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Issue 130, Jul 2017

예술과 다큐멘터리

Documentary on Art

“고인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가 생생하다”, “스크린에 흘러가는 현대미술 거장의 대표작을 한눈에 관람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술가들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지난 2월 극장에서 상영된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의 리뷰들이다. 20세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이란 전설적 컬렉터이자 후원자를 조망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기록물보다 대중에게 미술을 가깝게 느껴지도록 했다. 만약 예술 애호가에 관한 한 편의 전기를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당대의 날고 기는 작가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든, 그가 얼마나 가치 있는 작품을 알아봤고, 수집했는지 설명한 글이라도 우리는 오로지 상상으로만 짐작해 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것도 실제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처럼 예술을 말할 때,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흥미로운 방법론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하나의 장르로서, 많은 예술가는 미술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넘나들며 경계를 무화하기도 한다. ‘사실적 영화’와 ‘영화적 사실’을 둘러싼 논의까지 예술과 다큐멘터리가 엮이거나 빗겨가는 지점을 두루 살펴본다.
● 기획·진행 이가진 기자

코린나 벨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Gerhard Richter Painting)' 2011 스틸컷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전종혁『비욘드』편집장, 안건형 감독, 임경용 대표, iyqui, 최민아 사무국장, 김지하 미술학 박사

Tags

SPECIAL FEATURE Ⅰ

다큐멘터리로 예술에 관해 말하기_전종혁

 

SPECIAL FEATURE 

Pick this documentary

A.K. :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A.K.)/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_안건형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Lo and Behold: Reveries of the Connected World)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_임경용

아워 시티 드림스(Our City Dreams)/치아라 클레멘트(Chiara Clemente)_iyqui

왕자가 된 소녀들/김혜정_최민아

 

SPECIAL FEATURE 

사실적 영화와 영화적 사실: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기록에 대한 두 가지 쟁점_김지하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

2015 스틸컷 제공: 콘텐숍

 




Special feature

다큐멘터리로 예술에 관해 말하기

● 전종혁 『비욘드』 편집장

 


다소 엉뚱한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2005 4,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CF)의 경기를 담은 영화가 있다. 그렇다고 통상적인 스포츠 필름은 아니다. 17개의 카메라가 오로지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의 움직임만 쫓는다. 바로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과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지단, 21세기의 초상(Zidane, un portrait du xxie siècle)>(2006)이다. 관객은 오로지 90분 동안 지단을 보며, 그의 심장박동과 함께 호흡한다. 2008 9, ‘베니스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에서 첫 선을 보인 영화로 연극을 보는 이란 여배우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관객은 무대의 소리와 여배우들의 얼굴 표정만 볼 수 있다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 <쉬린>(2008)이다. 흔히 전자는 다큐멘터리로 분류되고, 후자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단(축구의 아이콘)의 이미지를 철저히 통제하고 조작한 영상을 과연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혹은 아무리 감독의 의도대로 정교하게 배치되었다고 해도 여배우들의 얼굴에 깃든 영혼(순수한 표정)이 다큐멘터리보다 더 리얼리티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두 영화는 대상(인물)에 대해 철저히 천착함으로써 현실의 재현에 관한 문제로 나아간다


이 영화들이 일으키는 긴장감은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중의 고정관념과 달리 다큐멘터리는 아주 불분명하고, 불확정적인 개념이다. 으레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나 실험 영화와는 다르게 분류되지만, 어쩌면 그런 사고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제임스 베닝(James Benning)의 다큐멘터리 <20개의 담배>(2011)를 잠시 소환해 보자. 그저 20명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20명의 인물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동안 아무 말 없이 각각의 개성대로(담배를 즐기는 습관대로) 카메라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바라보기, 시간의 지속, 차이와 반복 등의 테마를 실험하는 이 작품을 그저 다큐멘터리로 불러야 마땅할까? 굳이 특별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큐멘터리는 이미 다양한 실험 영화나 미디어아트와 접속하면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으로 오늘날의 다큐멘터리를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다.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방식의 다큐멘터리가 혼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나 프레드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같은 대가들이 여전히 다큐멘터리로 예술(혹은 예술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피 파인즈(Sophie Fiennes) 

