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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5, Feb 2017

거리 위의 예술: 거리, 광장 그리고 예술

Art on the Street

초대 받지 못한 자, 그럼에도 세상 가장 즐거운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축제를 펼친다. 이러한 ‘축제 밖의 축제’는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덧붙였다’는 의미의 ‘프린지(fringe)’나 초청받은 작품(ON)에 대비 되는 개념으로 ‘오프(OFF)’를 이름표에 단 축제들은 이미 공식 행사 이상의 유명세를 자랑하고 있다. 거리는 식상해진 퍼레이드와 관습적인 행사를 밀어내고 이 변두리 예술들로 장악됐다. 잘 마련된 무대와 전시장을 박차고 거리로 나온 예술가는 관객의 바로 눈앞에서 다채로운 볼거리를 꺼내 놓는다. 대대로 흥부자인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런 거리 예술은 낯설지 않다. ‘길놀이’를 포함해 너나없이 불러 마당에서 펼치던 잔치문화는 우리의 오래된 ‘거리 예술’이다. 서구의 페스티벌 문화와 DNA에 내재한 놀이꾼의 흥이 어우러져 우리나라도 각양각색의 거리 예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거리에서 벌이는 파티, 그곳에서 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 기획·진행 한소영 수습기자 ● 글 임성연 무소속연구소 대표

사진 ⓒ Edinburgh Festival Fring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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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연 무소속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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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참여기


2017년 지금도 새로운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고, 이 글을 쓰는 현재(1월 중순)의 상황은 인쇄가 끝난 2월이면 완전히 옛날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2016년 10월 29일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개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오기 시작했고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예술가들은 세월호 농성장과 이순신 동상 사이에 캠핑촌을 만들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에 거대한 단두대가 광장 한 가운데에 설치되었고 재치 넘치는 현수막, 개인 피켓, 가면, 깃발과 기발한 퍼포먼스가 광장 곳곳에서 벌어지며 페스티벌과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도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깃발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광화문 캠핑촌에 있는 작가 이윤엽의 판화 이미지를 이용하여 깃발을 만들어 소심하게 우리의 분노를 드러냈다. 시청 광장에서 시작하여 경복궁 역까지 행진한 뒤 돌아 나오는 광화문 한 복판에는 라퍼커션 공연을 보는 무리들과 유명 정치인들과 인증 샷을 찍기 위해 줄서있는 무리들 등 시민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무리에 합류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흩어졌다. 100만이 넘는 시민이 있었던 토요일 광장에 축제의 흔적은 빠르게 사라졌으며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광장의 경험을 언제 해본 적이 있었던가?    

 



멜라 야르스마(Mella Jaarsma) <Dogwalk>

 2015-2016 Leather, stuffed cow and goat 

feet Multi-channel video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ndt Fine Art Photo Mie Cornoedus




광장 예술의 변천사


고대부터 유럽의 광장은 정치적인 곳이었다. 이미지가 가득한 교회와 신전, 승전 스토리를 담은 개선문과 왕의 동상은 모두가 볼 수 있는 광장에 세워졌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로 존경할만한 소설가, 철학자들의 동상이 생기고 주제도 가족, 모성, 성장, 진보, 풍요 등 좀 더 ‘말랑말랑한’ 내용의 조형물이 혁명을 경험한 시민 관심사에 맞춰 변화했다. 50년대부터는 금융업, 서비스업, 문화관광산업 등 ‘세련된’ 스타일의 건물과 자본이 도심에 들어오며 이에 걸맞은 ‘세련된’ 추상 조각품이 건물 앞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약간의 시차와 내용적 차이가 있지만 서양의 광장 예술의 변천사를 따라간다. 


