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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6, May 2016

도시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City and Typography

헬베티카(Helvetica), 프루티거(Frutiger), 파리진(Parisine)은 한 도시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를 담당하는 ‘무엇’의 이름들이다. 정답은 바로 ‘서체’다. 거대한 랜드마크, 아름다운 공원, 탁 트인 강, 목적지로 향하기 위한 대중교통 등 도시를 제대로 누비기 위해서는 표지판부터 찾기 마련이다. 이는 도시를 처음 찾는 여행객 뿐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표지판을 구성하는 글자는 정보이자 곧 이미지다. 세계적으로 많은 도시에서 자신만의 글자체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인구 1,000만이 넘는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인 서울도 디자인수도를 표방하며 고유의 글꼴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이렇게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더 이상 단순한 활자나 서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되며 디자인 그 자체가 되고 있는 듯하다.「퍼블릭아트」는 공공디자인의 측면에서서 문명의 근원인 문자가 도시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지 살펴본다.
● 기획·진행 이가진 수습기자 ● 글 권은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디자인정책과 주무관

Unimark '1970 New York City Transit Authority Graphic Standards Manual' 1970 Image credit: Brian K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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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디자인정책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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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하루를 보자.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처음 하는 익숙한 행동들은 무엇인가? 밤사이 업데이트된 소셜네트워크 확인하기 또는 핸드폰으로 뉴스 보기, 아니면 TV 속의 한 장면처럼 커피를 마시며 신문 읽기 등 우리는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다양한 정보들을 문자를 통해 접한다. 현대인들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의 양이 100년 전 사람이 평생 접하는 양과 견줄 수 있을 만큼이라고 하니 실로 그 양은 방대하다. 이런 정보들을 전달하는 글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국경이 모호한 유럽을 여행하던 중 공공표지판이나 안내사인의 글자체를 보고 어떤 도시에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무심코 지나쳐왔던 그러나 늘 보고 있는 도시에 숨어 있는 글자체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도시에 숨어있는 글자들의 주요한 역할 중 첫째는 도시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커뮤니케이션)과 정보전달이다. 인간은 이동을 하기 때문에 도시의 정보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지도, 도로 표지판, 안내사인 및 간판 등은 장소를 이해하며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도시 속 타이포그래피란? 잘 읽히는 도시 즉 도시와 인간과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글자라는 아름다운 조형미로 도와주는 것이다. 




 ‘파리 거리 안내표지’ 

사진: 장 림(Jean Lim)  

 



또 다른 역할은 국가나 도시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활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독일의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보자. 독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는가? 맥주, 소시지, 시계 등…, 그 중 맥주 상표에 사용된 글자체를 떠올려보면 독일을 상징하는 서체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독일 이미지를 표현할 때 꼭 사용하는 서체는 ‘프락추라(Fraktur)’다. 독일에서 신문 타이틀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체이기도 한 이 서체는 우리가 보기에는 가독성이 좋지 않은 서체다. 


하지만 독일인은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읽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으며, 동화책의 본문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떤 독일인은 이 서체를 보면 애국심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예로는 스위스의 ‘헬베티카(Helvetica)’가 있다. 헬베티카는 이름에서부터 스위스를 담고 있다. 스위스의 옛 이름인 헬베티아(Helvetia)에서 유래한 이 서체는 20세기 디자인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로 가로와 세로획의 두께를 모두 같게 조정해 아주 심플한 형태로 만든 스위스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산물이다. ‘의심스럽다면 헬베티카를 써라(If in doubt, use Helvetica)’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서체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헬베티카는 하나의 서체가 아니라 그것은 라이프 스타일이었다”고 회자할 만큼 하나의 폰트를 넘어 문화 자체를 대변하기도 한 것이다. 헬베티카는 현재까지도 스위스의 여권, 관공서 서식, 안내사인 등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도시 디자인 속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애리조나 안내판’ 

사진: 피에르 드 사블(Pierre de Sable)  





