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128, May 2017

사진, 그 모호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관하여

Australia

Bill Henson
2017.3.10-2017.8.27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08년, 로즐린 옥슬리 나인 갤러리(Roslyn Oxley 9 Gallery)가 빌 헨슨(Bill Henson)의 전시를 앞두고 VIP고객들과 언론사에 초대장을 보냈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일부 학부모들과 시민 단체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유인즉, 초대장에 삽입된 작품 이미지가 13세 소녀의 누드 사진이었기 때문. 게다가 헨슨이 새롭게 선보이는 20여 점의 누드 사진 모델이 전부 십대라는 것이 밝혀지자 시드니의 보수적인 예술 단체까지 가세하여 그가 청소년 보호법을 위반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결국 전시 오프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의 작품은 모두 경찰에 압수당하고 만다. 작품의 주인공인 십대들과 그들의 부모 동의하에 진행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빌 헨슨을 비롯하여 전시를 주최한 갤러리 측과 미술 관계자들은 ‘이것은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가 아닌 예술 작품’이라고 반발했지만 뉴사우스웨일스 주(州)는 헨슨의 작품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의 개인전을 취소시켰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청소년을 모델로 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갔으며 추후 이 시리즈를 공개하여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 김남은 호주통신원 ● 사진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제공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ill Henson' at the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Presented as part of the ‘NGV Festival of Photography’ Photo by Wayne Taylor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김남은 호주통신원

Tags

‘예술인가, 외설인가’를 둘러싼 이 논쟁은 9년이 지난 2017년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헨슨의 작업을 논할 때 혹은 매번 그의 전시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피소드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호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라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때 문제적 작가로 낙인 찍혔으나, 호주 현대 사진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빌 헨슨, 그의 40년이 넘는 예술 경력을 기리는 전시가 현재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이하 NGV)에서 진행되고 있다. 빌 헨슨의 개인전은 총 6개의 독립적인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NGV 포토 페스티벌(NGV Festival of Photography)의 일환으로, 오는 8월까지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헨슨은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줄곧 ‘풍경’, ‘공간’, ‘초상’, 이렇게 세 가지 굵직한 테마를 다루어 왔는데, 이는 사진에서 매우 전형적인 주제이자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미술의 전통과도 맞닿아있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Bill Henson> 

at the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Presented as part of the 

NGV Festival of Photography Photo by Sean Fennessy  





그의 작업은 유럽의 고전적인 미술사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때로는 몇몇 작품이 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풍경이 되었든 인물이 되었든 덧없는 감각을 포착하는 그의 작품은 수수께끼처럼 모호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품의 서사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탓에 관람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숭고미가 느껴지는 유럽의 풍경, 작품과 관람자들이 혼재된 미술관 인테리어,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누드 등 세 가지 테마를 아우르는 작품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 전시 작품은 모두 NGV 소장품으로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그러니까 법정 공방 이후 상당히 중요한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 중에서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들로 구성되었다빌 헨슨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작업실 풍경을 촬영하면서 시적인 이미지를 제작하는데 천착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풍경을 작품화할 때 더욱 극대화되는 이러한 성향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카프리는 연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이름 없는 섬처럼 신비로운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검은 섬의 윤곽이 흐릿하게 드러나거나 짙푸른 바다 위에 두 절벽이 마주하고 있는 이미지 앞에서 관람자는 고대 신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헨슨의 풍경 사진이 이토록 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띄는 이유는 그가 언제나 하루가 끝나가는 황혼 무렵에 촬영하기 때문이다. 





<Untitled> 2008-2009 Inkjet print 127×180cm

  Bill Henson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어스름, 그 모호한 시간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사진이기에 가능한 결정적 순간의 결과이다. 공간에 대한 빌 헨슨의 관심은 극장에서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그는 미술관 풍경을 촬영하지만, 독일의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방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두 작가는 모두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는 미술관 풍경을 보여주지만 스트루스와 달리 헨슨은 유독 클로즈업(close-up) 방식으로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 때문에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관람자인지,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해진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존재하는 관람자와 하얗고 우아한 대리석 조각을 병치시키는 흑백 구도로 인해 보다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것은 헨슨이 이미 극장 시리즈에서 시도했던 것으로서, 인물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했던 방식과 동일하다. 아마도 그는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보다 그 안에서 연출할 수 있는 세부적인 요소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빌 헨슨의 인물 초상은 강한 빛의 효과 때문에 카라바지오(Michelan gelo Caravaggio)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이탈리아 회화에서 유행하던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사진에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벨벳처럼 암흑 같은 배경에 강한 빛을 부여하여 사람의 몸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바로크 회화의 영향을 받은 그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초상과 누드 이미지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섬세한 고찰이 느껴진다. 





<Untitled 2009/10> 2009-2010 Inkjet print 102.1×152.0 cm(image)

 126.5×177.6cm(printed image border) 127.1×184.6cm

(sheet) Purchased, Victorian Foundation for 

Living Australian Artists, 2012 (2012.10)  Bill Henson





특히 십대들의 누드를 통해 주체의 내적 상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업은 더욱 심오해졌다. 헨슨은 청소년을 주제로 하는 작업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단계에 놓이는 십대들은 모든 면이 불확실하고, 세계의 변화에 대한 달콤하면서도 어두운 감각을 드러낸다’는 점이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밝힌 바 있다. NGV의 배려로 이번 전시에서는 2008년에 이슈가 되었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누드 작업을 둘러싼 기존의 논쟁에 대해 본 전시를 기획한 NGV의 수석 큐레이터, 수잔 반 아이크(Susan van Wyk)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아이의 누드는 유럽 미술사에 끊임없이 등장했던 소재이며, 이런 전통에 영향을 받은 헨슨은 청소년의 몸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처럼 아름답게 표현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상처를 간직한 존재라 할지라도 헨슨의 누드 작업은 결국 하나의 피사체로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였으리라.





<Untitled> 2009-2010 Archival inkjet pigment print 127×180cm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Tolarno Galleries, Melbourne  

 




헨슨의 개인전은 유럽 회화와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는 19-20세기 아트 앤드 디자인(19th-20th Art&Design)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밝고 화사한 다른 전시실과는 달리 무겁고 엄숙한 느낌이 드는 그의 갤러리는 검은 벽에 최소한의 조명으로 작품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그의 작품을 맞닥뜨리게 되는 관람객들은 어쩌면 이곳에서 현대미술이 전시되고 있는 게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 미술사의 전통을 따르고, 고대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과 19-20 세기 작품들 사이에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반 아이크의 의견이다.  30년 가까이 NGV에 근무하며 헨슨의 사진을 숱하게 보았던 그는 아직까지도 헨슨의 작품이 걸려 있는 전시실을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를 특별한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한 창조 정신과 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글쓴이 김남은은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년간 신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캔버라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호주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