<당신의 도시 위로(over your cities grass will grow)> 

2010 스틸컷





혹자는 예술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굳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할까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종종 다큐멘터리는 세계와 예술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오히려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는 작업일 수 있다.) 먼저 다큐멘터리가 담아내는 예술 작업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라는 케케묵은 질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재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진실과 믿음(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에 기반한 다큐멘터리의 수사적 전통은 영화의 물질적 속성 보다는 줄곧 재현 방식을 고민해 왔다. 단순히 현실의 재생산이 아니라 대상의 재현을 통해 ‘세상에 개입’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어떤 다큐멘터리도 특정한 시각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타인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에서 대상의 삶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흔히 제작자와 촬영 대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식의 윤리적 문제가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만남의 진실을 강조하는 것, 제작자(감독)와 대상이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조율하는가에 달려 있는 상호작용의 문제였다. 그러니 다큐멘터리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재현이나 불변의 진실을 추구하는 소박한 탐구가 아니었다. 더불어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텔레비전, 비디오, 디지털 카메라 등 기술의 진보와 뗄 수 없는 연관이 있었고, 다양한 시도와 논쟁 속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이 만들어 놓은 관습과 규칙을 스스로 깨뜨리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지난한 성장의 과정을 정리하거나 다큐멘터리의 양식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보통 '목소리의 유형'으로 나누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연구가 빌 니콜스(Bill Nichols)가 제안한 것처럼, 다큐멘터리의 하위 장르처럼 기능하는 몇 가지 재현 양식(시적, 설명적, 관찰자적, 참여적, 성찰적, 수행적 양식)을 통해 구분하는 경우다


하지만 여기서 초점을 맞출 것은 이런 분류법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감독), 대상, 관객이라는 삼 항의 상호작용에 있다. 다큐멘터리가 예술에 대해 말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칠게 요약하면 다큐멘터리의 진화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대상이나 관객과 맺는 방식(참여와 관계)의 변화로 압축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안에는 감독, 대상, 그리고 관객의 시선(이야기)이 각각 존재한다. 오늘날 다큐멘터리로 예술에 ‘관해’ 말하는 것은, 하나의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관객의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작업이며, 관객의 감성에 침투함으로써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선이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는 인물(대상)이나 예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는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케빈 맥도널드(Kevin Maccdonald)

 <Sky Ladder: The Art of Cai Guo-Qiang> 2016 스틸컷 

 Netflix 이 작품은 차이 구어 치앙의 하늘에 닿는 

사다리 모양 불꽃 조각 프로젝트를 생생하게 담았다.





이런 적절한 예로, 테리 즈위고프(Terry Zwigoff) 감독의 <크럼>(1994)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의 생애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1995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인기를 모았다. 이 작품은 크럼의 성적 욕망, 강박관념이나 형제애 등을 담으면서도 크럼에 대한 감독 자신의 양가적인 시선(감독의 욕망과 대상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크럼과 즈위고프의 교류(협력 관계), 즉 즈위고프가 크럼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덕분에 크럼은 ‘보는’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으로 ‘읽는’ 대상으로 변화한다. 이는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로저와 나> (1989)가 등장했을 때의 놀라움과 비견될만하다. 설명적 혹은 거리를 둔 관찰자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무어의 참여적 다큐멘터리는 GM의 로저 스미스(Roger Smith)를 탐구하는 주체로 자신을 상정한 후, 무어의 욕망과 삶을 기꺼이 드러낸다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주체와 대상에 대해 자연스럽게 인식할 때, 제작자의 욕망과 다큐멘터리가 재현(목표)하는 것 등에 대해 능동적인 자신의 시선(자신의 경험과 비교)으로 읽어내기 시작한다물론 최근에 제작된 예술 다큐멘터리들을 쉽게 정의할 수는 없다. 그 형태와 관객에게 반응을 일으키는 효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비교 불가능한 자신의 독특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테면, 오랫동안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던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은 피나에게 “절대 그녀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작품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 <피나>(2012) 촬영에 들어갔다. 벤더스는 피나의 도움(?) 없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나의 예술 세계를 재현하고 피나의 분신 같은 무용수들을 경유해 그녀와 소통하는 접점을 찾아갔다


