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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1, Oct 2016

사라 루카스
Sarah Lucas

본능적인 것들의 변주

‘도발적’이라는 수식어를 점유한 아티스트는 꽤 많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대가’라는 새로운 왕관을 차지하면 대부분 도발이라는 수사는 내려놓고 평화와 안온한 사색의 달콤함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이 자극적인 단어가 공허한 껍데기만 남기고 금세 휘발하는 어떤 성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 도발의 족적을 명징하게 남겨왔으며 여전히 그런 면모를 간직한 작가가 있다. 바로 YBAs(Young British Artists)의 기수, 사라 루카스(Sarah Lucas)다. 1980년대 후반 현대미술씬의 총아들을 배출한 YBAs의 작가들은 미술저널, 갤러리, 아트마켓 등 동시대의 미술판도를 확실히 바꿔놓았다. 그 ‘동문’들의 개성과 다양성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을 새로운 영국미술에 매료시킨 것이다. 젊음을 선점한 이들은 중년이 된 현재까지도 특유의 이미지를 과시한다. 그중에서도 사라 루카스의 캐릭터는 더 유별나다. 다루는 주제나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루카스의 작업은 여전히 발칙하고 유쾌하다.
● 이가진 기자 ● 사진 사디 콜 HQ(Sadie Coles HQ) 갤러리 제공

Installation view of 'SITUATION' 2012 Miss Jumbo Savaloy, Sadie Coles HQ, New Burlington Place, Londo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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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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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56th Venice Biennale)’의 영국관은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고, 혹평과 호평이 이어졌다. 그해의 선정 작가였던 루카스는 영국산 크림(Crème Anglaise)색이라고 지칭한 커스터드 옐로우로 색칠해 구획한 공간을 거대한 설치물과 석고 캐스팅 작품들로 채웠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Gold Cup Maradona> (2015)는 남근 형상의 거대 조각품으로, 마치 기념비처럼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존재한 남근숭배(Phallicism)라는 풍습을 현대적 방식으로 풍자하는 작가 의도가 드러난 것이다. 이 외에도 석고로 캐스팅한 인체 조형물은 하반신만 남은 채 책상, 의자, 변기와 어우러지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성()을 다루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 왔다. 그의 초기 작업 중 하나인 <두개의 계란과 케밥(Two Fried Eggs and a Kebab)>(1992)은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신체를 상징하고 있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계란 프라이와 케밥의 구도가 각각 가슴과 성기를 연상시키는데, 작가는 이를 위해 전시 기간 내내 매일 아침 새 케밥을 구입하고, 계란프라이를 직접 만들었다. <자연 그대로(Au Naturel)>(1994) 역시 매트리스 위에 놓인 멜론과 오렌지, 오이, 양동이 등의 오브제를 통해 여성과 남성의 신체 일부를 아상블라주(assemblage) 방식으로 표현했다. 별다른 해석이나 가치판단 없이 설치된 중성적 오브제들은 여성의 몸을 무비판적으로 대상화해 온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Lupe> 2014 Cast bronze Edition 1 of 6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이처럼 루카스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음식, 담배꽁초, 싸구려 나일론 스타킹, 가구 등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이러한 사물을 가공 없이 사용하거나, 신체를 직접 주조해 작품으로 변신시킨다. 어쩌면 그의 작업이 지나치게 저속하거나, 급진적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편함을 준다는 것은 오히려 예술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미덕이다. 특히나 루카스는 단순한 시각적 불편함을 넘어 젠더 문제, 죽음 등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마침 그가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은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가 촉발되며 페미니즘 예술에 관한 발언이 증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여성작가로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동년배 YBAs 작가들과 함께 전시해도, 관심이나 주목은 남성작가들에게 쏠리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 분노와 같은 것들이 사라 루카스로 하여금 보다 냉정하게 사회를 바라보게 했을지 모른다. 계급과 자본주의가 뒤섞인 영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아티스트로서 체감한 사회의 부조리에 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 이러한 영향이었을까. 루카스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내세운 적은 없지만 사회, 정치적으로 고정된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관습을 뒤엎는 면모를 보여 왔음은 분명하다. 





