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Issue 129, Jun 2017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ART NIGHT 2017

오는 7월 1일, 밤의 런던을 누빈 당신이라면 반드시 “하얗게 불태웠어”라고 말하게 되리라. 늦은 시간까지 해가 넘어갈 줄 모르는 유럽의 여름. 깊은 밤에도 하늘이 희미하게 빛나는 계절의 긴긴밤을 눈 똥그랗게 뜨고 지새우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술! 단 하룻밤 동안 영국의 수도가 공공미술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따분한 기념비, 억지춘향식의 벽화 따위는 잊어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런던행 항공권과 늦은 밤까지 거리를 돌아다닐 체력, 작품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열린 마음. 그 앞에 펼쳐질 장면은 바로 예술 불야성.
● 이가진 기자 ● 사진 Art Night 제공

Carsten Nicolai Photo Dieter Wuschanski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이가진 기자

Tags

하룻밤 동안 한정 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전체가 변모한다. 이러한 콘셉트가 마냥 낯설거나, 완전히 새롭지만은 않다. 2002년 파리에서 시작되어 리가, 토론토, 보고타, 도쿄 등 전 세계의 30개 도시가 이미 <Nuit Blanche(백야)>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야>에서 영감 받아, 2016년 1회 행사를 치른 런던의 ‘아트 나이트(Art Night)’는 이들에 비해 분명 후발주자다. 하지만 세련된 형태의 공공미술에서 강세를 보여 온 런던이라는 도시의 저력을 떠올릴 때, 이들의 ‘아트 나이트’ 역시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해에는 7월 2일, 10명의 현대미술작가가 웨스트민스터를 중심으로 ‘트래펄가 광장(Trafalga Square)’,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 등 런던의 유서 깊은 장소에서 다채로운 이벤트를 펼쳤다. 구정아는 한국인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아 런던의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 역 전체를 작업으로 풀어냈다. 이 역은 1999년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데, 작가는 플랫폼에 조명, 냄새, 오브제, 영상 등으로 ‘개입’이 이뤄지는 멀티미디어 환경을 조성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활발하게 이름을 알리며 가장 중요한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조안 조나스(Joan Jonas)는 재즈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란(Jason Moran)과의 협업으로 서더크 대성당(Southwark Cathedral)에서 환상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쳐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얗게 차려입은 80세의 작가는 한 시간 동안 지도를 그리거나,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의 자연이 투사된 이미지 위로 선을 따라 그리고 생선을 그리는 등 음악과 어우러진 마법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이 외에도 셀리아 햄튼(Celia Hempton), 로르 프루보스트(Laure Prouvost) 등이 회화, 디자인, 건축,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으로 도시의 밤을 밝혔다. 




Linder <Destination Moon, You must not look at her!>

 2016 Performance Courtesy the artist,

 Stuart Shave/Modern Art

 and Art Night 2016 Photo Hugo Glendinning

 


한편, 이제 2회를 맞은 ‘아트 나이트’가 새로 선택한 지역은 런던의 이스트엔드(East End). 19세기의 대표적인 도시빈민가로 부두 노동자, 이민자 등이 대거 자리 잡으며 오랜 세월 낙후된 동네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러한 인식을 바꿔놓은 일등공신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템즈강의 동쪽은 현대미술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허름한 공장에 들어선 신진 갤러리,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와 샘 테일러 우드(Sam Taylor-Wood) 등을 발굴한 화이트 큐브 갤러리(White Cube Gallery)를 중심으로 재편된 예술 실험, 자유분방한 그래피티(graffiti) 등 범상치 않은 기운이 동네를 감싼다. 이 일대에 속하는 쇼디치, 해크니 등의 이름이 ‘힙(hip)하다’고 수사되는 것 또한 벌써 몇 년 전부터 감지되던 변화다. 이처럼 올해 ‘아트 나이트’는 런던에서 가장 젊고, 활기찬 구역에서도 13개의 장소를 엄선해, 11명(팀)의 작가가 총 1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단순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한정 짓지 않고 공공성을 지닌 역사적 장소나 상징적인 곳은 물론이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간에까지 생기를 불어넣을 예정이다. 작년 행사의 주축이 되었던 현대미술학회(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1901년 설립 이래 ‘런던 이스트엔드의 사람들에게 훌륭한 예술을 누리게 한다’를 모토로 해 온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다. 여러모로 1회에 비해 지역의 특수성을 뚜렷하게 내세운 배경이 여기에 있다. 참여 작가의 면면도 인상적이다. 우선 런던 부두(London Docks)의 빈 물류창고에 생기를 불어넣을 채프먼 형제(Jake and Dinos Chapman)가 <The Misshapeness of Thing to Come>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설치를 준비 중이다. 여기에 더해 제이크 채프먼이 이끄는 밴드의 라이브 퍼포먼스까지 이뤄진다니 기대할 만하다.




