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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8, Jul 2016

애니메이션 습격

Animation Attack

미술의 경계는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있고 무서우리만치 타 장르가 유입되고 있지만, 그 중에도 애니메이션은 유독 튄다. 서로 다른 것이 융합될 때 톤과 매너를 조절하는 것이 보통이건만, 애니메이션은 본연의 특징인 팝!스러움, 쎈 컬러, 튀는 선 그리고 캐릭터까지 장르의 유니크한 모든 것을 안고 미술관에 당당히 입성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특색을 조금도 버리지 않는 애니메이션의 그 무엇이 미술관과 기획자를 현혹시키는 걸까. 애니메이션의 두 큰 축, 아니메와 애니메이션 간 차이의 존재유무 그리고 국내 애니메이션, 그와 관계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까지! 동시대 아트 씬을 습격한 애니메이션, 그 상황과 사건 내역을 샅샅이 살펴본다.
● 기획·진행 이효정 기자

마루오 페루체티(Mauro Perucchetti) 'MODERN HEROES' 2009 Hand carved white marble 190×190×9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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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효정 기자, 나호원 애니메이션 연구가, 이정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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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애니메이션, 미술관을 침투하다_ 이효정

 

SPECIAL FEATURE 

애니메이션과 아니메, 그 모호한 경계의 발생_ 나호원

 

SPECIAL FEATURE 

한국미술, 한국애니메이션: 넓은 듯 좁은 지평_ 이정헌

 

 




아마노 요시타카(Yoshitaka Amano)

 <Sue> 2007 알루미늄 판넬에 혼합매체 55.12×78.74in

 




Special feature Ⅰ

애니메이션, 미술관을 침투하다

● 이효정 기자

 


“나 애니메이션 좋아해!” 몇 년 전만 해도 다 큰 성인이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문장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건 야구 관람같이 지극히 개인적취향일 뿐인데 이상하리만치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것으로 여겨졌다. 덕분에 어른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단 취향을 드러내는 건 왠지 어려운행동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오명은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실사가 아니란 시각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는지는몰라도,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이 다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없다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움직임이커져서일까? 키덜트(kidult)란 신조어의 탄생은 그것의 한 예시이며, 최근 쟁쟁한 작품 사이에서 꾸준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주토피아(Zootopia)>는성인 관객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을 그려냈다. 더는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만의 문화라고 규정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이제 ‘서브’에서 벗어나 ‘메이저’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현대미술의 한 카테고리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분분하다. 하지만 그것은 논란이 있든 말든 현대 예술 씬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물론, 당시 주빈국이 일본이었지만) 지난해‘키아프(KIAF)’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캐릭터들이 페어장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프’에 있으니 상업 애니메이션은 필시 아니다. 애니메이션과 순수 예술 경계에 있는 듯한 작품은 캔버스 위에 표현됐기에 형식상 회화가 맞는데, 표면적인 것들 때문인지 관람객의 판단을 모호하게 만든다. 무릇 아트 페어는 현 미술계 동향을 가장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이다. 이게 진짜 미술인가란 의문을 들게 하지만, 당당히 한 구역을 차지해 대중화의물꼬를 트고 있음을 각인시켰다. 





알렉스 퓌비랑(Alex Puvilland) 

<마다카스카(Madagascar)_Around the fire> 2005  





이렇게 애니메이션인가 순수 예술인가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이 미술관에 속출하고 있는 현상을 빚어낸 주역이 누굴까? 독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지금쯤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있을 것이다. 일본식 팝아트 ‘슈퍼플랫(Superflat)’의 창시자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다. 일본 오타쿠문화를 예술 장르의 하나로 편입시켰다 평가받는 그는 ‘카이카이 키키(Kaikia Kiki)’를 설립, ‘슈퍼플랫’ 확장에 적극 나서 아야 타카노(Aya Takano), 치호 아오시마(Chiho Aoshima), 미스터(Mr.) 등을 소속 작가로 두고 있다. 이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누가 보아도 일본 태생 작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일본 애니메이션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특히, 사랑스런 인물을 의미하는 모에 캐릭터들이 빼곡한 미스터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수 회화카테고리보다 애니메이션에 묶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그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고 있자니 솔직히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다만 미스터는 이런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 작품은 현대미술 작품”이라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의 캔버스에서 나타나는 캐릭터는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해온 것이 아닌 그가만들어낸 순수 개인 창작물이며, 사용 기법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서양 전통 회화의 기법인 캔버스에 그린 아크릴화로 양식적으론 엄연히 순수 회화의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 그 주장이다. 단지 나타나는 표상만 익숙지 않았던 독특한 캐릭터일 뿐이지, 그의 주장대로 작품 기법 그리고 순수 창작 캐릭터로구성되어있단 점은 미스터의 작품이 순수 회화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에 의문 품을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모에를 비롯, 일본 애니메이션을 관통하는 큰 특징이 있는데 바로 ‘미소녀’다. (모든 애니메이션적 요소가 그렇겠지만)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이 인물은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 문학 등   일본 문화를 논할 때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일본의 미소녀 사랑은 대단하다. 그 위력은 쇠퇴위기에 놓인 지역미술관을살릴 정도니 말이다. <미소녀의 미술사(Bishojo: Young Pretty Girls in Art History)>전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히로인 미소녀가 걸어온 미술사를 훑는 정말일본 문화스러운 내용을 담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소녀 역사의 시작은 애니메이션 돌풍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미인도>가 미소녀의 초기 모습이라 상정하기 때문이다. 미소녀의 역사를 예술 작품으로 조망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미소녀와 미술사를 동시에 관철할 수있도록 기획됐다. 






