 % 이상의 재정의 확보를 통해 아카이브는 국가 무용예술 온라인 목록제작과 같은 더욱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이미 시작된 구술역사 프로젝트와 관련 자료들의 영구적 보관을 위한 디지털화를 위해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미 논의된 바와 같이 연극과 무용은 많은 면에서 자료 공유가 필요하므로 스위스 연극 아카이브(Schweizerische Theater Sammlung)와의 합병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글쓴이 김유진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 현재 스위스 취리히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