이것은 벤더스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이나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에서 예술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다큐멘터리를 위한 완벽한 모델이나 유형은 없으며 감독에게 잔혹할 수 있는 제약이나 조건 등이 오히려 좋은 다큐멘터리를 낳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해 볼 수 있다. 국내 개봉한 영화 중에 예술적 공간을 담아낸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잊혀진 꿈의 동굴>(2010)과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내셔널 갤러리>(2014)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쇼베 동굴(Grotte de Chauvet) 3D 영상으로 선보이면서 원시예술 벽화를 탐험하게 만들고, 후자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대가들의 그림을 차례로 나열하듯 선보인다





뱅크시(Banksy) <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 스틸컷 사진 www.banksyfilm.com 





신비한 오지 탐험을 즐기는 헤어조크가 꿈꾸는 다큐멘터리가 관객에게 선사한 일종의 VR(가상현실)에 가깝다면,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는 내셔널 갤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탐구이자 내셔널 갤러리에 접속하는 또 다른 시선이 된다. 단일한 인물이나 쟁점으로 묶이지 않는 여러 사건들을 하나의 목소리(보이스 오버)로 통일하지 않은 채 모자이크처럼 나열하는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그의 전매특허에 가깝다. 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을 촬영한 <라 당스>(2009)나 쇼 비즈니스의 세계를 담은 <크레이지 호스>(2011)에서 익히 보던 방식이지만, 마치 <내셔널 갤러리>를 위해 수십 년 동안 리허설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어느 관객도 미술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다원화된 목소리와 수많은 시선 등이 경쟁하는 다큐멘터리 <내셔널 갤러리>는 특별한 순간을 창조해낸다. 즉 이런 다큐멘터리는 피나 바우쉬나 내셔널 갤러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피나 바우쉬나 우리가 경험한 내셔널 갤러리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것이 이상적인 다큐멘터리가 예술에 관해 말하고 해석하는 방식이다.(설령 새롭지 않더라도 많은 방식이 잠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시켜 준다.) 


또한 다큐멘터리는 예술가와 소통하는 방식을 찾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작업방식을 전경화하며, 그 다큐멘터리가 숙명적으로 직면할 복잡성과 회의적인 모순까지 담아내고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로 예술가에 접근하는 방식 중에 아주 익숙한 것은,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국내 예술 다큐멘터리다. 한국화가 박수근, 이중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다. 시청자를 압도하고 이끌어가는 보이스 오버(권위적인 내레이션)로 화가의 특정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비운, 천재, 한국(전통), 고난’ 등의 몇 개의 키워드가 자주 내러티브를 봉합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특수 카메라를 동원해 예술품을 촬영하거나 밝혀지지 않는 이야기를 발굴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고답적인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다큐멘터리라는 명칭을 들었을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설명적 양식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애초에 이미지와 사운드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추구한 <내셔널 갤러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메구미 사사키(Megumi Sasaki) 