양재영 <Kidult Code> 2012 혼합매체 가변설치  






미소녀와 현대예술을 논할 때 아이다 마코토(Makoto Aida)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작가의 작품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괴기스럽다. 그의 작품에등장하는 소녀들은 온전치 못하다. 특히, ‘식용 인조소녀 미미(美味)짱’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관람객을 당황시키기 까지 한다. “미미짱은 자양이 풍부하며이름 그대로 매우 맛있기 때문에…사람들은 고대 일본 처녀를 본뜬 귀여운 외모와 사람에게 먹히는 것만이 삶의 보람인 순진한 성격에 매료되었다.” 미래식량난을 극복할 대체제로 일본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은 미소녀를 가정한 것이다. 게다가 미미짱은 식용을 넘어서 팔 다리가 잘린 채, 인간의 애완동물로정착하기에 이른다. 미미짱을 포함, 작가는 작품에 주로 여성을 성적, 폭력적 대상으로 삼아 타자에 의해 무분별한 피해를 입는 피해자로 그린다. 그의 작품은보는 이를 언짢게 한다. 여성성상품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일 그가 이를 실사로 표현했다면, 그는 비난의 화살을피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예술의 자유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윤리적인 것은 지켜야 마땅하다. 지금도 남성우월주의라는 비판을 종종 받고 있는 그가, 미소녀를 차용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한 비난의 화살을 받았을 것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이란 것도 결국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문화적 영향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일본 아트 씬에서는데츠카 오사무(Osamu Tezuka)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식 아니메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한편, 이에 버금가는 또 다른 강자가 있으니디즈니(Disney)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양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자로 우뚝 섰긴 했다만, 그래도 원조는 원조다. 오랜 기간 서양에선 수많은애니메이션을 쏟아냈고 동시에 많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기 주가를 올리고 있는 건 ‘미키마우스’다. 탄생한 지 약 100여 년이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렌디한 미키마우스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당대 유명 예술가 손을 거치기도했으며, 현재에도 끝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미키마우스가 지닌 외관적 특징 자체에 주목하는 작가도 있는 반면, 그것이 지닌 대중성이란권력을 차용하기 위해 미키마우스를 사용하는 작가들도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큰 눈에 귀여운 미키마우스는 온데간데 없고 마치 캐릭터 양말을 뒤집어놓은 양 실밥이 튀어나와 미키마우스인지 긴가민가하게 한 거대한 설치물이 자리하고 있다. 작품명도 실제 작품이 뒤집힌 것처럼 <Yekcim>이다. 






빌리 린(Billie Lynn) <Dead Mouse> 

2003 립 스톱 나일론, 선풍기   





작가는대중적 캐릭터 인형을 뒤집어 놓아 겉모습에 가려진 내면의 상처와 폭력성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말한다. 친숙한 캐릭터를 이용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면을 좀 더 호소력 짙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빌리 린(Billie Lynn)의 작품 맥락도 이와 비슷하다. <죽은 쥐(Dead Mouse)>에서 묘사된 미키마우스는입에서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있다. 이에,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작품을 의도적으로 거대 규모로제작했다. 다소 자극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몰개성, 단순한 생각, 정치적 자본주의에 대한 탐욕, 순수와 도덕의 상실 등을 미키마우스란 미국이 낳은 대표적캐릭터의 죽음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미키마우스는 피가 흘러넘치며 전시장 바닥을 메우는데, 이는 그 이슈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이 세상에서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작가는 경고하고 있다. 꽤 많은 작가가 애니메이션적 요소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애니메이션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바로 ‘친숙함’에서 찾으려 한다. 남녀노소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접하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물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옛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인간은어린시절 자신을 웃고 울게 한 애니메이션에 대한 나름의 향수를 하나쯤 가진다. 그렇기에 대중적으로 눈에 익은 캐릭터가 등장하면 시선을 우선 한 번 끄는점을 확보하기에 애니메이션적 요소는 그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존재니 말이다. 


그간 성황리에 막을 내린 <팀 버튼(Tim Burton)> (서울시립미술관, 2012.12.12-2013.4.14),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예술의전당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13.6.22-2013.9.22), <드림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서울시립미술관, 2016.4.30-2016.8.15) 등 이름만 들어도대중들을 설레게 하는 전시들이 대형공간에서 블록버스터급 전시로 펼쳐진 것 또한 위와 같은 이유다. 애니메이션을 상영하지 않는, 그들의 원화나 과정을 볼수 있는 이런 스튜디오 전시에는 어린이 관객보다 성인 관객이 많이 찾는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어느 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전시는 일 방문객 4,000명에육박한다고 하니 대중들에게 애니메이션이란 구미를 당기는 매력적 소스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전시는 의외로(?) 애니메이션 전시를 관람하는 것에그치지 않고 미술에 대한 관심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의 경우, 해당 전시를 보고 당시동시에 진행했던 <보이지 않는 가족>과 <도시 괴담>으로 관심이 이어져 윈-윈 효과를 보았다고 하니 애니메이션이 관람객 확보와 미술 대중화에 긍정적 역할을했음이 증명된 셈이다. 