Benedict Drew <Kaput> Installation View 2015 Photo by

 Charlotte Jopli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tt's Gallery




찰스 에이버리(Charles Avery)는 타워 브리지 근처의 세인트 캐서린 부두(St Katharine Docks)의 변신을 책임진다. 평소 세심한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시리즈를 통해 ‘그 섬(the island)’이라고 명명한 장소와 거주민에 관한 심리-지리적 초상을 구현해 온 에이버리는 이번 프로젝트로 런던의 동부에 있는 가상의 섬을 구성한다. 특유의 기법으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세계화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그의 작업은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올해에도 음악이나 무용과 어우러지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관람객과 호응할 준비에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베네딕트 드류(Benedict Drew)는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빅 밴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비디오와 라이브 음악이 어우러진, 신작 멀티미디어 설치작을 공개한다. 갤러리 내 5개의 공간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분리된다. 각 공간에서 만날 만화경 같은 영상, 실험적 신시사이저 음향, 손으로 그린 풍경, 대규모 시위 배너 등은 사회-정치적 영향, 환경 문제를 건드리며 관람객의 정신을 아찔하게 할 계획이라고. 멜라니 멘초트(Melanie Manchot) 역시 대규모 신작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이스트엔드의 여러 무용 학교와 협업해 완성될 작업은 아르헨티나의 탱고부터 중국 전통춤까지 여러 층위의 스타일과 서로 다른 문화권을 아우른다. 각자의 학교에서 길을 따라 출발해 화려한 퍼레이드처럼 진행되는데, 그들이 한데 모이는 곳은 브로드게이트의 익스체인지 스퀘어(Exchange Square)다. 이곳은 그들을 따라 축제를 즐기고  누구나 춤을 따라 배우며 함께하는 참여의 현장이 된다. 이 모든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기록돼 또 다른 작품으로 거듭난다니 ‘아트 나이트’가 그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는 것은 아닌 듯하다.




Joan Jonas and Jason Moran 

<Reanimation> 2012 Performance Courtesy the artist,

 Wilkinson Gallery and Art Night 2016 Photo Hugo Glendinning




작년의 구정아에 이어 올해도 한국 작가가 눈에 띈다. 서도호는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자신이 살았던 거주 공간을 특수한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대형 패브릭 설치를 내세웠다. 그의 조각적 설치는 이스트엔드의 오랜 이민 역사에 응답하는 개인적, 사회적 맥락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대한 예술적 답변이 될 것이다. 여름밤의 흥을 본격적으로 돋울 이는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다. 알바 노토(Alva Noto)라는 예명으로 디제잉을 하는 그는 평소에도 시각예술, 음악, 과학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티스트다. 그는 다른 여러 명의 디제이, 온라인 음악 미디어 채널인 보일러 룸(Boiler Room)과의 협업으로 쇼디치의 빌리지 언더그라운드(Village Underground)를 달군다. 


지난 10여 년간 런더너를 비롯해 세계를 열광시키고, 디제이 부스 없이 마치 거실에서 놀 듯 가까이에서 다수의 디제이와 직접 호응할 수 있게 한, 일명 보일러 룸 스타일의 파티가 마련되는것. 이 외에도, 런던의 미래 사무공간에 관한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비디오로 풀어낼 로렌스 렉(Lawrence Lek)과 오래된 제조회사 건물을 색, 빛, 오디오 등으로 채워 몰입형 공간으로 바꿔줄 앤 하디(Anne Hardy), 린제이 시어스(Lindsay Seers)가 비디오 설치에 퍼포먼스 요소를 섞어 공개할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전당, 마소닉 템플(Masonic Tample)에서의 작품도 놓치기엔 아쉽다. 다음날이 일요일인 만큼 걱정은 내려놓고 그 밤을 만끽하기를 추천한다. 화이트채플 갤러리 디렉터 이오나 블라즈윅(Iwona Blaz wick)은 “예술과 지역의 문화유산이 특별한 한여름 밤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며 “색다른 시간대에 예술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이번 여행에 모두를 초대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Lindsay Seers

 <Nowhere Less Now 2(The Red Queen)>

(production still) Courtesy the artist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