<Herb& Dorothy 50×50> 2013 스틸컷 50×50 

프로젝트를 실현시킨 미국의 컬렉터 부부 허버트와

 도로시가 거실에 있는 모습 





이런 다큐멘터리는 으레 단순한 경험과 이해만을 공유하는 방식이다이와 달리, 예술가의 고유한 특징을 감독의 사적인 시선으로 풍부하게 담아낸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진행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助⃝) 회고전을 담은 매튜 애커스(Mattew Akers)와 제프리 듀프리(Jeffrey Dupre)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의 조우(Marina Abramovi助⃝: The Artist is Present)> (2012)회고전이 열리기 6개월 전부터 전시를 준비하는 마리나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업과 일상을 오가면서 그가 지닌 다양한 얼굴을 포착한다또 하나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전시회를 준비하는 중국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모습을 담아낸 앨리슨 클레이만(Alison Klayman) <아이 웨이웨이는 미안해 하지 않는다(Ai Weiwei: Never Sorry)> (2012). 웨이웨이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반()정부적인 성향이나 저항적인 행동(쓰촨성 학교 부실 공사, 베이징 올림픽 비판 등)을 지속적으로 담아낸다.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두 아티스트의 감성적, 심리적 상태에 접근하기 위해 비교적 클로즈-업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다큐멘터리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다큐멘터리 감독과 예술가의 지속적인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작업이 예술가로서의 개인적 초상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라면, 반면 예술가의 작업 과정을 밀도 있게 파고들어가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2009년 독일 화가 리히터(Gerhard Richter)가 쾰른의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코린나 벨츠(Corrina Belz)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2011)나 프랑스 남부, 바르작 외곽의 라 리보트에서 역사적 문제를 탐구하는 대형 작품들을 제작하는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를 담은 소피 파인즈(Sophie Fiennes) <당신의 도시 위로>(2010)가 그런 경우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각각 리히터와 키퍼의 작업 방식을 면밀하게 포착하면서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카메라로 추적하거나 혹은 작품을 사유하는 방식에 접근함으로써 두 예술가의 연금술을 몰래 훔쳐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소피 파인즈 <당신의 도시 위로> 2010 스틸컷





아브라모비치와 웨이웨이의 다큐멘터리 같은 인터뷰는 없지만 리히터와 키퍼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와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과묵한 리히터나 키퍼를 추적하는 감독은 카메라를 예술가를 그려내는 붓처럼 활용한다. 작품과 전쟁을 치르듯이 전념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쉴 새 없이 포착한 감독은 자신의 발견을 자신만의 이야기(은유의 영상)로 관객에게 전달한다이런 다큐멘터리들은 의도를 직접 밝히기보다는 예술가의 얼굴과 행동에서,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에서 관객들이 많은 것을 읽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말하면 이들의 카메라는 스타일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셈이다. 따라서 여러 시각과 해석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예술을 담는 다큐멘터리는 단지 예술을 재현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감독이 직접 예술 혹은 예술가와 접촉하는 특별한 과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다시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감독과 예술가의 상호작용만큼 중요한 것은 관객의 자리다. 참여를 유도하는 다큐멘터리는 아직 관객과 교감하지 않은 순간, 감히 말하자면 도래하지 않은 사건(다큐멘터리와 관객의 공모)을 위해 관객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관객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나 경험을 갖고 다큐멘터리와 접촉하고 소통한다. 이 과정에서 충돌할 수 있고, 감독의 의도는 모호함이나 불완전성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주체-대상-관객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예술에 대한 다채로운 경험과 시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예술적 소재와는 별개의 예술적 경험이다. 카메라가 없었다면(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형성하지 못할 감독과 대상(예술가)의 특수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다큐멘터리와 관객의 모종의 거래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관객을 위한 욕망이자 황홀경이다.  

 


글쓴이 전종혁은 부산국제영화제보다는 부산비엔날레를 더 좋아하지만 영화평론가로 살고 있다. 지금은 폐간된 영화 전문지 『프리미어』 기자였으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한국영화』에서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칼럼이나 인터뷰를 담당했다. 각종 매체에서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분석 기사를 즐겨 썼으며, 현재 『맥스무비』에 짧은 영화 리뷰를 쓰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 1985 스틸컷






Special feature

Pick this documentary

 


세상은넓고, 다큐멘터리는 많다. 예술을 검색의 키워드로 넣는다면 그 범위는 조금 좁아질지  모르지만, 선택지는 여전히 넓기만 하다. 보고 난 뒤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어디 없나 고민이라면 주목하시라. 예술적 촉수를 자극 할 시간이 필요한 당신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네 편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 1985 스틸컷

 




A.K.: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A.K.)_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 75 /1985


다큐멘터리가 사회과학적 보고를 위해 이국적 소재 찾기를 멈춘 것은 현대영화가 자기 자신을 탐사의 주제로 삼게 된 것과 궤를 함께한다. 오랫동안 영화를 괴롭힌, 영화는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현대영화의 중요 의제였고 다큐멘터리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크리스 마르케는 그 핵심 작가였다. 하지만 이후 감독들이 지난 과업에 매달려 있는 동안, 마르케는 다큐멘터리를 확장시켜 사실을 다룬다고 하는 다큐멘터리의 전통적 기능에서 탈선하는 데 이른다. 1985년 작 <A.K.>는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라는 예술가에 관한, 혹은 <>의 제작과정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만들거나 본다는 것이 SF적인 행위라는 것, 딱딱한 물질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그를 초월해 공상적일 수 있다는 것을 다룬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 안건형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 마르케(Chris Marker)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 1985 스틸컷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Lo and Behold: Reveries of the Connected World)_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 98 / 2016


