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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0, Jul 2017

전환기의 미얀마, 역동적인 아시아의 힘

Myanmar

Platform of the Peace
2017.7.1-2017.7.6, 양곤, 뉴 트레저 아트 갤러리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강타했던 히피 문화는 우리나라에도 70년대 자유의 상징으로 팝 음악과 함께 장발과 미니스커트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유신 정권은 안정된 권력 기반을 위하여 수많은 단속 대상을 규정하여 이를 금지했다. 짧은 치마를 입거나 마음에 드는 긴 머리를 하는 자유가 없었고, 팝송과 가요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다. 같은 시기에 미얀마는 어떠했을까? 그곳은 우리보다 훨씬 어둡게,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철저하게 폐쇄된 상태로 외부의 어떠한 바람도 느끼지 못한 채로 어두운 현실과 직면하고 있었을 것이다. 베일에 싸인 미얀마를 매체에 소개한다는 것이 적지않은 부담이지만, 몇 가지 자료를 통해 미얀마의 현대미술을 톺아보려 애썼다. 지금 소개하는 미얀마 현대미술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현재진행형임을 밝힌다.
● 글·사진 김이선 시각예술기획자


김정민 '전달된기억' 전 2014-2015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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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선 시각예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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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닿는 곳마다 황금 불탑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 풍광과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를 느낄 수 있는 나라, 미얀마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큰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신비에 가려진 숨은 보석과 같은 나라다. 미얀마는 세계 최대의 고고학적 문화유산으로 400만기의 불탑이 나라 전역에 걸쳐 세워져 있다.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종교는 그들의 호흡이고 살아있는 전통이며 일상의 생활이다. 미얀마의 근대사는 여타 아시아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서세동점에 따른 서구열강의 침략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미얀마 남부의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주목하고 세 차례의 전쟁을 거쳐 미얀마를 식민지로 지배하게 되면서 인도의 한 부속지로 편입시켜버렸다. 예전에는 버마로 알려진 미얀마는 1824년과 1948년 사이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웅산(Aung san) 장군을 중심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정부 수립 와중에 그가 암살당하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었다. 1948년 최초의 민간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혼란은 계속되었고, 독립투쟁시기에 결성되었던 군부세력이 중요한 통치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62년 군총사령관인 네윈(Ne Win) 장군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성공하여 군사통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송성진 <postures-hang on>(비디오 스틸

2017 Singlechannel video 3min


 


네윈은 당시 동서냉전의 시대에서 사회주의와 불교사상에 입각하여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를 도입하고 유산제도의 폐지, 계획경제의 도입은 물론 대외적으로 폐쇄적, 토지, 기업의 국유화를 포함한 자급자족적 고립경제체제를 채택했는데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 한때 동남아의 부국이었던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1988년 양곤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네윈은 퇴진하고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다. 신군부는 1990년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2010년까지 가택연금과 계엄령 선포로 대응했다. 2011년 민선 정부가 출범하여 현재까지도 국가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곤 시내를 거닐다 보면 이곳이 군사독재의 나라였음을 알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채로운 소수민족이 활보하는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운 거리풍경이고 사람들의 표정은 온화하고 친절하다.

 


“소위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숫자를 세지도 계산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치 나무처럼 조용히 성장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와 나무는 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자라나며 봄 동안 혹시 여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 속에서 이런 이치를 배운다. 그래서 고통은 나에게 감사의 대상이 된다. -  릴케(Rainer Maria Rilke)


 

미얀마의 예술가들은 릴케의 말처럼 조용히 성장할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의 척박함과 자원의 부족, 그리고 예술가에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 국가에 대한 저항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미얀마의 모든 예술가는 검열을 통과해야 전시나 공연, 출판을 할 수 있었다. 1962년 이후 겨우 두 권의 현대미술에 관한 책이 출판되었다. 그 출판물 역시 검열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는 언론자유 지수에 대하여 미얀마는 180개국 중 14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거의 반세기 동안의 독재 정권은 지역 예술계의 창조와 소통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다. 미얀마 밖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미얀마 작가들은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예술이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한다. 어둡고, 불안하고, 우울한 상황을 ‘생동감 있는 변방의 힘’으로 극복해내고자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위한 모든 작품은 검열을 받아야 했다. 많은 작가의 전시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여 거부되었지만,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정치적인 문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몇몇 작가들만이 예술을 저항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다그들 중 한 명은 1988 8월 항쟁을 통해 알려진 아예 코(Aye Ko)였다. 그 당시 그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을 때였고 그 이후에 정치적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으나 3년 후에 석방되었다





