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Issue 123, Dec 2016

미술인물열전 ①

Art Hidden Heroes

혹! 작가, 기획자, 비평가만으로 미술계가 구성됐다 여기시나? 만약 그렇다면 그런 생각은 조용히 구겨 버리자. 하나의 전시를 위해,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력과 조언이 필요하다.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며 미술계를 받치는 이들 덕분에 현대미술은 존재한다. 작품을 직접 다루는 표구, 복원부터 다소 한정된 영역처럼 여겨지는 기술 분야 전문가까지 이런 조력자의 범위는 광활하다. 분야는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미술에 강한 애정을 지녔다는 것이다. 공공연히 미술계에 이름을 떨치는 8인을 소개하기 위해 편집부가 바삐 뛰었다. 독보적 매력의 능력자들, 그들이 미술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기사에 집중해보자.
● 기획·진행·사진 이효정·이가진·조연미 기자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이효정·이가진·조연미 기자

Tags

기술로 돕는 예술 실현

세원모타 임재운 대표



임재운 대표가 처음 세운상가에 발을 들인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979. 곧바로 입대를 했지만, 제대 다시 찾은 역시 세운상가였다. 이런 파릇파릇한 청년을 어엿한 대표로 성장시킨 바로 소형모터. 35여년 실무능력을 지닌 그는 관련 전문지 정독으로 이론과 산업 트렌드에도 빠삭하다. 이러한 노력 끝에 얻은 전문성 때문인지 인터뷰 중에도 임재운 대표 핸드폰 벨은 끊임없이 울렸다. 그에게 예술가 불리는 사람들이 찾아온 2004년쯤 부터였다. 무언가 흔적이 담긴 스케치를 들고 오거나 구상 계획을 줄줄 읊는 이들은 이렇게 움직이려면 무슨 모터를 써야 되냐? 물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미술대학 진학을 권유받았을 만큼 탁월한 손재주를 지닌 그에게 작가와의 만남은 흥미 자체였다


그런 까닭에 본업은 모터 판매자지만, 모터 조언가 호칭이 따라붙을 만큼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는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임재운 대표는 그러나 작가들에게 조언할 고수하는 철칙 하나가 있단다. 반드시 기술적 조언 하는 것이다. 구상, 아이디어, 작품은 작가 고유권한이라 여기는 그는, 단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있는 방안을 제공하는 것만 자신의 역할이라 선을 확실히 긋는다. 작품은 고객(아티스트) 것이지 자신( 대표) 것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따르는 것이다. 그에게 여러 작가들이 당신을 미술계 인물로 꼽을까라고 묻자, 방법적으로 헤매는 이들에게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만한 모터를 제공해줄 다른 것은 없다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세원모타를 방문하는 많은 작가가 머릿속으로만 구상한 다소 막연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 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대표는 소형모터에 있어 누구보다 전문가임은 자신했다. 기자가 그가 직접 그린 설계도나 보유한 모터의 가짓수만 해도 이를 증명하기 충분하다. 기사를 보고 기술적 조언을 얻으러 오는 작가들에게 앞으로도 정성껏 조언해 주겠냐 물으니, 언제든 환영이라며 시원하게 대답하는 대표(, 스케치나 설계도 등을 가져오면 자세하고 빠른 조언과 소형모터 추천을 받을 있다). 소형모터에 관한 궁금증이 있다면 지금 세원모타로 가보자. 





임재운 대표






그야말로 터줏대감

낙원표구사 이효우 대표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은 주인공의 대충 해달라는 재촉에도 불구, 자신의 장인 정신을 꺾지 않고 묵묵히 양질의 방망이를 만드는 노인을 조명한다.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사회에서 수필 노인과 같은 사람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지만, 낙원표구사의 이효우 대표야 말로 이러한 장인 정신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한국전쟁 이후 밥을 굶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청년의 나이로 인사동에 입문,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의 경력은 단순히 햇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손을 거쳐 대표작을 보자면 김홍도의 <해상군선도> 비롯 월전 장우성, 현초 이유태 그리고 서세옥 등으로 이름만 들어도 면면이 화려하다. 표구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라 그는 말한다. 시각적으론 그림이 돋보이게 보조하는건 물론이거니와, 작품이 오랫동안 온전히 유지될 있도록 보존 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고서화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훼손돼 그의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표구는 길게는 이상의 수명을 더해준다는 것이 대표의 설명. 따라서 표구는 신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이는 현시대의 작품도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고서화를 가져오는)의뢰인과 작가 모두와 충분한 논의 시간을 가져, 최대한 의뢰인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50년의 경력을 바탕삼은 제안을 더한다. 예로 물감에 사용된 아교 농도에 따라 표구 방법이 달라지는데, 이런 디테일을 그는 기가 막히게 캐치해 표구를 진행한다. 당연히, 이런 섬세한 작업은 시간을 요한다. 이렇게 작업하면 이윤이 남지 않는다 주변의 걱정도 있지만 그럼에도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퀄리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지 묻자 그가 현답을 내놓는다


어떤 특정 작품은 없다. 내게 오는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중요하다. 작품의 경중을 따져 태도가 다르다면 (소외받는)작품이 속상해하지 않겠나! 표구를 업으로 삼지만 그는 이익만을 따르지 않는다. 표구사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작품은 앞으로 수십, 수백 동안은 거뜬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때라는 대표. 진정 작품을 아끼고 이해하는 그의 철학이야 말로, 50년간 꾸준히 미술계의 사랑을 받는 이유구나 싶다. 