20세기 가장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베르너 헤어조크는 1990년대 후반에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최근에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몇 편은 최근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극영화만큼이나 걸작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인터넷의 탄생부터 로봇 공학,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의 테크놀로지가 우리 세상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냉소적이지만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임경용 더 북 소사이어티 대표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 2016 스틸컷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 2016 스틸컷

 

 



아워 시티 드림스(Our City Dreams)_치아라 클레멘트(Chiara Clemente) / 85 / 2008


‘꿈’, ‘낭만’같은 단어로만 예술을 떠올린다면,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을 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절박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독 치아라 클레멘트는 세대, 출신, 장르가 모두 다른 5명의 여성 예술가 가다 아메르(Ghada Amer), 낸시 스페로(Nancy Spero),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助⃝), 스운(Swoon),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이야기를 ‘뉴욕’이란 도시를 중심으로 엮어 나간다. 뉴욕은 크고, 더럽고, 소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열정이 끓어 넘치고 그들이 각자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꿈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자, 집이 된다. 전투하듯 치열한 아티스트의 내밀한 삶과 예술을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시적인 시선으로 화면에 풀어냈다.  iyqui art writer

 



Marina Abramovic from <Our City Dreams> 

2008 스틸컷 A First Run Features release 




art by Ghada Amer from <Our City Dreams>

 2008 스틸컷 A First Run Features release 




art by Swoon from <Our City Dreams> 

2008 스틸컷 A First Run Features release 





Nancy Spero from <Our City Dreams> 

2008 스틸컷 A First Run Features release

 

 



왕자가 된 소녀들(The Girl Princes)_김혜정 / 79 / 2012


<왕자가 된 소녀들> 1950년대 대중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현재는 그 이름조차 낯선 ‘사라진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한 시대의 유력한 대중문화 아이콘이었던 여성국극은 당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이 모여들고 분출되는 통로였다. 영화는 여전히 무대를 지키는 배우들과 팬들을 따라가며 잊힌 문화예술과 여성주의의 역사를 복원하고, 여성국극이 갖는 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하며 예술과 젠더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 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김혜정 <왕자가 된 소녀들> 2012 스틸컷




김혜정 <왕자가 된 소녀들> 2012 스틸컷

 




Special feature

사실적 영화와 영화적 사실: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기록에 대한 두 가지 쟁점

● 김지하 미술학 박사

 


들어가며: 예술에 관한 예술가의 기록


일본의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의 양단에서 선구자로 불리는 영상작가 ‘마츠모토 토시오(Toshio Matsumoto)’가 올해 4월 작고했다. 그는 생전에 항상 영화와 미술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영상의 확장성과 새로운 실험을 위해 영역간의 조우가 더욱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30여 편의 작품과 7권의 저서1)를 내고 영화비평지 『영상예술』의 편집장을 지내는 등 자신의 생각을 펜과 카메라로 적극 피력해온 마츠모토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3년 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일본 내 미술관, 영화제 등에서 마츠모토 특별전이 열렸고, 그의 1953년부터 1965년까지의 평론을 모아놓은 책이 출간되었다. 무려 61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아방가르드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할애되어 있다


특히 유럽의 루이 부뉴엘(Luis Bumuel Portoles), 알랭 레네(Alain Resnais),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 등 소위 예술영화감독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다큐멘터리 양식들에 관한 흥미로운 점들을 다루고 있다. 마츠모토는 그 중에서도 알랭 레네의 1949년 단편 다큐멘터리 <게르니카>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게르니카>가 대부분의 예술가(혹은 작품)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처럼 감상을 의도한다거나 해설로 꽉 채운 소극적 기술이 아닌  <게르니카>라는 피카소의 작품을 영화적 언어(카메라의 움직임, 몽타주 등)와 심리적 묘사를 일치시키며 적극적으로 연출했다고 평가한다. 어떤 장면을 프레임에 넣을 것인지, 프레임들을 어떻게 이을 것인지는 찍어야할 대상이 아닌 연출자의 주관적인 내부세계로서, 아방가르드와 다큐멘터리는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윤석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스틸컷 사진 박수환