미스터가 ‘애니마믹 비엔날레 2015-2016’를 위해 방한했을 당시 한 말이 있다. “이런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결국 미술작품으로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20년간 늘 그래 왔으니까.”1) 애니메이션이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비단 최근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아직 우리의 눈에어색한 데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현대예술이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 왔다. 이제는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로 받아들여지는마네(Edouard Manet)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Dejeuner sur l'herbe)> (1863)는 당시 너무나도 파격적인 탓에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삿대질을 면치못했고 심지어 그림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전시됐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내려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 마네의 그림은 우리에게 더 이상낯설지 않다.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현대미술, 지금 우리의 눈에는 그것이 아직까진 미술로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이들의 행보가 지금 우리 눈에 익지 않다고이상하다 단정 짓기엔 섣부르다. 어찌 됐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유의미한 일임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각주]

1) 인현우, 「日 대표작가 Mr. “내 작품은 미술관서 보는 현대미술」, 『한국일보』, 2015.11.2 

 

 



사진제공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Special feature Ⅱ

애니메이션과 아니메, 그 모호한 경계의 발생

● 나호원 애니메이션 연구가

 


카툰, 사진, 애니메이션


아주 간단한 질문: 뜬금없이 1920년대 미국의 대도시로 타임슬립을 했다. 요행히 우리가 도달한 곳은 영화라는 신문물을 보여주는 상영관 앞이다. 오늘날의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입구 한쪽은 ‘애니메이티드 픽처스(animated pictures)’를, 다른 한쪽은 ‘애니메이티드 카툰(animated cartoon)’을 상영한다고내걸었다. 각각의 상영관을 들어갔을 때 우리가 보게 된 것은 무엇일까? 답: 애니메이티드라는 말 때문에 두 곳 모두 애니메이션 전용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티드 픽처스를 내건 곳에서는 소위 ‘라이브액션(live action)’이라는 실사 영화를 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픽처스’는 ‘사진’을 일컬으며, 우리가 여전히 영화의 여러 이름 중 하나로 쓰는‘모션픽처스(motion pictures)’와 일맥상통한다. 애니메이티드 픽처스와 모션 픽처스는 결국 활동 사진이라는, 초기 영화의 작명법에 해당한다. 


그러면 애니메이티드 카툰은? 예상대로 이른바 ‘만화영화’를 가리킨다. 이때의 만화영화는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듯 아이들만을 겨냥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어른들이 더 즐겨보던 작품들이다. 카툰은 만화를 지칭하지만, 적어도 1920년대 까지만 해도 만평에 가까웠다. 카툰의 원래 뜻은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라파엘(Raffaello Sanzio)을 비롯한 당시의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 깨작깨작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성당의 천장화나 벽화를 그리는대형프로젝트를 주된 활동으로 삼았다. 이때 천정이나 벽면에 직접 스케치를 하는 무모함 대신, 치밀한 사전작업을 진행한다. 건축물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한후, 스케치북에 아이디어를 그린다. 그런 다음 실제사이즈로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필요한 크기의 종이 위에 스케치와  (필요에 따라) 대략적인 채색을한다. 이렇게 마련한 밑그림을 카툰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한켠에 ‘라파엘의카툰코트(The Raffeaello Cartoon Court)’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서 만화가 라파엘 화백의 만화방을 기대하면 안 된다.


카툰의 어원은 ‘cartone’, 즉 카드, 종이에서 왔다. 이로부터 스케치, 데셍, 밑그림 등 주로 드로잉(drawing)을 의미하는 카툰이라는 말이 이어져 왔고, 19세기 후반 신문과 잡지라는 대량인쇄 매체의 등장과 함께 카툰은 만평과 연재만화로 그 의미와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이때 카툰은 동일한 매체의 지면에도입된 사진과는 대립되는 의미로, ‘그림’이라는 면모를 강조하게 된다. 그렇다고 ‘웃음, 개그, 넌센스’를 당연하게 확보한 것은 아니다. 카툰에 풍자와촌철살인, 비유와 야유 등이 가미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만화’로서의 의미가 완성된다.






<아스트로 보이-아톰의 귀환(Astro Boy)> 2009  

 




카툰 애니메이션의 매혹


그렇다면 어른들이 보기 시작한 애니메이티드 카툰은 어떤 것일까? 얼마나 야했길래, 혹은 심오했길래?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기 싫지만, 1920년대에주로 어른들이 봤던 작품은 <고양이 펠릭스(Felix the Cat)>, ‘미키마우스(Mickey Mouse)’시리즈, <베티붑(Betty Boop)> 같은 것들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검색할 수 있고, 굳이 성인인증을 받을 필요는 없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봐도 별문제 없을 법한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어른관객들은 시시껄렁한 작품으로 시간이나 때우고자 하였을까? 물론 <고양이 펠릭스>를 본다고 당신이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해는 말자. 어디까지나요즘에도 유지되고 있는 어떤 선입견을 인용한 것일 뿐이다. 아무튼, 당시에 <고양이 펠릭스>를 비롯한 최신 애니메이션을 보려면 제법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왜냐면 그 작품이 상영되는 곳은 카페트가 깔려 있고, 로비 천정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으며, 스크린 좌우에는 벨벳 커튼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큰 곳이라면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작은 오케스트라 공간이 있어서, 실시간 연주를 하기도 한다.


