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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9, Aug 2016

사적인 자본으로 공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는가?

The Floating Piers

2016년 여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의 이세오 호수(Lake Iseo)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16일간 이곳을 방문한 1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맨몸으로 물 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이 기적은 설치예술가 부부인 크리스토(Christo)와 잔-클로드(Jeanne-Claude)의 ‘플로팅 피어스(The Floating Piers)’(2014-2016), 한국어로 ‘떠 있는 부두’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3km 길이의 천으로 만들어진 ‘플로팅 피어스’는 16일 동안만 임시로 설치되었으며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24시간 관람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2005년 뉴욕 센트럴 파크(Central Park, NYC)에 설치한 <게이츠(The Gates)>(1979-2005) 이후 실외 대형 설치작품으로는 10년 만에 처음이며, 부인 잔-클로드가 2009년에 타계한 이후 남편 크리스토 혼자 완성한 최초의 야외 설치작품이라 더 의미가 있다.
● 기획 편집부 ● 진행·글 임성연 ● 사진 CJV 제공

‘The Floating Piers’ Lake Iseo, Italy, 2014-16 Photo: Wolfgang Volz ⓒ 2016 Chri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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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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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계에서 크리스토의 작품은 콜라주와 드로잉의 평면 실내작품 위주로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그리 ‘핫’한 외국 작가로 평가받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를 포함한 외국 미디어에서는 연일 ‘야단법석’ 반응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한국에서는 특이한 해외토픽 동영상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되었다. 프로젝트를 관람한 필자는 이탈리아 현지의 반응처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왜 이탈리아까지 가야하는지 길게 설명해야만 했다. 

1935년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에 태어난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는 사회주의 체제의 국유화된 경제체제에서 자랐다. 소피아 미술학교(National Academy of Art, Sofia)에서 정식 사회주의 미술교육을 받은 크리스토는 표현의 한계를 경험하며 동시에 사회주의의 은폐를 위한 ‘포장’ 기술을 배웠고 그때의 배움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억압적인 환경에 환멸을 느낀 크리스토는 1957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다. 서방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해프닝(Happening), 팝아트(Pop Art),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로 다른 두 사회의 특성을 함께 그의 작품에 반영했다. 




The Floating Piers (Project for Lake Iseo, Italy) Collage 2014 Pencil, wax crayon, enamel paint 22×17 

(55.9×43.2cm) Photograph by Wolfgang Volz, technical maps, fabric sample and tape Photo: Andre Grossmann  2014 Christo





후원자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하던 작가는 프랑스 장교의 딸 잔-클로드와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작업의 형식에 변화가 생긴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잔-클로드는 결혼 초창기에는 크리스토의 매니저같은 역할을 했다. 부부가 한 팀이 되면서부터 소규모 오브제 작품을 벗어나 길거리와 자연을 포장하는 대형 설치 프로젝트로 확대될 수 있었다. 야외 포장 스타일의 시작은 <계곡의 커튼(Valley Curtain, Grand Hogback, Rifle, Colorado)> (1970-1972)에서 처음 찾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2 780㎡에 이르는 주황색 나일론 천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커튼의 형태다. 400m의 폭과 111m 높이에 달하는 대담한 규모의 작품은 아쉽게도 바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28시간 만에 파괴되었다. 이 작업부터 부부가 공동으로 세운 회사 CJV에서 마련한 비용으로만 모든 작품이 제작된다. 프로젝트 준비 작업을 위해 제작된 드로잉, 꼴라주, 포토 몽타주, 축소모형 등은 CJV 회사를 통해 판매되며 그 금액은 장소 물색을 위한 여행 경비, 준비 단계, 연구 작업뿐 아니라 제작과 철수까지 프로젝트 전체의 비용을 충당한다. 