이효우 대표





전시 해설, 지성의 블루오션

김찬용 도슨트



다른 인물들이 작품을 위한 조력자라면 김찬용 도슨트는 관람객에 특화된 조력자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졸업 즈음 우연히 전시 투어에 참여했다. 그런데 전시 해설은 전공자인 그가 듣기에도 너무 어려웠다. 내게도 복잡한 해설이 미술 비전공자 관람객에겐 얼마나 이해될 있을까 의문이 것도 때였다. 궁금증은 도슨트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다. 2006 재능 기부 형태로 도슨트를 시작한 그는 2011 전업 도슨트로 전향했고 햇수로 벌써 7년째를 맞았다. <마크 로스코>,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 원더랜드> 김찬용 도슨트가 해설을 담당한 전시는 60여개에 달한다. , 많게는 100 이상의 관람객이 몰릴 정도로 김찬용 전시 투어의 인기는 대단하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표현이 바로 그의 인기요소다. 


모두 예술의 대중화 말하지만 그는 대중의 예술화 주장한다. 말장난 같지만 가지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예술은 자리를 지키고, 대중들의 문화 수준을 향상시켜 모두가 어려움 없이 미술을 향유할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선 작가, 작품, 기획자 그리고 대중을 연결해 있는 중간자가 필요하며, 역할의 주인공은 단연 도슨트라 믿는다. 김찬용이 꼽는 도슨트의 중요 자질은 전달력, 운영능력 그리고 눈치. 전달력은 그대로 정확한 발음과 발성으로 해설을 전하는 것이고 운영능력과 눈치는 전시장 관람객 모두를 생각하는 태도에 관한 문제다


도슨트란 본인의 투어에 참여한 사람만 고려할 같지만, 실제 그가 신경 쓰는 대상은 해설 청취자는 물론 듣지 않는 일반 관람객, 전시장 운영요원, 큐레이터, 작가 미술관이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눈치를 본다. 눈치란 이타심의 개념으로, 상대에 대한 높은 이해심을 지녀야지 그렇지 않으면 설명을 듣는 사람, 듣지 않는 사람 모든 이들에게 관람의 피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도슨트는 자원봉사형태가 많아 전업 도슨트로 사는 녹록치 않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럼에도 전업 도슨트를 고수하는 이유는, 전문영역에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의미 있는 행보가 앞으로 힘을 받길 기대한다.  





김찬용 도슨트






생명을 불어넣다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김주삼 소장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주인공 쥰세이의 직업으로 등장, 한때 낭만적인 직업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이 바로 미술복원가다. 김주삼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장은 미술을 향한 애정으로 낭만을 실현하는 인물이다. 물론 복원작업이 영화처럼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평창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에도 그는 온갖 재료로 얼룩진 앞치마를 두르고 크고 작은 유화작품과 기구들에 둘러싸여 분주했다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소장이 미술복원으로 방향을 180도 전환하게 것은 미술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이걸 해서 먹고 사나라는 고민을 했다면 절대 20 넘게 일을 없었을 것이라고도 그는 덧붙인다. 소장은 고미술품보다는 주로 근현대미술품, 그중에서도 특히 유화작품과 조각품 복원의 전문가다. 이제는 내공이 쌓여 웬만한 작품은 고민이나 실수 없이 작업을 진행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오염되고, 깨지고, 캔버스와 물감이 분리되는 작품들은 가지각색의 상처를 갖고 소장을 찾아왔고 그때마다 최소한의 터치로 최대의 효과를 방안을 생각해내야 했다. 정해진 방식이 없어 수첩을 갖고 다니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적고 그림을 그려 넣으며 밤낮으로 고민하다보면 유레카! 순간을 맞았다. 사실 이런 고민은 일을 시작한 20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 작업 중인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받아들었을 때도 앞이 깜깜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캔버스에 붙인 오염된 종이 그림을 복구하는 작업인데, 며칠이고 고민만 하다 밤에 자던 갑자기 방안이 떠올랐단다. 그때가 새벽 2 30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낸 방법은 먼저 작품 위에 고어텍스 재질의 덮개를 얹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습하게 만든 캔버스에서 종이를 떼어내는 것이다


미술품 복원은 훼손의 종류와 정도가 다양한 만큼 복원 방식도 사용되는 재료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재료와 작품에 사용된 기법,  작가의 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현재는 주로 기관들과 협업해 번에 5-6점의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 달에 30 정도의 복원을 진행하기도 한다. 작품에 따라서는 1 넘게 공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술복원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품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더불어 손재주와 복원방법에 대한 결정을 내릴 있는 융통성, 그리고 직관력이 필수라고 그는 강조한다. 





김주삼 소장






* 미술인물열전 ②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