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여정

조은정이 그린 풍경은 어쩐지 불안정하다.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신화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건축물엔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 함께 배치돼있다. 정돈되지 않은 채 접힌 현대식 블라인드, 풍선에 의해 이끌려가는 묵직한 기둥, 지나치게 거대한 올빼미 등은 고대 건축과 같이 놓여 이질적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에 평범한 구석은 없다. 게다가 화면 가득 채워진 무채색과 세피아 톤의 색감으로 인해 스산한 분위기마저 드는 터라 여러모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찌 보면 창문을 통한 기린과 마주하는 소년 그리고 한 개의 풍선에 몸을 의지한 채 하늘을 비행하는 소년 등은 인간이 한 번쯤 꿈꾸는 환상(혹은 공상)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전시제목인 ‘균형점’을 보자. 제목에 비추어보면 조은정의 작품 중 어느 하나 균형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본디 균형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고른 상태인데, 이는 작품 속 즐비한 불균형함과 대비만 될 뿐이다. 그러나 작가 노트를 보면 이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화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사물, 모순된 상황의 공간연출은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는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재구축하여 균형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조은정은 지금껏 감정의 균형점을 탐구해 왔다. 사실 생각할 거리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 고른 감정 상태를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감정의 균형을 찾기 위해 머릿속 여러 잡생각이 없어진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려 하지만, 이를 위해 명상을 하는 등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도 그것을 달성하는 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로 가득한) 공상으로 쉽게 빠지곤 하지만, 조은정이 감정의 균형점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와 다르다. 작가는 환상적이고 모순된 풍경을 이용해 균형을 찾고자 한다. 그는 현실의 것으로 창조된 비현실적 풍경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다. 그리고 화면 속 자신만의 세계를 재구축해, 불균형한 감정의 상태 조정을 이뤄 비현실로의 도피란 소극적 태도가 아닌 적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블라인드문> 2016 캔버스에 유채 145.6×112cm

개인적으로 필자는 회화를 선호한다. 화면 레이어에서 작가의 노고를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은정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도 ‘회화’란 소재가주는 힘이 한 몫 했단 걸 부정하진 않는다. 캔버스 표면에선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는 단 한 번에 붓 터치로 두껍게 쌓인 두께가 아니다. 엷게 층층이 쌓인유채의 겹겹은 곧 조은정의 손의 흔적이며, 작품 한 점을 위해 얼마나 많은 그의 노력이 오갔는지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런 작가의 붓 터치는잡념을 하나둘씩 덜어내는 행위로, 또 다른 감정의 균형점을 찾는 방법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