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투 아일랜드(Cockatoo Island: Embassy of the Real)는 1839년부터 30년간 교도소로 이용 되던 곳이다. 이후 발전소, 조선소 등이 들어서면서 한때 시드니의 경제에 일조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이 섬의 모든 시설은 1979년에 완전히 폐쇄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하지만 시드니 정부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8년부터 ‘BoS’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코카투 아일랜드는 1800년대의 교도소 시설과 육중한 산업 시설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관람자들은 지난 세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존재하는 공간에서 현대미술을 마주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코카투 아일랜드에 설치된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하는 신체와 공간 사이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는 단연 이불이다. ‘실재의 대사관’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소개될 만큼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있는 이불은 산업용 재료를 이용하여 1,640 평방미터에 달하는 터빈 홀(Turbine Hall)을 거대한 조각들로 가득 채웠다.
Lauren Brincat <Salt Lines- Play It As It Sounds, Performance Instruments>
2015-16 Sail cloth, dacron, church bell ropes, brass and wood.
Installation view of the 20th Biennale of Sydney(2016) at Carriag
건축적인 규모로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이불의 작품은 도달하기 어려운 것/불가능한 것에 대한 끝없는 열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갈망이 담긴 공상과학소설처럼. 몸과 마음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해 온 일본 작가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는 침대와 검은색 실을 이용하여 과거 죄수들의 막사였던 공간을 초현실적인 장소로 변화 시켰다. 작가는 이제 막 잠에 빠져들려 하는 누군가의 뇌, 그 신경체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만 같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신경섬유처럼 느껴진다. 3차원의 공간에 펼쳐지는 드로잉은 작가 특유의 장소-특정적인 작업이다. 캐리지웍스(Carriageworks: Embassy of Disappearance)는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 시드니의 경제가 활성화되었던 19세기에 산업공간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화물운송열차가 이곳으로 드나들었고 대장장이들의 공방도 많이 생겨났다. 지금은 복합문화시설로 변경되었지만, 예전의 벽돌건물은 물론 철로와 플랫폼까지 당시의 시설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캐리지웍스는 ‘BoS’에서 가장 많은, 23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실험적인 작품들이 다수 배치되었다. 조금은 난해한 작품들 사이에서 반갑게도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을 발견했다. 대만 작가 리밍웨이(Lee Mingwei)가 <게르니카(Guernica)>(1937)를 바닥에 그린 것이다. 그것도 원작의 2배 가까운 크기에, 재료는 물감이 아닌 모래로 말이다. 이 놀라운 모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작가가 퍼포머들과 함께 대나무 빗자루로 그림을 지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게르니카는 머지않아 추상화로 변할 것이다.
Chiharu Shiota <Flowing Water> 2009-2016 beds, thread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of the 20th Biennale of Sydney
(2016) at Cockatoo Island. Courtesy the artist. This version was
created for the ‘20th Biennale of Sydney’Photographer: Ben
레드펀 월(Redfern Wall: In-between Spaces)에서는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Daniel Boyd)의 아름다운 작업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는 과학이론을 참조하여, 검은색으로 칠한 벽면을 12,000여 개의 거울로 수놓았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물방울무늬의 거울 조각은 이곳을 오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비추면서 별자리처럼 반짝인다. 다니엘 보이드의 작업은 시드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 Em bassy of Translation)에서도 만날 수 있다. 호주원주민들의 역사가 담긴 회화들이다. 설치작업과 마찬가지로 그의 그림에서 도트 무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원주민 혼혈이라는 그의 태생적인 환경에서 연유한 것이다. 반복적인 도트 패턴은 원주민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는 비록 과거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하면서 서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작품의 내용은 항상 그가 자라면서 보고 들었던 원주민들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참고로 <What Remains>가 설치된 레드펀 지역은 애보리진(aborigine)의 거주 문제로 시드니 정부와 원주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Bharti Kher <Six Women> 2013-15 plaster of paris,
wood, metal 123×61×95.5cm each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London, New York
and Zurich Photograph: Bharti Kher Studio
캠퍼다운 공동묘지(Camperdown Cemetery: In-between Spaces)는 1848년부터 1942년까지 시드니의 중요한 묘소였다. 식민지 시절 초창기 정부 인사들을 비롯하여 약 18,000여 명이 안치되어 있으며 2,000여 개의 묘비가 남아있는 상태이다. 현재 이 공동묘지에서는 ‘죽음을 지우는’ 일이 한창 진행 중이다. 스웨덴 작가 보 크리스티안 라르손(Bo Christian Larsson)이 남아있는 묘비를 흰 천으로 정교하게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묘비에 꼭 맞게 제작한 ‘옷을 입히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이 지역의 재봉사들을 고용하였고, 공동묘지 안에 컨테이너를 설치하여 작업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 성별, 개인사 등 묘비에 새겨진 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 둘 사라지게 된다. 비엔날레가 끝날 때쯤이면 캠퍼다운 공동묘지는 익명의 기념비들로 가득 찰 것이다.
Mella Jaarsma <Dogwalk> 2015-16 textile, leather, iron,
stainless steel, stuffed animals dimensions variable,
12 costumes, approximately 200×100×100cm each
Courtesy the artist and ARNDT Fine Art Created
for the ‘20th Biennale of Sydney’ Photographer: Ben Symons
이번 ‘BoS’의 작품 경향은 소개한 바와 같이 장소-특정적인 작업이 우세하지만, 안무가들이 참여한 퍼포먼스가 증가했다는 점과 전시공간에서의 연극성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는 로젠탈의 기획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결과로써 그녀는 지난 ‘BoS’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기획의 퍼포먼스와 실험적인 작품들을 대거 선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과한 나머지 관념과 사상이 넘쳐나면서 주제 전달은 다소 미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oS’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각적인 경험은 분명히 경이롭고 가치 있다. 축제를 즐기기엔 충분한 이유이다.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