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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4, Jan 2017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③

Berlin Monument Story

독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1차 대전, 나치즘과 2차 대전 그리고 전후 분단 및 재통일과 관련되어 있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기념비들은 대부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끝으로 독일의 동서 분단으로 생겨난 베를린 장벽과 관련된 기념비들을 소개한다.
●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사진 필립 코흐(Philip Koch) ⓒ visit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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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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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체크포인트 찰리의 빛 상자들


운터 덴 린덴 거리에서 프리드리히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찜머 거리와 교차하는 지점에 이른다. 이 교차로에서 장벽 박물관 쪽 도로 중앙에는 미군 병사의 초상 사진이 담긴 광고판이 높이 서 있다. 그 뒤로는 모래주머니들과 함께 작은 가건물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동·서베를린의 경계에 있던 여러 검문소 중 하나였다. 1945년 독일이 항복하자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대 강국은 베를린을 4개 영역으로 분할 통치하기 시작했다. 


1948년 서베를린 영역에서 통화개혁이 이루어지자, 소련은 서베를린을 완전히 봉쇄하였고 서방측은 이에 대응해 11개월간 서베를린에 공중보급작전을 펼쳤다. 이때부터 베를린은 동과 서로 확실히 나누어져 각각 독자적인 시 정부를 갖게 되었다. 1950년대 동독과 서독의 국경이 분명해진 뒤에도 많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1949년부터 1960년까지 총 246만 명이 동독을 탈출했다. 그 주요 탈출 루트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동독 정부는 1961년 8월 13일 일요일 아침, 동ㆍ서베를린 사이의 영역경계선에 임시로 가시철조망을 설치했고, 다시 같은 자리에 단단한 장벽을 세웠다. 베를린의 동과 서를 연결하던 지하철과 도로들도 차단되었다. 이제 동ㆍ서베를린 사이에 남은 것은 단지 7개에 불과한 경계통과지점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프리드리히 거리의 체크포인트 찰리였다. 이 검문소는 오로지 연합군과 외국인들에게만 통행이 허락되었다. 





 Stiftung Berliner Mauer / J. Hohmuth




이 지역은 1961년 신분증 제시 문제로 미국과 소련의 탱크가 대치하고, 또 장벽 설치 1년 만에 이미 31명이 동베를린 탈출 중에 사살될 정도로 긴장감이 높았다.1996년에 베를린 주정부는 예전의 7개 경계통과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작품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프랑크 틸(Frank Thiel)의 <빛상자들(Leuch tkasten)>도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1998년 체크포인트 찰리가 있던 도로 중앙의 안전지대에 설치되었다. 맨 앞에서 언급한 ‘미군 병사의 초상 사진이 담긴 광고판’은 다름 아닌 틸이 설치한 기념비였던 것이다. 


빛을 발산하는 광고판 형식을 빌려 제작된 이 기념비엔 실물크기 보다 큰 미군과 소련군 병사의 컬러 사진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데, 이것을 5m 높이의 회색 강철 거치대가 받치고 있다. 이런 설치 방식은 당시 검문소의 상황을 함축해 놓은 것과 같다. 두 군인의 흉상 사진들을 당시 검문소에 실제로 근무했던 경계병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모자, 넥타이, 훈장 등이 달린 퍼레이드용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것은 이 초상 사진들이 역사적인 기록에 근거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틸은 1994년 베를린을 철수하기 직전인 200여 명의 연합군을 촬영했는데, 이 초상사진들도 그때 찍은 것이다. 무뚝뚝한 표정의 두 청년은 매우 밝고 하얀 스튜디오의 벽을 배경으로 서 있다.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들은 전형적인 군인으로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사진들은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해서 감상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무뚝뚝하고 가까이 하기 힘든 모습이야말로 냉전과 분단의 도시였던 베를린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프랑크 틸이 제작한 기념비가 설치되고 나서 2001년엔 체크포인트 찰리의 복제물도 설치되었다. 이 때문에 높이 솟은 빛상자들과 지면에 있는 검문소는 하나의 장소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효과를 공유하게 되었다.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사진 볼프강 숄비엔(Wolfgang Scholvien)  visitBerlin

 

 


8.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에는 세계 최대의 야외 갤러리가 있다. 슈프레 강변의 뮐렌 거리를 따라 세워져 있는 이 갤러리의 길이는 무려 1.3km에 달한다. 유명 관광지인 이곳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라고 불린다. 보존된 베를린 장벽의 동쪽 면에 벽화들이 그려졌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28년간 서베를린을 섬처럼 고립시킨 콘크리트 장벽은 냉전의 상징물이었다. 동베를린 쪽에서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던 사람들은 사살되었다. 그러나 서베를린에서는 장벽이 관광지이자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었다. 서베를린 여행자들은 장벽에 낙서를 남기기 시작했고 그 면적은 점차 넓어졌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표어 같은 낙서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낙서들도 등장했다. 장벽 서쪽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다채로운 그래피티(graffitti)들은 동베를린과 다른 서베를린의 자유로운 사회체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체제가 무너지면서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개방되었다. 장벽은 정식으로 철거되기 전에 이미 여기저기서 순식간에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져 관광지의 여행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판매되었다.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장벽에 그려졌던 수많은 벽화도 사라졌다. 결국, 장벽의 대부분은 제거되었지만 몇몇 특정한 장소에 살아남았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된 장벽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분단 시기 서베를린 쪽의 장벽에 그려진 벽화들과는 달리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벽화들은 독일 재통일의 해인 1990년에 조직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그려졌다. 