제법 고급스런 상영관의 객석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몇몇 유명인을 꼽아 보자면,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아드리안 스톡스(Adrian Stokes),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 등이 있다. “미키마우스냐, 베티붑이냐”라는 취향 차이는 있지만, 모두들 애니메이션 팬들이었다. 대부분 <고양이 펠릭스>에서부터 애니메이션에 매료됐다. 최초로히트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꼽히곤 하는 펠릭스는 다양한 캐릭터상품을 쏟아 내었고, 그중에서도 펠릭스 담배케이스와 펠릭스 재떨이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에속했다. 점잖은 문화예술계 어르신들이 몸소 극장에 출타하여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본 작품들은 ‘초기애니메이션’에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거기에는 라이브액션을 훌쩍 뛰어넘을 미적 실천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된 견해를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라이브액션은 사진을 움직였지만, 그러하기에 사진적 재현의 틀 속에 갇혀 있다. 사진 이미지의 구속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움직임을 구현해 낸 것이애니메이션이며, 그 속에 당시 사회의 온갖 모순과 아이러니가 조롱 되고 풍자되어 나오고 있다.






이동기 <A의 머리를 들고 있는 A> 2012 



 


디즈니의 사실주의와 국제적 양식으로서의 모던카툰


고양이 꼬리가 물음표나 느낌표가 되고, 팔다리가 한없이 늘어났다가 납작하게 되고, 단단해 보였던 신체가 별안간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고, 멀쩡한 몸이 수십개의 개체로 쪼개졌다가 다시 순식간에 합체하고, 단순노동을 무한 반복해대던 육신에 가속도가 붙어 기계가 되는 등등. 애니메이션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산업자본주의의 일상풍경을 그 무엇보다도 훨씬 신랄하면서도 우회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사운드가 없든, 있든 간에 애니메이션 속움직임에는 리듬이 있고, 템포가 있고, 바운스가 있고, 비트가 있었다. 


이러한 노선은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급속히 수정 된다. 디즈니 스튜디오(Walt Disney Studio)는 이제부터 ‘라이브액션보다 더 사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선언한다. 이전까지 세간의 흥미를 끌어들였던 자유로운 움직임은기술적으로 미성숙했을 때에나 추구했던 유치함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렇게 기존 애니메이션과의 단절을 보여주기 위한 시금석으로 기획한 것이 바로, 디즈니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다. 경쟁상대는 난립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아니라, 점차 체계를 설립하고 세력을 형성해가던할리우드 영화스튜디오들이다. 라이브액션을 넘어선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위해 디즈니스튜디오도 몸집을 불리고, 그만큼 충원된 인력을 트레이닝하기 위한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철저히 분업화된 제작시스템을 갖춰나갔다. 성과는 분명 했다.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이 아닌 온전한 영화작품으로경쟁하고,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주요인물은 이전의 카툰 캐릭터가 아닌, 멀끔한 배우의 행색을 하고, 멀쩡한 몸짓으로 우아하고 부드러운 연기를 한다. 중심사건은 좌충우돌, 넌센스, 슬랩스틱이 버무러진 해프닝의 총집합이 아니라, 관습적인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충실히 밟아나간다. 사운드는 의성어, 의태어를 과장하는 대신, 이야기의정서적 측면을 한껏 고양해야 했다. 그림자는 제멋대로 살아 움직이던 개그 소재에서 벗어나, 사실성을 강조하는 명암 처리로 쓰임이 바뀐다. 배경은 원근법에기반하여 깊이의 환영을 담아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요즘에도 ‘아니메’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하여 떠올리는 디즈니식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종합한 것으로이해된다. 이전까지 사진적 재현에 기반한 라이브액션을 넘어설 것으로 평가받던 애니메이션은 이제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도 충실하게 라이브액션을 흉내냄으로써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 것이다. 





<베티붑(Betty Boop)>  






그러나 당대의 ‘리얼리즘’ 스타일이 현재까지 쭉 이어온 것은 아니다. <백설공주>의 사실성은 10년도 넘기지 못했다. 2차대전이라는 큰 사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백설공주> 급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매년 장편애니메이션을 하나씩 뽑아내는 건 무리였다. 작업 부담도 컸거니와, 제작비와 상영수익 사이에균형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관객들도 ‘비주얼의 멋짐’에 잠시 매혹되었지만, 그로 인해 사라진 ‘막 나가는 이야기의 맛’을 그리워했다. 태세전환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선, 디즈니의 제작시스템에 저항하다가 ‘불온세력’으로 낙인 찍혀 쫓겨난 아티스트들은 UPA라는 독립스튜디오를차렸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반디즈니, 반리얼리즘’이었고, 대안적인 미적 전략은 ‘모던카툰’이었다. 