파리의 대중교통을 대표하는 서체인 파리진(Parisine)은 90년대 초반, 파리교통공단(RATP)을 위해 개발한 서체로, 1996년부터 RATP에서 관리하는 모든 교통수단에 적용되어 파리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파리진은 헬베티카처럼 전통적인 서체 형태를 유지하며 공간적 여백을 더 열어주어 종이의 질이나 인쇄 잉크의 번짐에도 뚜렷한 가독성을 보이게 디자인되었으며, 표지판, 출입구 안내 등에 적용이 용이하도록 그 폭을 좁혀 가독성을 높였다. 제작자인 장 프랑스와 포셰(Jean-Fronçois Porchez)는 한 인터뷰에서 “매일매일 대중교통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서체를 만들어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예시들을 통해서 글자체가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에는 어떤 서체가 있는가? 서울시는 서울을 상징하는 서울서체를 2008년 발표했다. 총 19종으로 이루어진 서울서체는 동양의 강직한 선비정신과 단아한 여백을 담았으며, 조형적으로는 한옥의 열림과 기와의 곡선미를 표현했다. 또한 그 이름은 시민 투표를 통해서 최종 선정되었는데 서울의 대표적인 자산인 ‘한강’과 ‘남산’을 응용해 ‘서울한강체’와 ‘서울남산체’가 되었다. 서울한강체 4종(Light, Medium, Bold, Extra Bold), 서울남산체 4종(Light, Medium, Bold, Extra Bold), 세로쓰기 1종, 서울한강 장체 5종(Light, Medium, Bold, Extra Bold,black), 서울남산 장체5종((Light, Medium, Bold, Extra Bold,black)이 현재 쓰이고 있는 서체들이다. 





‘서울시 통합안내 및 시설안내사인’

 



이후 서울시는 서울서체를 활용하여 서울을 잘 읽히는 도시, 개성적인 서울만의 이미지를 가진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곳곳에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간판, 안내사인, 버스정거장, 보도환경 등) 또한 함께 정비하고 정돈하였다. 그 덕분에 지하철을 탈 때도, 길을 찾을 때도 주변에서 쉽게 변화된 서울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적용 사례 중 우선 흔히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표현하는 ‘간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만 해도 어디에서 어떤 정보를 말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무분별하게 자신의 점포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큰 글씨와 화려한 색상의 간판들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대신 각 브랜드의 고유한 서체를 작은 입체형으로 바꾼 간판과 주위 건물과 환경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색을 배제하고 소재를 강조한 간판 등으로 바뀌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에는 주요한 건물 및 공공시설물의 위치와 방향을 알리기 위한 많은 표지판이 설치된다. 기존의 표지판들은 시민의 편의를 고려하기보다는 정보 전달에 급급해 오히려 도시경관을 망가트렸었다. 그러나 요즘은 표지판의 형태와 크기, 서체, 색까지 일관성 있게 규정한 사인시스템을 도입해 만들어진 디자인을 길에서 볼 수 있다. 동일한 형태로 일관성 있게 제공되어 인식된 디자인과 타입들은 그 어떤 새로운 매체보다 효율적으로 도시정보를 전달하며 정돈된 도시 이미지를 준다. 문화재 안내판도 마찬가지다.  





Studio Spass C( )T( ) 

‘제 4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 2015




국립공원 초입에서도 오래된 건물 앞에서도 늘 보던,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만을 강조한 스텐인리스 스틸 소재의 문화재 안내판은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주위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와 구조, 재료와 색상까지 고려된 디자인에 효과적인 내용 전달을 위해 가독성이 고려된 서체로 제작된 안내판으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글자체들은 국경 없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움직이며 문화를 전달하기에 그 전파력은 상상 이상이다. 글자체들의 개성은 특별한 거부감 없이 다른 문화 속에 흡수되어 퍼져 나간다.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헬베티카, 방콕에서 만난 폭스바겐(Volkswagen)의 푸추라(Futura), 서울의 맥주집에서 만난 푸락추라, 전주시청에서 만난 서울서체, 외국 미술관에서 만난 서울서체, 무한도전 자막으로 본 서울서체 등 글자는 움직이는 브랜드이다. 도시 속의 타이포그래피는 인간과 도시의 소통이 보다 쉽도록 정보 전달의 효율성과 안정성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를 위해 진화되어 갈 것이며, 이와 함께 우리의 삶도 조금씩 더 윤택해질 것이다.  



글쓴이 권은선은 뉴욕에서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USA WEEKEND에서 근무하던 중, 서울시에서 디자인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디자이너의 눈으로 도시를 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도전에 도시디자이너를 꿈꾸며 귀국 후 현재까지 디자인정책, 공공디자인 및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사회를 위한 착한 디자인을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4년 DFA(Design For Asia Award, 홍콩디자인 어워드)에서 범죄예방디자인프로젝트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전북대학교, 경희대학교 및 동양미래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하는 등 다수 대학에서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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