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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3, Dec 2016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②

Berlin Monument Story

베를린 중심거리인 운터 덴 린덴 주변에 있는 중요한 3개의 기념비를 소개한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나치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과 그와 관련된 기념비들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나치에 박해받았던 유대인들과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히틀러(Adolf Hitler) 정권에 저항했던 독일인들의 이야기가 역사적 배경으로 깔려 있다. 그 아픈 역사를 녹여낸 독특한 기념비들을 살펴본다.
●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그루네발트역 외부 기념비: 추방된 베를린 유대인을 위한 경고의 기념비 사진 ⓒ 백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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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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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루네발트역과 17번 선로

(1942년 6월 13일/유대인 746명/베를린-알려지지 않은 곳), (1942년 6월 16일/유대인 50명/베를린- 테레지엔슈타트), (1942년 6월 18일/유대인 50명/베를린-테레지엔슈타트),……, 날짜, 숫자, 도시 이름들이 계속 이어진다. 두툼한 철판에 새겨진 이 내용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베를린 서남부 지역에는 쇠락한 화물역을 간직한 도시고속전철역 그루네발트(S-Bahnhof Grunewald)가 있다. 


1899년에 세워진 이 역은 나치 시절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 유대인들을 동유럽의 로즈, 아우슈비츠, 테레지엔슈타트 같은 정치범 수용소나 처형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맡아 했던 곳이다. 이 기간에 무려 181회에 걸쳐 5만 1,500명이 죽음의 열차를 타고 떠났다. 1941년 10월 18일 이 역을 떠난 첫 번째 수송 열차는 1,251명의 유대인을 로즈로 데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열차는 1945년 3월 27일에18명의 유대인을 테레지엔슈타트로 싣고 갔다. 이 모든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데려갔던 인간화물열차는 당시 그루네발트 화물역의 17번 선로에서 출발했다. 


이제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17번 선로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다만 이곳엔 경고의 기념물이 17번 선로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경고의 기념물은 특이하게도 선로를 따라 약 160m 가량의 양쪽 승강장 바닥 전체에 총 186개의 주물 강철판으로 연이어 설치되어 있는데, 특히 승강장 가장자리 쪽에는 열차가 출발한 날짜와 수송된 유대인 수 그리고 목적지가 새겨져 있다. 이 수송 내용은 모두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승강장 바닥은 전체적으로 창살 같은 무늬로 뒤덮여 있다. 이는 이곳을 떠난 열차들이 감옥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이 경고의 기념물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승강장과 선로의 풍경을 크게 훼손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풍경에 스며든 상태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Koordinierungsstelle Stolpersteine Berlin




그리고 발아래 수평으로 깔린 기념비를 내려다보는 관찰자는 구체적인 역사의 자료들을 보는 것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명 <17번 선로(Gleis17)>라고 불리는 이 경고의 기념물은 1995년 독일 유대인 중앙청과 독일철도주식회사가 주최한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자르브뤼켄과 프랑크푸르트 출신으로 구성된 건축가 팀이 1998년 1월 27일에 역사적인 장소를 추모의 장소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완성했다. <17번 선로> 외에도 그루네발트역엔 또 하나의 중요한 경고의 기념물이 있다. 그것은 역내에 있는 17번 선로와 평행의 방향으로 역외에 설치되어 있다. 


그루네발트역 입구에서 화물역 진입로 쪽으로 올라가는 돌로 포장된 비탈길 옆에는 거친 질감과 양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콘크리트 벽이 있다. 18m 길이에 3m 높이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는 추상적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는 7개의 윤곽이 음각으로 파여 있다. 깊게 새겨지거나 흐리게 묘사된 불규칙한 인간 형상들은 마치 소멸될 듯이 보이면서도, 단단한 벽에서 벗어나기 힘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틀림없이 죽음의 열차로 끌려간 유대인 희생자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통곡의 벽처럼 서 있는 이것은 <추방된 베를린 유대인을 위한 경고의 기념비(Mahnmal für die Deportierten Juden Berlins)>다. 17번 선로가 설치되기 전인 1991년에 폴란드 예술가 카롤 브로니아토브스키(Karol Broniatowski)가 완성했다. 추모의 공간으로서 그루네발트역은 역사적 장소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의미 있는 기념물들을 설치한 좋은 사례라고 할 만하다.   

 


5.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길바닥에 박힌 작은 동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들은 특별한 외양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슬쩍 보고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작은 동판들이 추모비다. 일명 ‘슈톨퍼슈타이네(Stolpersteine)’라고 불리는 것이다. 슈톨퍼슈타이네는 작품 제목이기 이전에 보통 길바닥에 설치된 추모석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본격적인 추모비 양식으로 이용한 사람은 베를린 출신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다. 그가 이런 추모비를 제작한 이유는 나치가 추방하거나 살해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추모의 대상에는 단지 유대인들 외에도 정치범, 집시, 동성애자처럼 나치에 희생된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특이한 점은 추모비가 단지 하나가 아니라 추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만큼 많고,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이다. 즉 각각의 추모비가 개별적인 인물들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된다는 말이다. 콘크리트로 10×10×10cm 크기로 돌을 다듬고 그 표면에 황동 판을 부착시키는 방식으로 슈톨퍼슈터이네를 제작하는데, 그 황동판에는 희생자의 성명, 생년, 추방된 해 등이 새겨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기 레오 마르쿠스가 살았음, 1898년생, 1943년 추방.’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슈톨퍼슈타이네가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앞 보도에 설치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추모비가 익명의 희생자가 아닌 특정한 인물이 살았던 집 앞에 정확히 설치된다는 것은 역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추모행위가 사람들이 평소에 다니는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다. 