Min Zaw Ordinary People Series 

No.13 2014 Acrylic on canvas 92×122cm 





작가이며 동시에 디렉터인 그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 미얀마 현대미술 갤러리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뉴 제로 아트 스페이스(New Zero Art Space)를 만들어 회화, 영상, 사진, 퍼포먼스 등을 소개하고 다른 나라와 교류 행사를 진행하며 국제적으로도 자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성장시켰다아예 코는 신발 장사를 해서 돈을 마련하여 갤러리를 열었고 현대미술 교육을 위해 2층에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폐쇄적인 미얀마의 상황에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자료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재 뉴 제로 아트 스페이스는 디렉터인 아예 코와 출신 작가들이 협력해서 공간을 이끌어가고 있다


최근 시골 마을에 뉴 제로 아트 스페이스 빌리지(New Zero Art Space Village)를 만들어서 작가들의 작업 공간과 지역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현대미술 잡지도 발행하고 있다미얀마의 현대미술은  동양과 서양의 모든 것들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스스로 발전한 것으로, 그들이 스스로 개발한 기법이나 기법을 반영하여 작품을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도승 연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작가 민 웨 아웅(Min Wae Aung)의 작품 속 수도승과 여승은 ‘S’자 형태로 나타나 있으며, 관람자로부터 멀어져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이런 향수 어린 감정은 관람자에게도 투영이 될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어떠한 설명이 없어도 미얀마를 느낄 수 있다. 민 웨 아웅은 뉴 트레저 아트 갤러리(New Treasure Art Gallery)를 운영하고 있는데 미얀마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국제교류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Mrat Lunn Htwann <O!Picnic(Skin)> 

2008 Institut Français, Yangon 

 




작가군을 보면, 현재 미얀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상당수는 양곤예술대학(National University of Arts & Culture, Yangon) 출신이다. 1994년부터 1998, 양곤예술대학에 함께 수학했던 모 뇨(Moe Nyo), 민 자우(Min Zaw), 아웅 미앗 테이(Aung Myat Htay)를 주목해 본다. 서로 다른 주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개성 있는 시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다. 더 젊은 세대의 작가들 경우 서구의 문화에 매료되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그것을 추구하고자 유학을 가거나 각국의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아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실제로 2011년 필자가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처음 만났던 미얀마 작가 므랏 룬 트완(Mrat Lunn Htwann)도 그런 청년작가 중 하나였다. 그는 현실을 비판하는 설치 작품과 퍼포먼스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지난해 양곤에서 만나 어찌 지내는지 물어보니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짬짬이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7 1일부터 6일까지 양곤 골든 밸리에 위치한 뉴 트레저 아트 갤러리에서는 한국과 미얀마의 교류 전시가 열린다. 21세기 국제사회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전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융복합의 시대가 되었으며, 문화의 영향력이 전 방면으로 확대되고 자국의 문화를 활용하여 대외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문화외교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김춘자 <Blossom> 2013 Oil on canvas 72.7×53.0cm





세계 미술의 축이 서서히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기획된 <Platform of the Peace>전은 2017년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 기념행사의 일원으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과 미얀마의 교류전시가 평화의 플랫폼이 되어 서구의 시각이 아닌 아시아의 눈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되었다. 역동적인 아시아 미술의 힘을 확인하고, 나아가 아시아 현대미술의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리즘을 통해 한국 미술 역시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와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015년부터 자발적으로 모인 작가들이 결성한 아시아예술협회(Artistic Asia)가 이번 전시를 주관하며, 한국과 미얀마 사이의 다리를 놓았다. 양국 작가가 각 10명씩, 김춘자, 김은주, 방정아, 최석운, 박태홍, 박은생, 정용국, 김정민, 송성진, 표인숙, 아웅 민(Aung Min), 아웅 윈(Aung Win), 찬 아예(Chan Aye), 민 웨 아웅(Min Wae Aung), 누 누(Nu Nu), 페 니운트 웨이(Pe Nyunt Way), 산 민(San Minn), 산 나잉(San Naing), 얀 나잉 툰(Yan naing Tun), 예 아웅 마이(Ye Aung Myat)가 작품을 출품해 양국의 현실에 놓인 다양한 문제와 이슈를 공유한다.  

 

 

글쓴이 김이선은 시각예술기획자로 1990년 이후 120여회 이상 국내외의 다양한 전시기획을 하고 있다. 때로는 예술가들과 함께 여행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시와 출판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중국 북경에서 <중심축-경계를 넘어>(2015) <부드러운 힘> 등을 기획하였고, 2010년 몽골 고비사막과 한국 제주도에 노마딕 아트레지던스 <Time and Space>를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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