정부 지원이나 기업 후원 없이 독립적 재정으로만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들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소요비용과 마찬가지로 장소 선택도 부부의 순수한 예술적 신념으로 결정되며 어떠한 정치·경제적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이번 ‘플로팅 피어스’도 마찬가지로 CJV 회사의 재정과 크리스토의 신념에 따른 결정으로 진행되었다. ‘플로팅 피어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014년 처음 계획되어 2016년에 완성된 프로젝트다. 그의 다른 작품들, 예를 들어 전작 <게이츠>의 경우는 25년을 공들여 계획하고 뉴욕 시민들을 설득하여2005년에서야 그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너무 쉽게 실현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물 위를 걷는 계획은 196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먼저 제안되었다. 하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1995년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포장하는 작업 이후 도쿄만에 다시 한 번 ‘플로팅 피어스’의 설치를 제안했지만, 이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좌절되었다. 수많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크리스토는 끊임없이 물 위를 걷는 프로젝트를 시도했고, 드디어 2014년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설치전경(One by one, workers install the 100 by 16 meter sections to connect the island 

of San Paolo with the island of Monte Isola) May 2016 Photo: Wolfgang Volz





22만 개의 고압축 폴리에틸렌 육면체가 핀으로 조립되어 물 위에 띄워졌고, 5.5톤짜리 콘크리트 앵커200개가 호수 바닥에 고정되어있으며, 10만㎡의 황금색 나일론 천과 8만㎡의 펠트로 3km 길이의 부두와2.5km의 인도를 포장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용되었다. 천 제작, 구조 제작, 수중 다이버, 보트운전, 안전요원 등 모든 고용자의 업무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크리스토 프로젝트에서 늘 그러하듯 무료 봉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800만유로(한화 약 23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비용은 크리스토의 회사 CJV가 충당했으며 작품 제작과 유지 보수, 안전 관리 및 철수까지 프로젝트에 관련된 전 과정이 포함된 금액이다. 


작은 도시에 갑자기 몰린 120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수백 개의 임시 화장실과 손님맞이를 위한 청소 및 쓰레기처리에 관한 비용도 모두 CJV의 자금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지자체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롬바르디아 주에서도 150만 유로(한화 약 19억 원)를 경찰, 구급차, 소방대원 등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정부 개입이 꼭 필요한 부분에 투입했다. 몰려든 관광객을 위해 추가로 배치된 버스들,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이세오 호수 주변을 오르내리며 걷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셔틀버스, 여행객을 위한 안내센터, 프레스센터, 기념품 판매도 모두 이세오 지역에서 직접 운영했다. 


평소 크리스토 부부를 동경해왔지만 ‘플로팅 피어스’ 프로젝트에 직접 방문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국제적인 프로젝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리스토 공식 페이스북(Facebook)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같이 동행하기로 한 동료들도 과연 이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것이 맞는지 계속해서 질문했고, 필자 역시 어디 물어볼 곳조차 없었다. 이것이 정말 실행될 것이라는 유일한 단서는 1년 내내 저렴한 가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이세오 호수 주변의 숙소 가격이 갑자기 전시 기간 동안 3배 이상 올랐다는 것뿐이었다. 





몬테꼴로니의 작업 본부(At the headquarters in Montecolino, construction workers assemble the piers, 

which are produced in 100-meter-long segments and stored outside Montecolino on Lake Iseo) January 2016 Photo: Wolfgang Volz





이세오 호수가 있는 곳은 적당한 대중교통조차 없는 작은 도시이기에 밀라노 공항에서 바로 승용차를 빌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 달렸다. 그런데 이세오 호수와 약 15km 떨어진 지점부터 차들이 그대로 도로 위에 멈춰 섰다. 영어를 못하는 교통경찰은 계속 이세오 호수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했지만, 표지판도 하나 없었다. 앞뒤의 차들도 다 비슷하게 답답한 모양이라 그들을 따라 길가에 주차하고 나니 ‘플로팅 피어스’ 사진이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속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달리자 온통 황금색 천이 덮여있는 이세오 호수의 중심, 술자노 역에 도착했다. 