깊이의 환영에 맞선 평면성, 복잡한 디테일을 떨쳐낸단순함, 양감에서 벗어난 선, 부드러운 동작이 아닌 꼭 필요 할 때만 반응하는 움직임, 화려한 총천연색 풀컬러 대신 제한된 컬러팔레트, 등신대 아닌 단순화한카툰캐릭터 등등. 모던카툰은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 초기 기반이었던 ‘카툰’의 기본을 유지하되, 이를 ‘모던하게’ 미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이때 ‘모던한 미’라고 감히 이름 붙일 수 있는 까닭은 이들이 찾아낸 레퍼런스들이 모던한 아티스트들이었기 때문이다. 시기적, 계통적 연관성은 부족할지언정,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파울 클레(Paul Klee), 호안 미로(Joan Miro) 등이 모던카툰이라는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들어왔다.


이러한 스타일이라면 굳이 애니메이션 공장(말 그대로 포드자동차 공장보다도 더 포드주의적으로 굴러가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을 따르지 않고, 애니메이션아티스트의 개성을 발휘하고 수평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제작 기간도 짧고, 제작비용도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발력 있게반응하고, 리얼리즘의 족쇄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담백한 그래픽 스타일로 훨씬 자유롭게 어필할 수 있었다. 여기에 화답한 진영은 자그레브를 비롯한 동유럽의중소규모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UPA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전까지 동유럽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미국 애니메이션스튜디오의 프로젝트를 하청 받아서 작업을 해왔는데, 냉전 체제 속에서 더 이상 그러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자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유지할 수 있는 스타일, 이에 더하여 풍자적 요소를 재치있게 펼쳐낼 수 있는 스타일. 


이렇게 ‘모던카툰’ 스타일은 체제의 장벽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 또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가세한다. 바로 일본 망가, 아니메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데츠카 오사무(Osamu Tezuka)! <어느 길모퉁이 이야기>(1962)라는작품을 사전 정보 없이 본다면, 그것을 만든이가 오사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다. 이 작품이 만들어 진 것은 1962년, 바로 ‘우주소년아톰’(1963) TV시리즈가 첫 선을 보이기 1년 전이다. 비로소 모던카툰스타일은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인터내셔널스타일’로 확립 된다.






김두진 <5-blur blur blur> 

2004 캔버스에 유채 160×160cm 





여전히 만들어진 타자로서의 아니메


‘모던카툰’과 리얼리즘, 애니메이션과 아니메의 구분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혹은 역으로 너무나 단순명료하게 만들게 된 계기는 TV의 등장이다. TV 속애니메이션은 고정된 방송시간을 마련하였다. 제작스튜디오 입장에서 보자면, 안정된 방영 스케줄을 확보한 동시에, 일정 분량의 작품을 매주 만들어야 한다는점을 의미한다. 이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제작방식과 제작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짧은 기간 내에, 적은 제작비로, 꾸준히, 발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모던카툰스타일은 제격이었다. 단, 이전까지 제법 날카로웠던 풍자적 시각은 제거하고 주된 TV 시청자층인 ‘가족’, 그리고‘어린이’에 이야기를 맞춰야 한다. 미국의 첫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고인돌 가족, 플린스턴(The Flintstones)>(1960)이고, 일본의 경우는<우주소년아톰>이다. 움직임은 최소화됐다. 캐릭터는 고정된 채, 몇 가지 제한된 입 모양만 가끔 뻐끔대고, 몇 초에 한 번 눈을 껌뻑이면 10초 정도는 가뿐하게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장면은 시리즈 내내 되풀이하여 보여줌으로써 해결된다.  


애초에 미국애니메이션의 대명사를 디즈니로 꼽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니메로 뭉뚱그려 대놓고 비교하는 건 무모한 시도이다. 디즈니의 중점은 TV용보다는극장용 장편이고, 흔히 아니메로 엮이는 작품들 중에서 우리가 팝아트 적(이에 키치스러움까지 더하기도 하는) 스타일로 꼽는 몇몇 경우들은 아니메 중에서도TV 시리즈에 편중되거나, 지극히 특화된 장르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중 몇몇은 극장용으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아니메스러운 극장용 애니메이션 스타일은주류가 아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TV 시리즈에서 극장용으로 넘어가면서 소위 ‘극화’체와 같은 스타일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망가와 연동된애니메이션이라는 식으로 아니메에 접근하더라도, 만화라는 매체와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은 아니메의 필수요건도 아니며, 아니메만의 현상도 아니다. 일본이라는 국가 단위로 아니메를 규정하는 것은 그 안의 다양성과 폭넓은 스펙트럼을 놓치는 우를 범한다. 때론 오타쿠라는 특정 소비집단을 중심에 두고바라본다고 해도, 그들을 하나의 취향을 공유하는 집단적 주체로 엮을 수도 없다. 더군다나 일반대중이 오타쿠가 선호하는 작품을 따르는 순간, 오타쿠들은자신들만의 새로운 보물을 찾고자 탈주해 버린다.


