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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29, Jun 2017

파도바에 세워진 무한기둥

Italy

Column Infinite Standing at Padova
2017.4.7-2017.9.24 파도바, 베키아또 아르떼(Vecchiato Arte)

이탈리아 파도바의 광장은 스스로 동력을 생성하는 것 같다. 공기엔 열기가 담겼고 사람들에겐 에너지가 넘쳐난다. 나지막한 돌바닥과 깊게 내리깔린 하늘이 맞닿는 곳에 트위스트 기둥이 있는데, 마치 그것이 하늘로 가는 통로처럼 여겨진 것은 비단 나뿐일까. 해가 비추는 곳은 뜨겁지만 박은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그늘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군중들은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사랑했다. 미술이라는 어떤 대상을 대하듯 박은선의 작품에 거리를 두거나,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흡사 그것이 공원의 일부인 것처럼, 애초부터 그곳에 그 기둥과 덩어리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행동했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작가 제공

'Column Infinite II' 2017 White and red granite 389×130×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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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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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흩뿌려진 12점의 작품 가운데 유독 노란색 배합이 눈에 띈다. 말갛고 뽀얀 노란 대리석은 그간 박은선 작품에 사용되지 않았던 재료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노란색 혹은 풀색 대리석을 구하고, 자신의 시그니처 패턴에 그것을 접목했다. 명망 있는 베키아또 갤러리(Vecchiato Gallery)기획을 맡았지만 파도바라는 도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번 전시를 위해 박은선은 지난 2년여 간 발품을 팔며 고심했단다. 파도바는 매해 한 명의 현대미술 작가를 초청해 봄부터 가을까지 전시를 선보이는데, 이처럼 도시의 여러 공간을 내준 적은 이제껏 없었다. 시청이나 광장 등 상징적인 어떤 부분만을, 이를테면 공공미술 차원에서 협력했을 뿐이었다. 한데, 박은선의 전시를 유치하며 도시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했다. 작가에게 직접 공간을 고르도록 하고 그 곳이 어떤 장소이든, 설치가 가능하도록 조율했다. 





Porta San Giovanni, Padova 2017 설치 전경




“비워진 곳, 그것이 내 작품을 놓을 공간 선택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는 작가 말대로 작품으로 인해 공간은 꽉 채워졌다. 그는 여러 번 도시를 들여다보며 이곳에 어떤 조형을 놓을지 어떤 색상을 배치할지 고심했다. 그래서일까. 작품은 주변 색과 무척 닮아있다. 푸른 회색이 도는 건물 앞엔 재색 트위스트 기둥이, 노란색 돌담 옆엔 노란 덩어리가 자리 잡았다. 한국말로 ‘무한 기둥’으로 해석되는 ‘Column Infinite’, ‘발아’ 혹은 ‘움트다’는 뜻의 ‘Generazione’ 등으로 명명된 작품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다. 많은 현대미술은 인간, 특히 지식의 극점에 도달한 인간이 지니는 타락의 심연과 욕망을 주제로 삼고 종종 그것은 ‘악’이나 ‘추함’의 향연으로 재현한다. 어쩌면 현대미술의 딜레마는 그것인지 모르겠다. 인간의 본성을 반드시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바라보는 미술의 시선 말이다. 그런데 박은선 작가는 다르다. 정제된 형태와 색 그리고 본연의 재료만으로 그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늘 불안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힘겹게 올라가는 현대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은선의 작품이 개최되는 동안, 파도바와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베니스에는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가 개최되는데, 작품 때문일까, 두 도시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베니스가 말초신경까지 곤두선 극도의 긴장 상태라면, 파도바의 표정은 최선을 다하고 순리를 따르는 현자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졌다. 





<Generazione II> 2017 White and yellow granite 21×17×18cm  

 




“재료가 좋은 사람만이 이 도시에 남은 것”이라고 작가는 읊조렸다. 현대미술이 점점 현란하며 복잡한 시나리오를 취하면서, 돌을 깎거나 나무를 다듬는 미술 방식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예술적 자부심을 지닌 이탈리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념을 쫓아 젊은 아티스트들이 도시를 떠났고 현대 혹은 첨단이라는 시류를 따라 많은 이들이 재료를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만지고 기꺼이 그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남은 곳, 그곳이 이탈리아라고 작가는 웅변하는 것이다. “예술을 지니고 태어났고, 예술 자체가 숙명이라 여기는 이 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현대미술엔 무신경한 것 같다. 이곳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내 작품은 이 나라에서 캐낸 돌로 만드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다”고 피력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설치하는 동안, 실제로 작가는 시민들의 지적과 감시를 감당해야 했다. “이 도로는 몇 백 년 된 것이니, 망가뜨리지 말라”거나 “경관이 가려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라”는 등의 잔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수해야 했다. 





<Colonna Infinita-Continua> 2017

 Black and yellow granite 592×210×192cm




그러나 정작 작품이 다 세워지고 나자 그들은 응원과 환호의 인사를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은선의 작품은 몇 백 년 된 도로 혹은 건물과 한 치의 이질감 없이 조화되기 때문이다. 도시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다른 색조를 지닌 기하학적인 입방체, 완벽한 구, 원통, 고리를 축적해 완성한 구조물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구불구불한 기둥과 구체를 아슬아슬하게 세운 마름모를 만드는 그는 작품을 통해 하늘을 향해 증식하는 열망과 시간과 자신에게서 탈출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같은 단위를 축적하고 반복해 고유 형태를 형성하며 완성한 설치물은 형상의 증식과 번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상징한다. 톤 다운된 두 가지 색의 돌을 교차하고 집적하는 박은선은 공간을 확장시키며 자신의 모습을 은유한다. 하루 열 시간이 넘도록 돌과 사투하고도 드로잉을 멈추지 않는 삶을 지속해 온 그는 인간으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오가는 자신의 이중성을 작품에 고스란히 메타포한다. 





Via VIII Febbraio, Padova 2017 설치 전경  





“사람들이 만지고 자연스럽게 기대고, 그런 게 돌 조각의 가장 큰 매력이다. 뭔가 거리를 두고 한 발자국 떨어져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면 도시의 동선을 어지럽힐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그의 색과 형태는 시간이 갈수록 정제되고 있다. ‘끊임없이 복잡한 환경에 처하지만 결국 행복과 마주하는 인간과 삶’을 얘기하는 작가 박은선. 그에게 작가로서 당면 과제란 재료 본연을 유지하면서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가 선보일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조형은 당신과 내 앞에 앞으로도 쉼 없이 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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