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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5, Jun 2020

흔적의 시간들

U.S.A.

Marking Time: Process in Minimal Abstraction.
2019.12.18–2020.8.2 뉴욕, Solomon R. Guggenheim Museum

19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 등의 다양한 미술 경향들이 범람했고, 196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분위기 속에서 정신성과 물질성을 통합적으로 나타내는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추상화 작업을 하는 많은 예술가는 이전 추상표현주의 작품과 다르게 작품의 구성, 색채, 그리고 작가들의 고유 스타일을 없애나갔다. 일부 작가들은 회화를 최소한의 형식으로 접근하고, 그들의 신체적 움직임과 함께 물질적 결합을 강조했다. 이들은 역설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예술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독창적인 작품 형식을 정립하면서 당시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경로로 점차 회화를 실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의심 속에서 자신들의 작업 정체성을 고민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나갔다. 수백 번 수천 번 붓질을 반복하거나,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서 연필로 드로잉을 하고, 또는 핀으로 종이를 뚫는 등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행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려지는 그림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린다’라는 것은 행위의 문제라기보다는 화면에 재료를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박서보를 비롯해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로만 오팔카(Roman Opałka),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 등 세계적인 추상 화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구겐하임 전시는 후기 추상회화의 회화적 접근과 더불어 작품의 도구와 재료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관람객과의 암묵적인 신뢰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탐구한다.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제공.

Installation View of 'Marking Time: Process in Minimal Abstraction'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Photo: David Heald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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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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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컬렉션에서 12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이는 <Marking Time: Process in Minimal Abstraction>은 예술가들의 추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한다. 단순히 회화의 표현 방식을 실험해 보았던 작품이 아닌, 작품의 존재를 환기함으로써 기본 물질의 의미를 능가하고, 사물의 근본, 동양 정신의 본질을 나타낸 작품들이 관람객을 만난다. 또한, 전시된 작품들은 작가들이 작품을 창조하는 전체 과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관람객들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무한 거울의 방이나, 호박 조각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무한 망(Infinity Net)’ 시리즈의 <No. 2. J.B.>(1960) 작품은 어떤과도한 손질 행위의 반복으로 보인다. 아래 검은 층 위에 반투명 층을 얹고 맨 위에 하얀 층을 다시 덧바른다. 이러한 불규칙한 배열의 무수한 점들은 마치 수백 수천 개가 모여 있는 유기체 같다. 이렇게 공간을 압도하는 작품은 관람객에게 자의적이고 다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무한한 반복의 현기증, 무언가를 압도하는 최면술과 같은 느낌이랄까. 모든 예술가는 모든 사물의 본질 탐구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그 행위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마치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자세나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인간이 느끼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균형감각에서 시작된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균형 잡힌 그리드로 구성된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은 안정된 화면을 통해 따스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온화한 미감은 균형과 평등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 그리드를 통해 평화로운 감성 상태를 전달한다. 이러한 선의 조용한 리듬감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며, 그리드의 선들을 동일하게 그리기 위해 온전한 마음가짐과 동일한 정신 상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White Stone>(1964)은 꾸밈없는 하얀 바탕색에 그려진 연필 선들을 통한 그리드를 보여준다





Roman Opałka <OPALKA 1965/1–∞ Détail 1520432–1537871> 

ca. 1975 (from a continuous project, 1965–2011) 

(detail) Acrylic on canvas, with audio recording, 65min 46sec 

196.2×135.2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76.2220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선들이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억지로 완벽하게 그리기보단 자유로운 손의 움직임과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복잡한 현실을 상기시키지 않은 조화로운 균형에 마틴의 그리드는 관람객들에게 편안한 마음의 휴식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마틴은 그가 사용하는 재료와 물감 그리고 도구에도 심사숙고를 거친다. 물감을 더 부드럽게 흡수할 수 있는 천의 질감, 무게, 신축성, 색채, 질감 등을 고려하여 선별한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색채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의 부드러운 성향과 다양한 사상이 어우러져 작품의 색채는 빛나듯 밝은 색채를 띤다. 


마틴은 일반적 초벌칠을 생략하거나 한두 번 정도로 바탕칠로 본연의 질감이 지속되도록 한다. 이와는 반대로 로버트 라이만의백색 모노크롬연작은 두껍게 안료를 올린 방법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물질적 그리드를 제작한 라이만은 프로세스 아트 작가로 간주되는데, 그의 작품은 재료를 처리하는 방식이 완전히 화폭 안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 말부터 재질이 다른 여러 가지 화폭에 물감을 바르는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흰색 안료만을 사용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이나 물감 덩어리들로 둘러싸인 모습은 캔버스의 형태를 완전히 강조하는 물성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림은 뭔가를 대변하기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일 뿐이다라고 라이먼은 말한다. 아마 우리가 보고 있는 흰색은 물감이요, 네모는 캔버스인 것이 작품에 대한 진실한 견해일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관람객들은 눈앞에 있는 작품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작가였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상상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몸과 시간,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의 구체화된 경험에 대한 의식으로서 나 자신에 대한 인식에 공감하는 참여 방식이다. 과연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한 작가의 인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작품의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그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 여기, 1부터 무한대에 이르는 숫자를 캔버스에 적는 작가가 있다. 로만 오팔카의 ‘Oplaka1965/1-∞’ 1965년부터 제작된 시리즈로, 1부터 일련의 숫자들을 무한대로 그리고 그 과정을 음성으로 녹음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프로그램이다. 오팔카는 본인이 정해놓은 규칙을 정해두고 일관적 논리와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생성해냈다