그사이, 디즈니와 픽사(Pixar)를 비롯한 미국의 애니메이터들은 자신들이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를 비롯한 아니메의 팬이라고 자처하고 나섰으며, 아니메 또한 할리우드의 다양한 스타일과 특징을 나름대로 차용하고 소화하고 있다. 만약 스타일과 아이콘으로 제시되는 아니메코드가 여전히 궁금하다면, 그것은 그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말로 ‘저 너머 무엇인가를 예술적으로 동경’한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 애초에 실체도 모호하며, 받아들이는 이의 욕망과 판타지가 투영된 상상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낯선 것과 익숙함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글쓴이 나호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실험애니메이션 제작을, 영국 왕립미술대학에서 애니메이션 이론을 공부하였고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에서애니메이션이론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강사로, 젊은 애니메이션/영상감독들과 만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만화평론과 영화평론을 쓰기도 했다.

 

 




박광수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2015 3채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Special feature Ⅲ

한국미술, 한국애니메이션: 넓은 듯 좁은 지평

● 이정헌 객원기자

 


누구나 알고 아무도 모르는


용어 혹은 개념 정립이 문제다. 개념 정립이 되지 않았을 때, 혼용 또는 오용으로 겪는 문제가 의미 지평을 비좁게 만든다. 고지식한 사전적 용어 정립이 해당개념의 본의와 쓰임새 모두를 뒷받침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목적과 발전 없는 개념은 확고한 제 위치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며, 중요한 사태 앞에서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말하는 ‘현대미술’과 ‘애니메이션’은 어떠한가? 이에 더해 ‘현대미술과 애니메이션의 관계’라면? 장르구분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21세기 미술계 복판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개념 정립이 단편적으로, 협소하게 이뤄졌기 때문 아닐까? 컨템포러리-아트란 개념의 본 의미는 우리나라와 동떨어져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나라와 지역이 말하는 컨템포러리와 한국이 말하는‘컨템포러리’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고지식하게 개념이 가진 정통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컨템포러리와 아트라는 개념은 적어도 한국에 맞게‘번안’ 됐어야 하고, 지금이라도 이를 위한 연구가 끊임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사회는 컨템포러리-아트가 함의한 수많은 의미를 제 방식으로 밝혀본 바없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적어도 여럿이 동의할 만한 정의를 끌어냈어야 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명사 또한 그러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고 여기며 손쉽게쓰는 개념이 주는 혼란은 생각보다 크다. 이 글에서 이 커다란 문제를 논할 수는 없다. 먼저 강조하고 넘어갈 점은, 현대미술이라 일컫는 작품 가운데 애니메이션을 발견하는 일과 근래 애니메이션장르를 주제 삼는 전시가 많다는 것이다. 작품이나 전시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사용되는 기법이든, 단편적인 이미지 전유/차용 방식을 취한다는 건 모두가동의할 만하다. 다만, 여기서 애니메이션이라 말하는 부분이 지극히 사전적 의미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과 제 방식의 개념 수용 및 설정에 애먹는 우리 사회에선표류하는 이 장르를 잡아 세울 학문적, 미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명쾌한 논의 진전이 없다.






히로 안도 작  

 





태어난 곳만 배회하는 한국애니메이션


먼저 간략히 한국 애니메이션의 행보, 아니 배회를 살펴보자. (나는 한국사회가 정의하는 현대가 언제쯤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미술에서 말하는컨템포러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컨템포러리’를 호출한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의 시점으로)한국의 현대 애니메이션은 1950년대 말, 광고 산업의복판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영화와 함께 미학으로 장르 접근을 시도하던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접어든한국 애니메이션은 ‘국뽕’에 잔뜩 취해 유사 선전용 TV, 극장판 작품들을 연신 쏟아냈다. 몇몇 해외 걸작들이 철학적 담론으로 재구성/반성되기 시작되었던때, 그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완전한 사업가의 면모를 띤다. 자본이 풀리면, 반성보다 모험을 하기마련. ‘벤처 정신’으로 가득한 청년기의 그는, 일본등지에서 흔히 보이던 성인용 장편과 예술작품-몽타주 기법 등에 경도된-을 흉내 내보기로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의 소년기 모습을 향수했고, 이내 그에게시련을 준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앞날을 가름할 8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등장했지만, 완성도 못 하고 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거품-투자가이어졌고, 이에 발맞춰 전국에 애니메이션과가 우후죽순 생겼다(현재 애니메이션/만화과는 게임학과로 편입되는 추세). 단편은커녕 그림도 안 그려본 이들이교수 자리에 올랐다. 교육이 부재했고, 그렇기에 장르의 토대를 만들어줄 학문이 빈약하여,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넘어오는 사이, 애니메이션 쿼터제와심의규정 강화 등 악재를 거치며 자기방어에 실패. 현재 그는 그만 오직 아동/교육용 시장에서만 놀고 있는 아재로 거듭났다. 시장은 그렇게 굳어졌고, 그구도에 걸맞게 한국사회 또한 그에 대한 인식을 공고히 했다.