프로젝트 첫날,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크리스토가 타고 있을 것 같은 헬리콥터가 계속 하늘을 날고 있을 뿐이었다. 조그만 도시를 향해 사방에서 쏟아지듯 몰려드는 인파로 ‘플로팅 피어스’ 입구는 꽉 막혔다. 더운 날씨에 줄 서 있던 몇 명이 쓰러지면 주변에 대기하던 구급대원이 환자를 데리고 여기저기 나무 그늘로 가서 그들을 돌보았다. 안내 팻말, 지도, 영어로 말하는 안내 요원에 익숙한 우리 일행은 이번 프로젝트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런데도 수십만의 사람들로 꽉 차있는 이세오는 평화롭고 질서정연했다. 


첫날, 결국 작품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둘째 날엔 비가 내렸다. 이탈리아의 일요일 아침 뉴스와 신문 1면은 온통 크리스토의 황금빛 이미지로 꽉 차있었다. 새벽부터 서둘렀으나 역시 프로젝트를 보러 온 사람들의 줄은 첫날만큼 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인파가 빠지며 전형적인 이탈리아 소도시의 작은 골목길로 진입했다. 좁은 길을 따라 코너를 돌자 갑자기 확 트인 하늘이 보이고 바닥이 출렁거렸다. 드디어 물 위를 걷게 된 것이다. 우리와 같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의 태도가 물 위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바뀌었다. 인간이 물 위를 걸으면 생기는 공통된 본능인가? 





The Floating Piers Lake Iseo, Italy, 2014-16 Photo: Wolfgang Volz  2016 Christo





우리와 함께 그 황금빛 천 위를 걷는 사람들의 상태가 일제히 달라졌다. 정확히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그 순간 물 위를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침대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버거워 신발을 벗어보니 황금색 천의 촉감은 마치 모시처럼 시원했다. 왜 크리스토가 신발을 벗고 걷기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우리가 과연 있어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세오 호수는 완벽한 풍경이었다. 녹색 섬, 파란 하늘과 물, 그리고 황금 부두의 색 조합이 완벽하여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물과 바로 맞닿아 있는 아주 위험한 구조물임에도 아무도 ‘위험한 짓’을 하지 않았다. 


작은 섬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계속 이동하고 있기에 이유 없이 멈춰있거나 앉아있을 만한 곳은 없었지만 그런 상황마저도 그냥 받아들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황금빛 천위를 걸을 수 있는 순간은 모두에게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플로팅 피어스’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잠시 베니스에 들려 건축 비엔날레를 방문했다. 주제관 깊숙한 곳에서 “Is it possible to create a public space in a private commission?” 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갑자기 크리스토가 만든 공간이 떠올랐다.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출품작의 의도는 사적인 개입(자본)이 들어가면 공적인 공간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지만 황금빛 부두는 그렇지 않았다. 철저하게 아티스트 개인 회사의 자본으로 프로젝트는 기획되었고 16일간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즐기고 난 뒤 철거되었다. 크리스토는 인터뷰에서 “16일 후 아름다운 이세오 호수의 원래 모습을 다시 여러분께 돌려드린다”고 했다. 그는 개인 회사가 마련한 돈으로 특별한 풍경을 만들었고, 다시 원래의 주인,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프로젝트에 사용된 그 어떤 재료도 예술과 연관되지 않은 산업용으로 재활용된다. 


거대한 ‘플로팅 피어스’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이세오 호수는 더는 작가의 것도 아니고 지역주민의 것도 아니다. 황금빛 부두가 세워진 이세오 호수라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지속되지 않지만, 물길을 함께 걸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한 사람들의 기억은 영원히 우리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2016년 여름, 그 거대한 광경은 목격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 되었다. 올해로 80세가 된 크리스토는 잔-클로드와 함께 준비했던 프로젝트 2개를 혼자서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미국 콜로라도주의 ‘Over the River’와 아랍에미리트의 ‘The Mastaba’가 남아있다.  

 


글쓴이 임성연은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영상문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부터 시각예술 기반의 예술커뮤니티‘무소속연구소’의 대표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으며현재 연희동에서 프로젝트 카페 ‘보스토크(VOSTOK)’를 운영하며 마을과 예술의 공생적 관계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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