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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8, May 2017

가브리엘 쿠리
Gabriel Kuri

은폐된 사회를 폭로하는 사소한 오브제

사람들의 관계를 중재하는 오브제와 공간. 가브리엘 쿠리(Gabriel Kuri)는 독특한 각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과 사건들을 들여다보며 감춰진 변화의 잠재력을 발견한다. 미니멀리즘의 언어로 특이할 것 없는 일상생활의 물건들을 콜라주하고 병치해 ‘조각’으로 탄생시킨다. 가브리엘 쿠리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사회 경제적 시스템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작품으로 체계를 만들어 보인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의 굴레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그것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이 현대사회와 현실을 반영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임을 강조한다. 일상의 보잘것없는 오브제를 이용해 이 시대에 분명히 존재하는 경제적 지배 체계를 가리키는 그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나치며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을 비틀고, 일상을 재료 삼아 감정과 특별함을 입히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쿠리는 그가 창조한 작품이 사회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항상 치열하게 고민한다.
● 정송 수습기자 ● 사진 쿠리만주토(Kurimanzutto) 제공

'Carretilla II' 1999 Wheelbarrow, glass spheres 55×140×5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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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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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조각’이라고 칭하는 가브리엘 쿠리는 한 가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오브제, 텍스트, 이미지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 작품의 의미를 부각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예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약(contract)이라고 얘기하는데, 작품과 그것을 보는 이들 사이에 약속된 것이 없다면 미적 경험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 예술적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이 한창인 현대미술에서 경계선이 없다면 작가와 작품,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그 어떠한 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결여된 작품은 ‘예술’이라 불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에 부여한 의미를 관람객이 이해하고, 알아듣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은 존재 가치를 명확히 나타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 가브리엘 쿠리는 어떻게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통하는 것일까? 쿠리는 모든 아이디어가 단어로부터 온다고 얘기한다. 초기에 그는 마그리트(Magritte)와 다다이즘(Dadaism), 그리고 아방가르드(Avant garde)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난잡하게 사용해 풀어낸 문자적인 세계와 그것을 구현한 시각 예술이 단어와 이미지 사이에 어떠한 서열을 만들어 냈음을 발견했고, 지금까지도 지극히 일상적인 재료 위에 단어의 당연한 의미를 얹는 작업을 통해 언어와 예술의 관계를 되짚는다.





<Self portrait as chart with looping volume> 2012 

Insulating material, string, concrete cast 

116×100×20 cm(45.67×39.37×7.87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대표적인 예로 단어의 의미와 작품 자체를 동일하게 만든 <Concrete Pie> (2009)가 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구성된 재료와 완성된 모양을 지칭하는 단어를 작품명으로 사용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파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쿠리는 작품이 추상적인(abstract) 것에 반하는 단단한, 실체가 있는 것(concrete)이란 의미까지 부여했다. 보는 이들은 쿠리가 고심해서 붙인 작품 제목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정한 범위 내에서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가운데 의도적으로 이름을 생략한 것도 많은데, 그는 일부러 이름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상세히 등록된 작품명이 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특수성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물론 사람들이 ‘untitled’란 제목에서 쿠리가 어떠한 규칙 혹은 의도를 가지고 이름을 지었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이 이런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하는 별칭을 작품마다 부여했다. 


‘현실’, ‘헤엄치는 사람’ 등 독자적인 제목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 별칭들은 각 작품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가는 정확한 타이틀, ‘untitled’, 그 뒤에 붙은 별칭들까지 작품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는데 세심히 신경 쓴다. 가브리엘 쿠리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언제 시작해서 끝냈는지 등 정확하고 명료한 설명을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작품이 결코 초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관람객이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란다. 흔히 사용하는 ‘혼합매체’라는 표현을 지양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표기하는 것 또한 작품의 정체성을 구축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쿠리는 모든 작업 단계에 있어 확고한 철학적 체계 속에서 움직인다. 




<Untitled(trinity)> 2004 Three working refrigerators, 

three hovering shopping bags 190×320×60cm

(74.8×125.98×23.62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이러한 체계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촘촘히 사회 경제적 구조에 엮여있는지를 보여주고 그 사실을 일상생활의 오브제를 통해 비판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중요한 점은 그의 작품이 단편적인 시선 뒤에 감춰진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상품화되어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영수증을 태피스트리로 만들어 역시 조각이라고 부르며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주로 ‘untitled’란 제목과 함께 별칭이 붙는 이 조각들은 서로 다른 오브제를 올려놓거나, 각도를 기울이거나, 구부리고, 뭉치는 등 조각, 조형의 언어를 사용해 종종 미적 가치를 배제한 정보 중심적 작품으로 탄생한다. 어원에 ‘가정과 그 영역의 경영’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경제. 


