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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7, Aug 2020

관대한 문화의 전염성
#아티스트서포트플레지

Contagiousness of generous culture #artistsupportpledge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순간은 토네이도와 같다.”1) 토네이도가 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면 주변의 모든 풍경이 달라지듯, 작금의 미술계 역시 마찬가지다. Artnet News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 전역 최소 17개 예술기관이 인원을 대폭 감축하며 약 1,350명의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 등 주요 미술관들도 휴관 연장으로 인한 적자를 피하지 못해 직원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2) 생계를 위협받는 미술인들의 문제는 비단 기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팬데믹 이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온 것은 자명한 현실이며, 특히 신진작가들의 경우 갤러리와 아트페어, 경매시장의 문이 굳게 닫히면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게 됐다. 이 비극적인 바이러스의 여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고 사특한 형태로, 변이의 변이를 거듭하며, 여전히 즉각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두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할 때, 시작도 채 해보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이들은 어디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 기획·진행 김미혜 기자

‘아티스트 서포트 플레지(Artist Support Pledge)’ 스크린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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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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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스트 서섹스(East Sussex)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매튜 버로우(Matthew Burrows)는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3월 16일,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프로젝트 ‘아티스트서포트플레지(#ArtistSupportPledge, 이하 #ASP)’를 선보였다. 직역 그대로 ‘예술가 지원 서약’인 #ASP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의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방법은 간단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은 작가는 갤러리에 작품을 걸듯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ArtistSupportPledge 해시태그를 걸고 작품 이미지를 게재하면 된다. 이 해시태그를 눌러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 중 구매를 원할 경우 작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ASP는 그저 소셜 플랫폼에 해시태그를 제공할 뿐, 구매와 판매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가와 소비자 둘 사이에서 일어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작품 가격이 200파운드(한화 약 30만 원) 이하(배송비 제외)로 책정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1,000파운드(한화 약 150만 원)의 소득을 올리면 #ASP에 참여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는 데 200파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시물에 태그를 포함하고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보는 것만으로 서약은 이루어진다#ASP는 영국 내 공식적으로 락다운(Lockdown)이 선언되기 바로 일주일 전에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때, 예술가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메일과 메시지 함에는이 프로젝트는 끝났다’, ‘더 이상 전시를 진행하지 않는다’, ‘모든 수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알림으로 가득했다. 작품 판매나 전시 진행,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 외에 다른 수입이 없는 작가들에게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적 위기는 바이러스의 전파력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버로우 역시 자포자기의 순간이 있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그런 때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예술가들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자문했다. 그리고 고민의 끝에신뢰와 관대의 문화,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엠마 힐(Emma Hill) <Black Sun> 

© the artist emmahill.co.uk / @emma.hill_art


 


자급자족의 예술 문화를 만드는 일. 그의 생각과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것은 남아프리카 칼라하리(Kalahari)의 원주민들이었다. 수만 년 동안 관습과 공동체를 지키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이들. 버로우는 수렵과 채집 사회로 돌아가 모든 사람이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생각했다. 사냥에 성공한 이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에게 고기를 선물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고기를 받은 이들은 다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가족에게 그 고기를 나눠준다. 사냥에 관여했든 아니든 간에 고기를 가진 자는 다른 이와 나눠 먹어야 하는 것이 의무다. 그렇다면 예술가인 우리가 고기를 건네줌으로써 (, 우리가 가진 것을 보여주면서)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한다면, 배부르게 먹지는 못하더라도 굶는 이가 발생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이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은 점차 실체화되고 확장되어 갔다. (버로우에 의하면 당시 그가 가족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별로 말이 없긴 했지만 너무 움찔하지도 않아 안심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TV를 보던 버로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작품 이미지와 해당 해시태그를 더한 게시물을 올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게시물을 올리고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 #ASP는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를 가로지르며 퍼져나갔다. 론칭 한 달 만인 지난 4 23일 기준, 1,500만 파운드(한화 약 226 3,995만 원)의 거래가 이뤄졌고, 6월까지 집계된 규모는 20밀리언 파운드(한화 약 301 9,900만 원)에 달한다. #ASP의 성공은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데에 있지 않다. 경험이나 유명세 등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 재정적 지원을 위한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 상호 지원과 협력 속 관대한 문화의 장을 형성하고 소규모 경제를 창출하는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룩한 데에 있다. 이들은 예술가들이 굶주리고 빚더미에 앉아 작품 활동의 지속성을 걱정하는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작가들이 공동체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그 기반이 되는 아름다움, 호기심, 창의성, 통찰력 등의 능력이 적절하게 보상받아야 한다고 믿는다또한 #ASP는 관람하는 이들에게보기(seeing)’를 권한다. 관대함을 지닌너그러운 눈은 예술을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이 필요하다. 이들이 제언하는보기는 다음과 같다. ‘호기심과 자각심을 가지고 보라’, ‘즐기고 놀랄 것을 기대하고 보라’,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보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지 말고 보라’, ‘그저 마음에 번쩍 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라’.