Berliner Mauerweg(Information panels alongside 

the former course of the Berlin Wall) 

사진 볼프강 숄비엔(Wolfgang Scholvien)  visitBerlin 




동베를린 주재 영국대사관의 문화외교 보좌관 쇼틴 크리스틴 맥린(Christine MacLean)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전 세계 21개국에서 온 118명의 예술가가 참여하여 장벽에 106개의 작품을 남겼다.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이 벽화들은 정치적인 풍자화, 문자와 기호를 이용하는 그림, 표현주의적인 회화 등 다양한 양식들로 구성되었다. 본디 이 프로젝트의 계획은 벽화 제작 후 세계 각국에서 순회전을 개최한다는 것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현실화되진 못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벽화들은 1991년부터 기념물로 보호되기 시작했는데, 세월 속에서 상당수의 벽화가 손상되거나 어지러운 낙서로 뒤덮이기도 했다. 


그래서 2000년부터 벽화들을 부분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대규모로 벽화가 다시 그려진 시기는 2009년이었다. 이때 87명의 예술가들이 100개의 그림을 제작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위기는 2012-2013년에 일어났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장벽과 슈프레 강 사이의 지대에 60m 높이의 고급아파트가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이었다. 여기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일부 구간이 철거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많은 시민과 예술가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지난날 국경선이었던 슈프레 강변이 공원화 되면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주변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벽은 벽화로 장식된 거대한 기념비가 되었지만, 그 미래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이 기념비를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Stiftung Berliner Mauer / J. Hohmuth




9.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


장벽의 건설은 베를린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갑작스럽게 파괴하였다. 특히 베딩 지역의 밀집 주거지인 베르나우어 거리는 분단의 부조리가 매우 첨예하게 드러났던 곳이다.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이 동서로 분할되자 베르나우어 거리의 도로는 서베를린 지역에, 남쪽의 집들은 동베를린 지역에 속하게 된 것이다. 곧이어 동독의 국경선이 되어버린 베르나우어 거리의 집들은 출입문부터 폐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직 폐쇄되지 않은 창문들을 통해 수백 명의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결국 이 거리의 동베를린 쪽 주택들은 모두 철거되었고, 대신 국경시설들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분단 이틀만인 1961년 8월 15일에는 동베를린 지역에서 경계를 서던 국경 경찰 콘라드 슈만(Conrad Schumann)이 순식간에 가시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 관할인 베르나우어 거리로 가버렸다. 또한, 지상의 탈출이 어려워지자, 베르나우어 거리의 빵집 지하엔 비밀 터널이 생겨났다. 1964년에 이 터널을 통해 57명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죽음을 무릅쓰고 계속되는 도주를 막기 위해 독일통일사회당은 이 지역에 두꺼운 국경차단시설들을 설치했다. 독일 재통일 후 약 1.5km의 베르나우어 거리는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 (Berliner Mauer Gedenkstätte)’으로 탈바꿈했다.


이 지역의 장벽을 포함한 국경시설은 기념물로 보존되었다. 1994년 장벽의 희생자들과 도시의 분단을 기억하는 기념비를 조성하기 위해 공모가 내걸렸다. 이에 따라 첫 기념비가 1998년에 제막된 후 2014년까지도 계속해서 기념공원의 규모가 확대되어 왔는데, 축구장 약 7-8개 크기인 4.4ha에 달한다.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은 방문자 센터와 기록물 센터 외에도 다양한 기념비와 전시물들이 설치된 4개의 주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A 구역은 ‘장벽과 죽음의 지역’을 주제로 다룬다. 이 구역에는 70m 길이의 옛 장벽을 양쪽에서 두꺼운 강철 벽으로 막은 거대한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맨 처음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에 설치된 이 기념비는 역사적인 잔존물을 살려 기념비화 시키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A 구역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기념비는 ‘추모의 창문’이다. 이것은 12m 길이의 강철 벽 안에 장벽에서 죽은 136명의 초상화가 들어 있는 추모비다. ‘도시의 파괴’가 주제인 B 구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화해의 예배당’이다. 이곳은 원래 ‘화해의 교회’가 있던 자리인데, 국경 지역에 홀로 남겨져 있던 이 교회 건물을 동독 정부는 1985년에 폭파해버렸다. 2000년에 완공된 ‘화해의 예배당’은 예배 장소로 사용되지만, 베를린 장벽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와 기도의 공간이기도 하다. 


C 구역은 ‘장벽의 설치’가 주제인데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장벽의 건설과정에 대해 보여준다. 탈출을 막기 위해 동베를린 국경시설이 체계적으로 확장되었던 내용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D 구역의 주제는 ‘장벽 주변의 일상’이다. 동베를린 시민들을 감시하던 국경수비대의 일상과 장벽에서 벌어진 체제선전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밖에 A 구역 근처의 도시고속전철 북역에서는 <분단된 베를린의 경계-유령역(Border Stations and Ghost Stations in Divided Berlin)>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장벽 설치와 함께 폐쇄된 동베를린의 지하철역들과 도시고속전철 노선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분단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이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은 특히 한국 사회가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참고문헌]

1) Bernhard van Treeck Street-Art Berlin Schwarzkopf & Schwarzkopf 1999

2) Herausgeber Hans Dickel, Uwe Fleckner Kunst in der Stadt nicolai 2003

3) Raimo Gareis Berliner Mauer Krone 1998

4) 하겐 슐체(Hagen Schulze) 『새로 쓴 독일 역사』 반성완() 지와 사랑 2000

5) Die Berliner Mauer Jaron 2003

6) East Side Gallery http://www.eastsidegallery-berlin.de

7) Gedenkstätte Berliner Mauer http://www.berliner-mauer-gedenkstaette.de/de/

8) On architektur http://www.onarchitektur.de



글쓴이 백종옥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2006 아트인시티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 예술감독과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알렙 대표, 익산문화재단 문화정책팀 팀장, ‘2015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거쳐 현재 미술생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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