두 가지 분류: 전위기록영화와 개인영화


마츠모토는 실재 대상을 연출자의 주관적 의식을 통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영화기법(프레임, 몽타주)을 통해 완결시키는 작품을 ‘전위기록영화’로 명명하고(현재는 ‘실험 다큐멘터리’로 통용된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미학적 질문에 응답하는 혁명의 영화이자 새로운 리얼리즘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2) 또한, 그는 60년대 후반의 여러 평론을 통해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는데, 사적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메카스 작품과 같은 영화 장르를 ‘개인영화’라 지칭하였다. ‘전위기록영화’와 ‘개인영화’는 대상과 관찰의 측면에서 ‘나’를 중심으로 나의 외부세계인지  혹은 ‘나’의 이야기인지 여부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세계를 개인의 무의식 혹은 주관적 의식을 통해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현대 다큐멘터리가 예술적 동력을 얻게 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알랭 레네(Alain Resnais)

 <게르니카(Guernica)> 1950 스틸컷 





전위기록영화와 예술적 사실


마츠모토가 말하는 전위기록영화는 실재 대상에 대한 연출자의 변증법적 사고를 요하는 것으로 알렝 레네의 <게르니카>가 그러하듯, 작가가 작가를 대상으로 할 때 집요하고도 냉철한 긴장감을 가진다. 프랑스 감독 필립 그랑드리외(Philippe Grandrieux) 2011년에 찍은 작품 <우리의 결의를 다진 것은 아름다움이었으리라>는 감독 아다치 마사오(Masao Adachi)가 영화를 찍기 위해 정치적 상황에 들어간 여정을 회고한다. <우리의 결의를...>는 필립과 아다치, 두 감독간의 오가는 말과 과거와 현재 안에서 지워진, 지우고자 하는 기억들을 이미지로서 이끌어나간다. 기록자(필립)는 기록되는 자(아다치)의 기억들을 재편집, 재생산하는 또 다른 주체로 개입되면서 서로가 생각하는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다치 마사오가 현재시점에서 팔레스타인에 건너가 활용한 경험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것으로 구술사적 방법과도 유사하다일반적으로 관객이 예술(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영화를 통해 얻고자 할 때는 작품(또는 작가)에 내재한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을 기대하거나 방대한 양의 내용과 사건을 쉽게 훑어보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다루는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 픽션을 더욱 선호하며 실제 예술가보다는 예술가처럼 재연된 배우, 그리고 유일무이한 드라마틱한 사건으로서 관객의 기억 속에 기록된다. (따라서 예술 혹은 예술가를 다룬 픽션영화를 예술영화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실제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주로 상영된다.)





박찬경 <시민의 숲> 2016 Video(b&w). 

ambisonic 3D sound 26 6 3채널 비디오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and Kukje Gallery 

Acknowledgement to Taipei Biennial 2016 이미지제공국제갤러리





그렇지만, 다큐멘터리가 영화적 기법으로서 효과적인 이유는 연출자가 이미 완고해진 사실 이면을 드러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 다큐멘터리에는 실존인물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때 연출자가 함께 등장하거나, 연출자가 영화적 기법을 활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다큐멘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대상을 다루는 연출자의 전개방식을 추적해가는 적극적 관람방식이 필요하다.물론, 전위기록영화에도 사실에 대한 쟁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가령, 실존인물의 구술을 연출할 때에는 주관적 경험을 상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신뢰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또한 그 기억은 시공간에 따라 변형될 수 있으며, 그동안의 경험, 연출자와의 관계 안에서 왜곡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온전히 담지 못한 사건들을 다시 복원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기록에서 배재되어 온 피지배층의 역사에 관한 구술의 기록은 당시 경험에 대한 현재시점의 이야기와 소수, 피지배층을 포함한 다성적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는 장점이 있다다만 이야기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연출자의 몫으로 남는다