셀 애니메이션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넘어오는 사이,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의 ‘기술자’들은 답답한 전공교육 안에서 속속 등장했지만, 그마저도 외국으로빠져나가거나 게임 산업으로 흡수되었다. 물론, 여전히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감독들과 아티스트들이 남아 있으나,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들은 국제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지만, 국내에서 굳어진 장르에 대한 사회통념, 고정관념을 쉽사리 바꾸기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하나 마나 한소리지만, 그들은 컨템포러리-아트에서 작가들의 위상처럼, 산업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 투자는 이제, 그리고 앞으로도 이뤄지지 않는다. 형식실험과 나름의, 고유한 서사성을 구사하던 그들의 표류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을 미학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곳은, 근래 잦아진 애니메이션 관련 작품과 전시 양상을 보건데미술계로 보인다. 애니메이션계가 아니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미술 전시장은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제자리에 더욱 단단히 고정시키길 즐긴다.






마리킴 <Hal 9000>(스틸) 2015 Rotten metal box with 

2 movies on 2 sides 220×40×160cm

 

 


전시장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점


앞서 말한 대로 흔히 ‘만화영화’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이 지닌 사회통념은 여전히 완고하다. 이는, 1980년대 영상미학이나 영화이론, 하다못해방송촬영/연출 이론에서 정리한 개념이 아직 채 수용되지 못했기에 생긴 인식 장벽이라기보다, ‘황금알을 낳는’, ‘자동차 수만 대 수출에 버금가는’ 콘텐츠산업 영역에서만 개념이 오용되고 말았기 때문이리라. 한국사회에서 이뤄지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연구 및 논의들은 대부분 부차적 콘텐츠 개발이나 수출에초점이 맞춰져 있지, 장르가 지닌 기법요소나 형식요소,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미(美)적 요소에는 큰 관심이 없다. 영상미나 연출법 등은 고작방송영상촬영의 관점에서 논의되곤 한다. 자본논리에 복속된 연구가 규정한 애니메이션은 제 진가를 나타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계가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이 이러하다면, 미술 전시의 영역에서만큼은 위에 설명한 미적 차원의 접근이 이뤄져야 이로울 테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개최된 애니메이션 전시에는 두 가지 전시 양상이 있다. 애석하게도 현대미술 전시장마저 애니메이션(그뿐만 아니라 만화, 게임)을산업 차원에 정착시키고 전시 자체 또한 산업으로만 만들려 드는 것, 하나. 반대로,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의 속성 자체에 주목하며, 예나 지금이나 늘관객들을 계몽시키려는 듯 장르에 대한 인식 개선을 호소하는 전시, 둘. 이 두 가지 패턴은 변함없다. 전자는, 달리 말하자면, 오직 ‘흥행’을 염두에 둔기획이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전시에 대해 괜한 트집을 잡는 게 아니다. 장르의 의미를 밝혀 보는 시도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다. 이 말은 곧한국이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고스란히 나타낸다. 가령, <팀 버튼(Tim Burton)>전이나 <픽사 스튜디오(Pixar: 20 Years of Animation)>등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모마) 발 대형 기획 전시들의 흥행은 어김없이 국내로 수입됐다. 





윤향로 <s25e00 : part1> 2015 싱글 채널 비디오 17분    





모마가 자신들의 유료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이 전시들만 애니메이션이라며 개최한 건 아니다. 이 전시와 병행하여 선보인 프로그램 및 전시들-195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독립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상영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의 고전적 기법으로, 현대 모션캡처의 조상 격인 ‘로토스코핑(rotoscoping)’에 천착한 작가들의작품을 집중 소개한 프로그램-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다. 마치 한국의 개념수입사와 같은 격이랄까. 유명 스튜디오를 끼고 개최된 애니메이션 전시는미술관으로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이 수익이 분명 더 나은 전시로 이어지리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수익뿐이라면 사정이 다르지않은가. 공공 미술관의 전시는 때때로 공익에 부합해야 한다(공공이나 공익 개념 또한 한국사회는 연구/반성한 바 없지만). 대규모 스튜디오의 전시는애니메이션의 의미 지평을 열어젖히는 게 아니라, 도리어 고유의 스펙터클로 압박해 좁게 만들기 일쑤다.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은 소개되지 않는 건당연하다(대신 만화계 거장들의 대규모 전시가 이뤄졌지만, 흥행엔 실패했다).


후자는, 나름 당대의 국내외 독립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며 장르에 대한 인식개선을 꾀한다. 허나 이 과정에서 서브컬처나 팝아트, 때때로 뉴미디어 영역의 옛담론을 너무 쉽게, 섣불리 호출하는 실수를 곧잘 저지른다. 한국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연구와 형식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기에, 미술계로서는 자신이체험했던 경험론을 대입하는 것 같다. 잘 해석되면 좋지만, 이 방식은 곧 전시 작품 구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차용/전유한 이미지 나열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몇몇 팝아트 작가들이 단골로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가 너무 많기에 다양성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작가들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이는 건 전혀 놀랍지 않다. 이 역시 지난 10여 년간의 일인데, 근래 특이할 점을 굳이 꼽자면, 애니메이션을 전유하여 취하는작가들의 등장이다. 예를 들어 윤향로나 이동기 작가의 작품에 쓰인 만화 같은 이미지들-70-90년대 셀 애니메이션 배경으로 쓰인 그라데이션으로 가득한, 혹은 동작효과 선으로 빼곡한-의 전유/차용이 있다. 앞서 말했듯, 누구도 그들이 애니메이션의 속성에 대해 논하고자 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기획자부터 ‘만화적 요소’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삼가야 한다. 더불어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동일 개념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둘은 시작부터 지금껏 엄연히,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걸어왔다. 이런 시각을 가진 기획 의도는, 도리어 장르의 의미를 더 협소하게 만들 따름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는 개념의 문제이고, 굳이 애니메이션이 나타나는 영역을 구분할 일이 아니다. 단순히 유사-애니메이션, 유사-만화 이미지 전유가장르를 지시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를 애니메이터로 부르지 않고, 혹은 전후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어니기어(Ernie Gehr)가 모마에 애니메이션 작품을 상영했다고 해서, 그를 애니메이터나 현대미술작가로 헷갈려 하지 않는다.

