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의 진실 제시 방법

홍순명의 <장밋빛 인생>으로 인해 인터넷 검색창에 4대강을 치고 연이어 한강, 낙동강, 남한강을 넣어보게 됐다. 스크린의 주조가 녹색일 것은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밋빛 세계가 혹여 존재하는지 어리석게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전시장을 채운 장밋빛 정조는 확인컨대 한국 땅엔 없다. <터키 산업 개발(turkey industrial development)>이란 작품명을 검색하며 또 없을 세계를 재차 확인해 본다. 세상에 없을 장밋빛 주조를 확인하며 그렇다면, 없는 세계를 그리는 이 전시는 무슨 의미일까 의문이 연잇는다. 홍순명은 ‘가짜 기록자’로서 그림을 그리는가. 사건 이미지 자료를 모으고 사건의 분위기를 구성한다는 방식에서 미루어볼 때 구성적 방식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기록자임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어떻게 증명하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은 기록으로 전이된다. 

여행지 관광 사진은 시간 흘러 들춰볼 때 사후적 감상을 적재시키지만 시간 흘러 그 무엇도 배가되지 않기를 바라며 남기고 마는 것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기록적 속성으로의 사진이 아무리 사진 존재 증명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하여도 사진가는 현장을 못내 남긴다. 최선인가에 답하지 못하면서도 차선의 선택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내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그 기록이 진실인지, 즉 사실의 구성적 측면에 대해 검증을 피하기 어렵고 또 현장의 긴박함이 사진이라는 2차원적 표면의 표피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 회의를 낳기도 한다. ‘진짜’, ‘최선’은 끊임없이 지연된다. 기록으로서의 사진도 이러한데 그림은 무엇을 담보할 수 있을까. 사건 사고 장면의 일부이나 사건의 충실한 전달자보다는 사건의 분위기를 일상에 용해시킨다는 ‘사이드 스케이프’ 연작의 외연에서 이번 전시를 바라본다면 몇몇 작품의 경우 구체적 정보를 알지 못할 때 전시의 노면에서 퇴각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국 고고학 사기극 ‘필트다운 맨(Piltdown Man)’ 사건을 모른다면 이번 전시 포스터의 사내는 특칭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의 인물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주인을 잃은 충견의 서사를 갖는 <그레이프라이어 보비(Greyfriars Bobby)>와 <보비와 존 그레이(Bobby & John Grey)>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Bobby&John Grey> 2017 100×80cm

모호함으로의 퇴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여지에도 지금 여기 한국과 타지의 사건을 하나의 전시로 묶는 데에는 사후적 정보로 의미를 재구성하는 관객의 태도를 종용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보다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설치 작업에서부터 견지해 온 작가의 태도를 짚어보게 만든다. 작가는 우리에게는 명시적일 4대강 사업의 명암과 같은 의미를 동선에 따라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 퇴각을 감내할지라도 이 그림(들)이 자아내는 공간에서의 정조를 건네는 듯하다. 그림 한 점에 오롯이 수렴되는 의미가 아닌, 공간 전체에서 설치 작품이 획득하는 이해 방식에 따라 이 그림(들)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관객마다의 구성적 방식에 따라 <장밋빛 인생>에 대해 반추하게 만든다. 따라서 <4대강-낙동강>이나 <4대강-한강 1-1>과 같은 대작의 경우에도 3-4개의 캔버스 정도로 화면을 잇는 방식이 아니라 잘게 분할된 캔버스, 그것도 사건이 담긴 상하좌우가 비교적 균질한 작업 시점을 가진 듯이 보이지 않는 캔버스의 조합을 통해 그림에서 비롯하는 사건의 총체적 진실보다 끈질긴 추적과 연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찾는 사건의 단서들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약속했던 핑크빛 미래의 (결코) 오지 않음을 언급한다. 고운 장밋빛은 에디트 피아프(Edit Piaf)의 옛 노래를 떠올려도, 동명의 한국 영화를 반추해보아도 인생의 빛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한창의 장미는 아니며 꽃피고 짐을 아울러야 할 때 꽃피고 짐이 담보하는 시공간은 <장밋빛 인생>에서처럼 선적이지 않고 단서(들)이 흩어진 사건의 현장과 유사한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