박정희 정권은 ‘애국 선역 조상 건립 위원회’를 만들어 1968년부터 역사적 영웅인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하여 15개의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과거의 인물을 이용하여 권력자의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서며 건축비의 1%를 의무적으로 조형물에 사용해야 하는 정책이 생기며 전국에 있는 건물 앞마다 건물과 환경에 조화로운 조형물이 세워졌다. 광장의 조형물은 시대에 따라 형태를 진화해가며 장소와 어우러지며 ‘장소-특정적’으로 되었지만 추상적 현대 조형물의 어려운 의미는 더욱 도시 시민들과 거리감을 만들기도 했다.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울 무렵 유럽에서는 새로운 예술 흐름이 생겨났다. 그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극장과 미술관에 한계를 느끼고 대안을 찾아 관객과 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거리를 선택했다. 70년대 이후 발생한 프랑스 거리예술의 특징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장르적이고 급진적이며 공공장소에 사회적 정치적 관점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80년대 이후 프랑스 정부도 제도적으로 거리예술 지원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안정된 정책과 함께 거리예술가들은 대규모 국가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한국 정부도 하이서울페스티벌에 프랑스 대표 거리예술단체 제네릭 바푀(Générik Vapeur)를 초청하여 그들의 대표작 <야영(Bivouac)>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제네릭 바푀는 자신을 예술 유목인으로 생각하고 농업시대의 양 떼를 몰던 것처럼 산업사회에는 산업 폐기물인 드럼통을 몰고 거리를 누빈다. 수십 개의 드럼통을 타악기처럼 연주하며 시민과 거리를 누비는 대형 퍼레이드는 흥겨우면서 동시에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예술적 거리투쟁이라 볼 수 있다. 한국도 7-80년대 민주화운동을 위해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이 있었으나 일상과 밀접하게 다가가지 못한 비판도 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민주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한 대한민국은 축제의 전성시대를 맞이했으며, 지자체의 대규모 축제들에 거리예술가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거리예술과 다르게 한국의 거리예술행사는 주로 문화광광산업의 일환으로 관광객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일상에 흥겨운 경험을 전달하는 역할로 소비되었다.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예술적 완성도, 다장르 결합, 전위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발전하던 한국 거리예술은 2016년 촛불집회와 함께 새로운 변환점을 맞게 된다.  





사진 ⓒ Edinburgh Festival Fringe Society 

 

 


새로운 광장 예술의 탄생


3개월간 1,000만 명이 훌쩍 넘은 인원이 참가한 촛불 집회 속에서 수많은 예술적 표현을 직접 모으기에는 불가능했다. 다만 광화문일대 펼쳐져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들의 표현을 포착한 미디어나 개인 SNS를 통해 간접적 경험으로 감상하던 중 눈에 띈 두 작품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숨 (Breath)>이다. 아홉 명의 세월호 미수습자를 상징하는 에어펌프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힘을 통해 작동되고, 이들이 채워 넣은 공기가 금속 탱크에 충분히 차오르면 하얀 해군 유니폼을 입은 작가가 숨구멍을 열어 소리를 낸다. 시민의 힘으로 공기를 불어 넣어 미수습자를 다시 살리고 싶은 염원을 표현한 작품이다. 


직접 제작하고 광장까지 가지고 나와 퍼포먼스에 참여한 작가 이성형은 한국 거리예술의 유명한 서커스 광대 ‘마린보이’로 통한다. 어린아이 사이즈의 작은 자동차와 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을 하는 마린보이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을 주로 해왔으나 2015년 ‘안산거리극축제’에서 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광대의 도시’라는 프로그램에서 해외 광대들을 제치고 상을 받으며 그는 “세상의 기쁨과 세상의 슬픔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광대가 되겠습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세상의 기쁨만 담았던 그에게 현재 상황이 마냥 기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숨>은 보자마자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린아이도 쉽게 알 수 있다. 세월호, 9명의 미수습자, 에어포켓, 뱃고동……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보지 않고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건장한 중년이 1분 이상 지속하기에 힘든 펌프질을 1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하시던 할아버지가 혼잣말로 “할 수 있어”, “해볼게!”를 외치고 뱃고동 소리가 나자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다한다. <숨>은 할아버지의 독백과 땀, 크고 멀리 퍼지는 뱃고동 소리, 눈물을 본 광장의 시민들을 통해 드디어 완성됐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또 다른 작품 <구명조끼 304>의 시작은 2014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작품을 제작한 창작그룹 노니(김경희 연출)는 2014년에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안산 거주학생을 포함한 고등학생들과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축제는 취소되었다 한다. 