<Gold Cup Maradona> 2015 Resin, steel armature Edition 1 of 3  1AP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2000년에 치른 전시 <The Fag Show>에서 그는 담배를 이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9살 때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로 애연가인 작가는 역시나 ‘성적 메타포’로서 담배를 활용한다. 흡연 행위의 중독성은 루카스의 작품에서 강박적으로 담배 개비를 붙이는 형태로 거듭난다. 난쟁이, 진공청소기, 강아지 등의 귀엽기까지 한 오브제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표면이 담배로 가득한 모습인데, 이를 2015년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 개관전시에서 실제 크기 차량의 전면을 모두 담배 개비로 채운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이미 전소한 차의 내·외부를 메운 깨끗한 담배들은 죽음에 관한 아이러니한 상상을 자극한다. 루카스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 중에는 스타킹도 빠지지 않는다. 신축성 있고 가변적인 성질을 십분 활용해 자유자재로 모양을 변형시킨다. 2009년 시작한 ‘NUDS’ 시리즈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대좌 위에 놓여 마치 전통적인 조각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조각상은 속을 채운 스타킹으로 만들어졌다. , 강아지, 왕관 따위를 만들 수 있는 요술풍선을 이리저리 꼬아 만든 것처럼 빵빵하게 채워진 스타킹이 뒤엉킨 모습은 언뜻 내장이나 거대한 살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스타킹을 사용한 작품은 1997 <Bunny Gets Snookered> 전에도 등장했다. 다양한 형태의 ‘버니(Bunny)’들은 ‘버니걸(Bunny Girl)’에서 따온 명칭으로, 흐느적거리는 팔과 수동적으로 늘어진 다리는 남성 본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나 다름없이 성 상품화된 여성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The Fag Show>

 at Sadie Coles HQ, 35 Heddon Street, London(2000.2.16-3.18)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형형색색의 스타킹을 신긴 8개의 마네킹은 다른 작품에서처럼 얼굴과 몸통이 없는 신체 일부만을 부각하면서 특히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통해 퍼져나가는 범주화된 성적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다. 이에 반해 ‘NUDS’ 시리즈에서는 완연한 추상성을 보인다. 그는 촉각적이면서도 소멸할 것 같은 일종의 생물 형태를 연상시키던 이 작품을 2014년에는 청동으로 주조한다. 생명성이 제거된 구체적 형태로 거듭나 소재의 변화가 주는 의미 변화를 엿볼 기회가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라 루카스는 초기 작업의 방식을 나중에 다른 식으로 활용하는 등 자기참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동어반복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만큼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12 2월부터2013년까지 8회에 걸쳐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SITUATION>전에서는 그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천착해온 ‘몸’이라는 주제로 엮을 수 있는 작품들을 대규모로 선보인 것. 견고함과 연약함의 조화, 땅바닥에 놓인 것과 천장에 매달린 것과의 조합이라는 대비되는 요소를 활용해 각각 8곳의 환경에 맞는 전시이자 하나의 장소 특정적 설치로 꾸렸다.   




<Au Naturel> 1994 Mattress, melons, oranges, cucumber, water bucket Unique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이토록 전위적인 작업을 해왔음에도, 뜻밖에 사라 루카스는 미술사적으로 꽤나 전통적인 작가상에 가깝다. 일단 작가 자신부터 서양미술에 관한 지식에 해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s), 루이스 부르주아(Louis Bourgeois), 한스 벨머(Hans Bellmer) 등은 루카스를 평가할 때 줄곧 소환되는 선배 작가들이다. 직간접적인 영향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중인 것이다. 이에 더해 그의 작업은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아브젝시옹(abjection) 등 다양한 개념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연구 가능성의 폭이 넓다. 다방면에서 오랜 세월 사라 루카스를 지지하고, 후원해온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다”라고 단언하며, YBAs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루카스의 작업은 하나의 작은 그룹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라고 평한다. 


루카스를 피카소(Pablo Picasso)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강렬한 방식으로 일상의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붓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루카스는 사유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단번에 이뤄진다고 말한다. 번듯한 스튜디오 없이, 여러 명의 조수를 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투적으로 고행하듯 작업을 하는 편도 아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 역시 명확한 주제의식 덕분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상스럽고, 투박하고, 때로 공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탄탄한 중심이야말로 과감한 행동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삶과 죽음, 욕망과 억압, 혐오와 매력을 오가는 도통 결판이 나지 않는 줄다리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라 루카스

Sarah Lucas <I SCREAM DADDIO> 

British Council commission at the British Pavilion 2015 

 Courtesy the British Council. Photography by Cristiano Corte

 



사라 루카스는 1962년 영국 런던 출생으로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계에 새바람을 몰고 온 YBAs의 대표주자다.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수학하며 교류한 데미안 허스트가 1988년 기획한 전설적 전시<Freeze>에 참여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금기시되는 요소들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보는 이를 무안하게 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1992년 시티 레이싱(City Racing)이라는 아티스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해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바르셀로나, 로테르담 등 유럽 각지 유수의 미술기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치렀으며, 2015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되며 다시금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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