 




유대영(Dizi Riu) <날 봐요> 비디오, 조형, 모니터, 

자작나무, 거울, 단채널 영상  






그래서, 그는 어디에 서 있는가


제도권 미술 전시 안에서 잘 꾸민 애니메이션 기획전시를 보기란 힘든 일이다. 2009년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개최한 <크로스 애니메이트>전이애니메이션이란 장르를 현대미술이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으나 현대미술작가로 불리는 이들과 ‘(전통적) 아방가르드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만든 작품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주목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두 개념이 함께 공유하는 영역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이를 드러내기보다두 개념 사이에 작업 과정과 사고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다른지를 부각하는 작업이 더 유효해 보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크게 다를 리 없지 않았을까?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이들의 작업 방식과 태도가 미술계 작가들보다 영상기법의 기본에 충실하다거나 미장센이 현란하다든지 할 리 없지 않은가. 이프로세스를 착실히 드러내 주는 건, 차라리 ‘상품’을 만드는 픽사(Pixar), 지브리(Ghibli), 드림웍스(Deramworks) 스튜디오 등의 전시다. 


그렇지만 이전시들도 단지 어린이들에게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옛 방식의 고단한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부각시킬 뿐이다. 이러한 전시를 준비하는 대형기획사나미술관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나, 전시는 물론 전시물 또한 ‘산업’이란 밑바탕에 젖어 있을 따름이라 기계 같은 공정에 미의 잣대를 억지로갖다 대는 불상사를 범한다. 차라리 유리 놀스테인(Yuri Norstein) 같은 ‘장인-할아버지-(구소련식)노동집약-독립-예술-애니메이터’의 전시를 여는 편이여러모로 더 교육적일 테다. 몽타주 기법은 물론 컷아웃 애니메이션의 새장을 열어젖힌 ‘작가’인 그가 픽사가 선보인 3D 애니메이션과 비교했을 때, 위상이뒤질 리 없다. 다만 부모와 어린이들에게 지명도가 떨어질 뿐이다.






엠마 드 스와에프(Emma De Swaef), 마르크 제임스 로엘스

(Marc James Roels) <Oh, willy>(스틸컷) 2012





<크로스 애니메이트>전 이후로, 미술계에서 애니메이션 장르의 양태를 다룬 전시는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판국이다. 장르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나 커다란흐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21세기에 굳이 그럴 필요성도 없어 보인다. 반면, 미술 제도권 바깥에선 미미하게나마 형식 및 미학 실험이 한창이다. 국내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예로는,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인디애니페스트’가 있다. 두 페스티벌은 전시 형태가 아니지만, 출품작들 면면이주목할 만하다. 둘 다 지원금이 없다면 자생할 수 없는 지경이긴 하다.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이 모여 만든 애니메이션 그룹 ‘쉘터’가 기획해 2011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다. 10초짜리초단편 애니메이션 150여 편이 출품되는데, 출품작들은 속성과 스마트 기기로 매개되는 미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스팟 영상이 온라인으로 횡횡하는 현재,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몇몇 작품은 진지한 연구가 가능할 만큼 다양한 의미를 함의한다. 가령, 청년 스튜디오 특별전이나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관련된 주제들은 애니메이션계 안팎으로 공론화되기에도 충분하다. 이외에도 11회째를 진행한‘인디애니페스트’가 있다. 이 행사는 애니메이션을 이루는 기법과 각종 형식성을 집중 조명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올해부터는 아시아 지역 작품을 중점적으로다루는 경쟁부문 ‘아시아로’를 만들어 국제 행사로서 더욱 큰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두 페스티벌은 이른바 불쌍한 작가주의를 지지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매년안도의 한숨을 짓게 하는 행사들이다. 치기 어린 초단편 작품과 쥐꼬리만 한 지원금으로 단 한 명이 꾸역꾸역 만들어내는 작품은, 기실 수익산업으로만 점철된국내 애니메이션계 새 지평과 같다. 

 

 

글쓴이 이정헌은 미술이론을 전공했지만, 꿈은 늘 만화가였다. 미술전문지 두 곳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몇 번의 전시기획을 했으며, 종종 책 편집과 만화나 전시리뷰를 한다. 하지만 무엇 하나 잘 하지 못한다. 지금은 제주로 귀향(낙향)하여 여러 궁리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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