‘만보객의 서울유랑’ ⓒ 서울문화재단

 



안산을 넘어 나라 전체 분위기가 무거워진 상황에서 노니는 현재 상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계속 진행하기로 학생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첫 번째 공연을, 취소된 축제 날짜에 맞춰 안산 중앙역과 안산 문화 광장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공연을 진행했다. 그 뒤에도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동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풀어가던 노니는 2015년 <Station>에 사용한 구명조끼를 들고 2017년 광화문 광장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304벌의 구명조끼를 304명의 시민이 함께 입고 4시 16분에 조난 휘슬을 7번 부는 퍼포먼스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세월호 희생자로 몰입하기를 주저했고 결국 프로젝트는 수정되어 바닥에 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자 시민의 참여는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조끼 옆에 1부터 304까지 숫자만 쓰기로 초기 계획되었으나 희생자의 이름을 찾으며 지나가던 시민의 한 마디로 희생자 이름까지 적게 되었다. LED 촛불로 만들어진 ‘304’ 숫자는 이름 모를 남학생 2-3명이 만들고 사라졌다. 수십만 명 인파의 안전문제로 처음에는 철거당할 뻔했지만 슬그머니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분들의 도움으로 <구명조끼 304>는 진행될 수 있었으며 매주 진화하였고 결국 세월호 유가족과 자원봉사자,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304벌의 구명조끼를 모두 입으며 희생자 개인을 기억하고, 함께 걷는 퍼포먼스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 광화문의 수많은 예술 현상과 함께 <숨>과 <구명조끼 304>를 통해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었다. 예술가와 작품이 유연하게 광장에 스며들며 공간과 사람과 예술의 관계 사이에서 지속적 진화를 하고 있었다. 


현재 광장에 있는 역사적 영웅 동상과 추상조각과 확연히 다르고, 아마추어가 참여하는 공동체 예술 활동과 다르다. 작품은 예술가가 주도적으로 이끌지만 어떤 때는 크고 강력하게, 어떤 때는 관찰자로 그 위치와 힘 조절을 하며 물 위에 부유하듯 작품을 조율한다. 장소와 시대 특성에 맞춘 ‘장소-특정적’ 예술에서 한 단계 발전해 장소와 시대와 사람 간의 관계까지 맞춘 새로운 ‘장소-특정적’ 작품이 탄생했다. 또 다른 점은 이 많은 현상들은 개별적으로 모인 것이다. <숨>의 마린보이와 <구명조끼 304>의 창작그룹 노니는 서로 이미 알던 관계였으나 이번 행사를 같이 진행하기 위한 사전 기획은 하지 않았다. 

 



‘공공공간 예술창작-대형작품 실험실’ ⓒ 서울문화재단




예술가 이전에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심사숙고 끝에 촛불집회에 작품을 설치하고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SNS를 통해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며 광장에서 연대한 것이다. 이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의 상황과 같다. 단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개개인의 성숙이 모여 주동자 없는 촛불집회가 만들어지듯, 시대가 예술가 개인을 고민하고 성숙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광장에서 만나게 했다. 앞으로 촛불집회는 계속될 것이고 매일 벌어지는 새로운 상황은 예술가의 생각과 창작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블랙텐트가 광장에 설치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이 광장에 들어오고 있다. 현재를 분석하기 앞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가 더 중요하기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단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자 한다. 하지만 예술가와 광장, 시대, 관객의 역할이 서로 섞이며 위치와 힘이 변화하는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예술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졌음은 분명하다. 2016년 프랑스 ‘오리악국제거리극축제(AURILLAC 2016)에서 테러위협 때문에 바리케이트를 세우고 입장객 소지품을 검사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에 참가하려는 관객들은 바리케이트 때문에 오랫동안 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이에 분개하여 불을 지르며 폭동을 일으켰다. 대안을 찾아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탄생한 프랑스 거리예술 축제에는 바리케이트가 생긴 반면 광화문에서는 예술과 관객의 바리케이트가 사라졌다. 예술가와 관객의 역할이 조율되며 시대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같이 찾아가는 상황은 마치 68혁명 이후 프랑스 거리예술이 꿈꾸었던 상황과 비슷할 것 같다. 관주도의 축제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아닌 자유로운 개별 예술현상이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현재를 관찰하며 앞으로 예술과 예술가가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 겸손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글쓴이 임성연은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영상문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 했다. 2009년부터 시각예술 기반의 예술커뮤니티, ‘무소속연구소’의 대표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으며, 현재 연희동에 프로젝트 카페 보스토크(VOSTOK)를 운영하며 지역과 예술의 공생적 관계를 생성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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