다큐멘터리가 객관적 사실을 보장받기 위해 실존 인터뷰를 많이 사용하지만, 오히려 관찰자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이 객관성이 결여되며 연출자의 뚜렷한 개입과 목소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저자 에릭 바누(Erik Barnouw)는 다큐멘터리의 권력은 ‘경우에 따라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을 다루는 영화에서 예술가(또는 예술작품)는 대부분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연출자가 그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그에 견줄만한 지식을 갖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피상적 사실을 각색, 분장, 연기, 음악 등을 통해 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마츠모토 토시오가    <게르니카>를 전위기록영화로 칭하며 예술 다큐멘터리의 모범 사례처럼 말하면서도 작품 중간에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시를 마리아 카사레(Maria Casares)가 낭독하는 부분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평이한 수준의 연출방식임을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호 추 니엔 <더 네임리스(The Nameless)> 

2015 2채널 영상설치컬러사운드 21 07 

 




개인영화로서 예술 다큐멘터리


한편 전위기록영화를 승계하고  예술적 가치를 공인 받은 장르가 있는데, 서두에 언급한 마츠모토의 정의를 빌리면 ‘개인영화’가 된다. 개인영화는 비디오아트, 실험영화, 다큐멘터리의 교집합 영역이기도 하며 70년대 비디오 액티비즘에서 나타나는 자기반영적 성격을 잇는 현재의 영상들을 말할 수 있다. 70년대 포터백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미술에서도 하나의 재료(미디어)로서 비디오를 들기 시작하였고 사회적 문제를 다각적으로 드러내는데 한계를 느낀 예술가들이 비디오아트와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비디오 액티비즘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즉각적 표현이 가능한 비디오는 현재, 지금의 기록을 담는데 최적화된 재료였으며, 목소리가 발화되지 않고 그대로 기록된다는 점은 비디오라는 재료를 사용한 예술가들이 다큐멘터리적 작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이러한 작업은 퍼포먼스 형태의 액티비즘이든, 갤러리 안의 아트(비디오아트)의 형태이든, 현재의 미디어아트이든 영화와 미술에 가교역할을 하고 고집스럽고 재미없는 다큐멘터리를 성실하고 심오한 작품으로 승격시켰다. 가령, 영화와 미술영역의 경계를 가로질러 활동하는 영상작가들이 증가하면서 질적 측면에서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무수한 정보들이 쏟아지고 기록되는 시대에 더욱 구술기록의 생명력이 강화되듯이 예술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세상의 이미지들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결국은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의식하고, 카메라와 나, 카메라를 비추는 풍경과 나와의 긴장감이 기록하고자 하는 기본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다큐멘터리는 픽션의 대립개념이 아닌 현실에 다가가는 ‘방법’의 문제이며, 내가 대상(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중요해진다. 





박민하 <Remixing Timespace> 

2016 영상 스틸 23 10

 




나가며: 예술에 관한 기록과 관객의 자세


다큐멘터리는 보통 ‘현실을 그대로 다루는 논픽션’으로 정의되지만 60년대 후반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테’이후 다양해진 영화적 양식이 등장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정의에 모순이 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따라서 이후의 다큐멘터리 정의에서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연출자의 주제의식과 사실에 대한 주관적 선택이 강조되어왔다. 예술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예술적 사실에 다가가는 방법론적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게 되며, 관객들에게 예술적 사실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에 대한 바라보기 방식의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예술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는 연출자의 개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이러한 연출자의 개입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용 행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각주]

1) 마츠모토 토시오의 저서 중 『영상의 발견 : 아방가르드와 다큐멘터리』(유양근 역,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4)는 국내에서도 번역되었다.

2) 『松本俊夫著作集成I, 松本俊夫(), 阪本裕文(編集), 森話社, 2016

 


글쓴이 김지하는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에서 「한국 실험영화의 문화적 형성과정 연구」로 미술학 박사를 취득 후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홍익대, 한양대, 동국대 등에서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 강의를 하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빙 프로젝트 책임연구원으로 아시아 실험영화 아카이브를 구축하였다. 국내외 실험영화, 미디어아트 관련 전시에서 프로그래머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차학경 예술론』이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