Zarina <Untitled> 1977 (detail) 20 needle-pierced sheets

 of laminated paper, approximately 26×19 3/4in (66×50.2cm) 

each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Purchased with

 funds contributed by the International Director’s Council 

and through prior gift of Solomon R. Guggenheim, 2010.32 




이러한 논리의 과정은 굉장히 엄격한 기준으로 정해둠으로써 본인이 짜놓은 프로그램 속에 심오한 의미를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만의 의지였다. 검은색 바탕의 캔버스에 흰색 물감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차례대로 그리고 흰색 물감을 붓에 잔뜩 묻힌 후 다음 물감이 남아있을 때까지 숫자를 그린다. 1970년 초반부터는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될 때마다 캔버스 바탕에 1%만큼의 흰색 물감을 첨가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한다. 검은색으로 출발한 바탕색은 점점 밝아져 언젠가는 흰색 바탕 위에 흰색 숫자를 그리게 되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논리에 의해 정해진 과정은 하나의 리듬이 생성된 동시에 일종의 강박증과 같아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지만 관람객들은 작가의 삶을 캔버스 속에서 직접 살아 숨 쉬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반면에 캔버스 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도 출신 작가 자리나(Zarina Hashmi, 작가 이름으로는 성을 뺀 이름만 사용한다)는 지리적, 영토적, 사회적 경계 초점에 맞춰 디아스포라 내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혼란의 감정을 탐구한다. 특히 종이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자리나의 관심은 도구에 의해 생긴 구멍, 긁힘, 바느질을 수반하는 여러 특징을 탐구한다


초기 시리즈인 ‘Untitled’(1977) 20장의 합판지에 핀으로 드로잉 한 것으로, 여러 바늘을 사용하여 구멍을 수백 번씩 반복해서 뚫는다. 이 안에 새겨진 격자무늬를 살펴보면, 각각의 흔적은 이슬람 예술에 필수적인 다중성 개념을 암시하면서도 이 엄청난 양의 구멍들은 오팔카의 작품처럼 강박적으로 보인다. 일정한 힘으로 구멍을 뚫은 것도 아니고 하얀 종이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작품에 가까워질수록 하얀 종이 위에 하나의 패턴, 혹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움직일 때,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그는종이는 인간의 피부와 거의 비슷한 유기물질이라고 말한다상처받기 쉽고 연약하지만또한 강하기도 한 종이의 특성을 인간의 피부와 연관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의 작품은 세속적이면서도 신성하다그것은 아마도 물질보단 정신을물질보단 삶을 우선시하는 그의 작품의 철학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아무것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있다하얀 종이 위에 모든 형상이 흡수되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준비가 된 새로운 세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작가들은 ‘그리는’ 행위에 대한 회의와 의심 속에 자신들의 작업 정체성을 고민한다.





Park Seo-Bo <Ecriture No. 55-73> 

1973 Graphite and oil on canvas 

195.3×290.7×3.8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Gift, the Samsung Foundation of Culture, 2015.50 




한국 단색화의 대가인 박서보의 대표적 연필 묘법의 시리즈묘법 No. 55-73’(1973)도 만나볼 수 있다. 묘법은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드로잉과 쓰기의 방법론을 연구하며 선을 긋는 행위 반복의 과정으로 풀이된다. 캔버스에 백색 안료로 밑칠을 하고 색이 마르기 전에 4B연필의 아랫부분을 비스듬하게 잘라서 선을 그어 나간다. 작가의 손의 흐름과 의식에 따라 움직이기 용이하게 그었는데 여기서 연필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의 도구로서의 막대기일 뿐이다. 그가 말하길 이는 가장 순수한 상태를 위해서이고, 행위의 무목적성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기 위함이라고 한다. 몸속에 익혀진 리듬감에 따라 연필을 쥐고 무심한 손놀림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행위, 그리고 캔버스 위에 담긴 흔적은 어떤 형상도, 이미지도 없으며 그저 반복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워 나가는 수행자와 같다. 관람객은 휘갈겨진 작가의 연필 자국을 어떻게 바라볼까? ‘작가는 선을 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렸을까?’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그리면서 팔이 아프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을까? 사실 선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작가만의 선은 독창성과 그만의 시간성 그리고 육체적인 고역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반복적인 선 긋기를 통해 어떤 명령 전달 과정 없이도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 그리고 정신과 신체의 합일 지점을 찾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다. 추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예술가들이 어떻게 독특한 작품 세계로 구축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에는 구체적 대상의 재현을 거부하거나 회화 그 자체를 그대로 자립시키고자 하는 의도, 재료와 매체의 특정한 성격을 발전시키는 시도가 엿보인다. 사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성격을 가진 작가들을 한데 묶는 것이 예술 사조에서 무엇을 성취했거나, 무엇을 표현했고 실험했는지에 대한 시도로 연결된 전시는 아니다. 예술이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생성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공유된 믿음도 아니다. 그 대신 관람객들이 눈앞의 대상을 생각하고 예술가의 위치에 자신을 올려둠으로써 감각과 기억을 자극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의 신뢰가 있다. 그것은 육체와 시간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타인의 구체화된 경험에 대한 의식으로서, 직접 눈에 닿는 작품의 표면이 아닌 그 내면에 내재한 감성들을 포착해 내는 공감적 참여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번 전시가 추구하는 본질일 것이다.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어와 텍스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하였고, 2016-2017년에는 문화역서울 284 <다빈치 코덱스>전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현재, 뉴욕 첼시의 작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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