 Koordinierungsstelle Stolpersteine Berlin

 



이 슈톨퍼슈타이네 설치는 뎀니히가 1992년 쾰른에서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시작, 베를린에서는 1996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오라니엔 거리에 약50개의 추모석이 깔렸는데, 이 거리가 19세기 말부터 많은 유대인 상인, 의사, 변호사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프리드리히스하인과 미테 지역에도 수백 개의 슈톨퍼슈타이네가 설치되었고 다른 지역과 나라로 프로젝트는 점점 확대되었다. 2015년 11월 현재 독일을 포함해 2차 대전 때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19개국의 1,600곳에는 5만 4,000개의 슈톨퍼슈타이네가 설치되어 있다. 


슈톨퍼슈타이네는 작가가 수작업으로 만들고 설치하는데 모두 기부금으로 진행된다. 추모석 하나에120유로를 기부하면 제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추모석을 만들기 전에 추모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활동은 각 지역의 청년 학생들이 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적 자료들을 분석하거나 희생자의 친척과 이웃들을 만나 인터뷰를 수행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새로운 추모석 설치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면서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원래 작은 추모석 1-5개 정도를 한 장소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예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장소에서는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희생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는 슈톨퍼슈타이네 대신 폭10cm에 가로로 약 1m의 기다란 추모석인 ‘슈톨퍼슈벨레(Stolpe schwelle)’를 설치하여 여기에 사건의 개요를 기록한다. 이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사진 ⓒ 백종옥

 




6. 기념비 1944 7 20 


베를린 미테 지역의 슈타우펜베르크 거리엔 현재 국방부가 들어선 일명 ‘벤들러블록(Bendlerblock)’이라는 역사적인 복합건물이 있다. 이곳은 1960년대 말부터 ‘독일의 저항 기념장소(Gedenkstätte Deutscher Widerstand)’가 되었는데, 나치 시절에 발생한 쿠데타 사건의 주무대였기 때문이다. 벤들러블록에는 1-2차 대전 시기에 군사 관청들이 자리 잡았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은 후 1933년 2월 3일 벤들러블록의 육군사령부에서 장성들을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반공산주의와 나치 일당 독재 및 동유럽 정복을 천명했다. 이미 1938년부터 독일 내부의 저항 세력들은 나치의 통치를 전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벤들러블록에서 근무하던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대령과 동료들은 히틀러 암살과 쿠데타를 수년간 준비했다. 


마침내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작전을 결행했다. 그는 ‘이리의 요새’라 불리는 동프로이센 라스텐부르크의 히틀러 사령부에 폭약을 두고 나왔다. 암살의 성공을 확신한 그는 곧바로 베를린의 벤들러블록으로 돌아가서 다음 작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히틀러는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아남았고 역모는 즉시 진압되었다. 결국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동료 3명은 그날 밤 벤들러블록의 안마당에서 총살당했고, 수천 명의 관련자들이 처형되었다.






벤들러블록(Gedenkstätte Deutscher Widerstand 

(Bendlerblock))  visitBerlin 





전쟁이 끝나고 1953년 7월 20일에 이르러 ‘존경의 뜰’로 명명된 벤들러블록의 안마당에는 손이 묶인 남자의 청동상이 1m 높이의 좌대 위에 세워졌다. 이는 베를린의 조각가 리하르트 샤이베(Richard Scheibe)가 1944년 7월 20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한 작품이었다. 오랜 기간 이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조용히 치러졌다. 1979년이 되어서야 역사적인 공간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었고 기념비의 형태를 바꾸기 위한 공모가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모에서 1953년에 청동상을 설치한 샤이베의 제자인 에리히 로이쉬(Erich Reusch)가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뒤셀도르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로이쉬는1979-1980년에 샤이베의 청동상과 벤들러블록 안마당을 새롭게 연출했다. 그는 손이 묶인 남자의 청동상을 좌대 없이 지면에 세우고, 좌대에 붙어있던 청동판 제문을 조각상 앞의 바닥에 설치했다. 그리고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남자 조각상 사이에 크기가 다른 길고 평평한 청동 오브제 2개를 횡목처럼 놓았다. 이 청동 오브제는 안마당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면서 강력하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처음 입구에 들어서는 방문객들은 존경의 뜰에 수직으로 세워진 남자 조각상과 수평으로 길게 깔린 청동 오브제가 하나로 연결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다가가면 남자 청동상과 평평한 오브제는 점점 간격이 멀어지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상황은 방문객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손이 묶인 남자의 모습에 대해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런 공간 연출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료들이 사살된 이 벤들러블록 안마당의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매년 7월 20일에 추모행사가 열리는 이곳에서는 나치즘에 저항한 역사에 대한 연구와 출판 및 교육적인 전시가 이루어진다. 독일의 저항 기념장소는 무엇보다도 안마당에 설치된 로이쉬의<기념비 1944년 7월 20일(Ehrenmal 20. Juli 1944)>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참고문헌]

1) Johannes Heesch, Ulrike Braun Orte erinnern nicolai 2003

2) Herausgeber Hans Dickel, Uwe Fleckner Kunst in der Stadt nicolai 2003

3) 하겐 슐체(Hagen Schulze) 『새로 쓴 독일 역사』 반성완() 지와 사랑 2000

4) Stolpersteine http://www.stolpersteine.com

5) Gedenkstätte Deutscher Widerstand http://www.gdw-berlin.de

 


글쓴이 백종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2006 아트인시티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 예술감독과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알렙 대표,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팀장, ‘2015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거쳐 현재 미술생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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