빅터 씨워드(Victor Seaward) <Ogham II> 

2018 Cast concrete panel with inlaid steel 

© the artist victor-seaward.com / @victor_seaward 




작품 거래 규모가 확장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버로우에 따르면 그의 주변 작가 친구들을 포함해 하루에 수백 통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이들 중 대부분은 주류 미술 시장을 통해 번 것보다 #ASP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전에 한 달 동안 벌던 금액을 일주일 만에 벌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버로우는 한 사람이 벌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을 계산했다. 연간 한 사람이 올릴 수 있는 최대의 수익은 14만 파운드(한화 약 2 1,151만 원), 그리고 상한선의 반쯤 도달했을 때 작품을 모두 판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판매 금액의 20%를 다시 #ASP에 기부하고 수익을 분산시키기에 가능한 계산이며, 이것이 바로 버로우가 추구하는 수평적 경제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시장에서 한 작가의 작품 가격이 상승하면 그 수치는 끝을 알 수 없게 치솟기 마련이고, 반대로 혜택을 받는 작가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상한선과 그 이상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구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수익을 다른 이와 나눠야만 하는 이 경제 순환 네트워크는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며 돈을 버는 사람이 늘어나게 만든다. 팬데믹으로 인해 생겨난 또 다른 형태의 미술 시장인 것이다. 파는 이도, 사는 이도 그 어떤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계층 구조도 생겨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나는 이 기준 때문에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버로우가 처음부터 예술가들을 위해 계획했던 평등주의 경제며 관대한 문화 그 자체다. 그는 말한다. “#ASP를 통해 다시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국경을 무너뜨리고 경계를 지우는 힘. 왜 내가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됐다. 어두운 시대에 예술은 분명 어떠한 방식으로든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피터 아브라함스(Peter Abrahams) <Glass Archive> 

© the artist peterabrahams.co.uk / @peterabrahams8 




관습과 가치의 무결성을 지키고 그것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 사회 전반에 걸쳐 지원을 확산시키고 관대한 문화의 전염성을 믿는 것. 궁극적으로 #ASP는 경제적, 환경적으로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고민의 시작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평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상기하고, 그 중심에 있는 예술가들을 살피고, 글로벌 예술 생태계에서 이들의 순수성이 유지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예술은 획득이 아닌 선물이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요리사에게 음식 값을 내는 것과 같이, 예술가들이 작업을 위한 재료를 구매하고, 더 많은 선물을 만들고, 충분한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항상 우리가 내는 가격 그 이상의 지지와 응원이 그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각주]

1) “This Moment Is Like a Tornado.” said Adrian Ellis, the founder of AEA Consulting, told Artnet News, https://news.artnet.com/art-world/widespread-museum-layoffs-1889770 (2020 7 16일 접속)

2) “A second round of layoffs has seen at least 17 institutions make substantial reductions to staff in the past month, affecting a total of more than 1,350 workers, according to analysis by Artnet News. Throughout June, major art institutions including th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Brooklyn Museum, and the Walker Art Center in Minneapolis announced plans to reduce staff, citing revenue loss and looming deficits caused by the extended closure.” https://news.artnet.com/art-world/widespread-museum-layoffs-1889770 (2020 7 16일 접속)

 



이미지 제공: Kayt/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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