그 단어를 있는 그대로 작품으로 풀이해 내는 작품들이 바로 그가 ‘고블린(gobelin) 조각’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Untitled(Superama)’ 시리즈는 쉽게 지나치는 일련의 경제적 프로세스를 심도 있게 연구해 우리가 경제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거대한 태피스트리 작품이다. <Superama I>은 그가 상점에서 특정 물건을 구매한 후 그 영수증을 방직공이 모직 태피스트리로 만든 것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작품 <SuperamaⅡ>, <SuperamaⅢ>는 각각 일 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산 영수증을 제작한 것이다. 이때 작가는 전에 취했던 동선으로 같은 물건을 찾고 계산대까지 가져간다. 이런 프로세스에서 그 물건을 구할 수 없거나, 가격에 변동이 생겼거나 이전에 사용한 신용카드가 아닌 새것으로 결제하는 등과 같은 작은 변화들을 겪는다. 설사 같은 방법과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했다고 해도 직조하는 과정이 다르고 걸리는 시간이 다르니 결코 처음에 제작한 <Superama I>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Untitled(Cascada coloreada)> 2007 Consumption 

tickets, postcard and screenprint on paper 44×30cm

(17.32×11.81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일회용으로 쉽게 버려지는 상업적인 것(영수증)이 기념비적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념비적이다’란 표현은 시리즈가 작품으로 소개되는 시점에 이미 결제의 행위는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된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이다. 작품은 그가 과거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을 나타내는 회고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그의 예술적 창작 시점을 기념하는 조각이 된다는 의미다. 이처럼 작가는 조각이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간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해 어떠한 사건의 레퍼런스가 되는 기록물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그는 방직 행위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사실은 가정용품과 식료품을 구매하는 것만큼이나 진부한 행위임을 밝힌다. 


사람들은 쿠리가 창작할 때 뭔가 예술적이고 열정적인, 독특한 방식이 있다고 말하기를 기대할 테지만, 정작 그에게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과 동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태피스트리 시리즈, ‘Trinity(Voucher)’는 위에서 언급한 작품과 동일하게 세 벌로 이뤄졌다. 하지만 ‘Superama’ 시리즈가 타이밍과 행위의 지루함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Trinity’ 시리즈는 똑같아 보이지만 각각 개인과 중개자, 그리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영수증을 통해 사회 경제적으로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특별할 것 없는 영수증 하나로 사회 경제적으로 얽힌 우리의 삶을 탐구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 모두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Installation view of <Trinity(voucher)> 2004 Hand woven 

wool gobelin 350×345cm(137.8×135.83inch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Blaffer Art Museum 

at the University of Houston, Houston, 2010





이 외에도 비닐봉지, 쓰레기통, 주차권, 신문, 번호표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이용해 일상적인 삶에서 조형적 언어를 찾고 행위가 일어나는 시점에 따라 변화하는 의미들을 작품에 입힌다. 작가는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오브제를 이용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그의 조각들은 일상적인 모습 그대로 평범하다. 작품에 미적인 요소를 입히는 것보다 현실 그대로 남길 때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이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그들이 전시장을 떠날 때 예술적 경험을 갖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제안한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혹은 더 깊이 보는 방법과, 현실 세계의 문제들은 관람객들이 동감하고 함께 참여할 때 예술이 된다. 미적인 순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어야 미래의 받아들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치고, 기억들을 뒤흔들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시간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항상 더 실험적인 차원에서 고민하고,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계획한다고. 그가 처음에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그 안에 내재된 정보들을 붙잡아 요리조리 뜯어보고 만져보면서 예술적 차원으로 발전시킨 작품은 쿠리가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며 보는 이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일상적 오브제로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는 많다. 하지만 그것들의 엄폐된 체계를 꿰뚫는 시각을 지닌 가브리엘 쿠리는 단연 선두에 서 있다.  


 

 

가브리엘 쿠리 

Portrait of Gabriel Kuri Photography by Ivo Corrà





작가 가브리엘 쿠리는 1970년 멕시코시티 출생으로 멕시코 UNAM 국립 예술 학교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50회,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제5회 베를린 비엔날레, 제12회 아바나 비엔날레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비엔날레에 참여했고, 지난2015년엔 국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으로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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