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현재 위치
  1. Features
  2. Special Feature
Issue 131, Aug 2017

고스트

보이지 않는 매혹: 고스트

유난히 음습한 여름, 지금 대구미술관에 선보이는 '고스트'(6.13-9.17)전엔 오리지널 유령, 앙증맞고 발랄한 뜻밖의 귀신 그리고 유와 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도는 무형의 존재로 상정된 고스트(ghost)들이 집결돼 있다. 사람의 인식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대상을 통틀어 고스트로 지칭한 이 전시에는 총 9명 작가들이 탐구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시각화돼 있다. 미술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에서도 초현실적 존재 고스트가 발산하는 기괴한 아름다움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런 고스트의 다층적 의미까지 품은 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기획·진행 편집부 ● 사진 대구미술관 제공

안젤라딘(Angela Deane) '유령(Ghost)' 2017 사진 위에 페인팅 208×140cm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편집부, 정일주 편집장

Tags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을 닮은 내 사촌누이(허풍이 아니다. 정말 똑같이 생겼다)는 열대야에도 두 발을 이불로 퉁퉁하게 둘둘 말고 잔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는데, 이유인즉 발을 내놓으면 침대 밑 귀신한테 붙잡힐 거 같아서라나. 25년 지기 ‘어깨깡패’ 친구 놈은 좀 덜 마른 옷을 입을 땐 허공에 대고 ‘퉤퉤’ 침을 튀긴다. “바짝 마르지 않은 천을 몸에 두르면 억울한 일이 생긴다”는 외할머니 말씀을 들은 후 저도 모르게 이런 버릇이 생겼다는데, 새로 빤 옷을 집어 들었을 때 습기가 느껴지면 어느새 ‘퉤퉤’ 거리는 자아가 등장하는 것이다누구나 비밀스런 버릇이 있다. 불안과 공포에 맞서는 나름의 방법이 있는데 거기엔 어떤 근거도 논리도 없다


종교를 초월해,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지니게 된 습관. 이쯤에서 ‘나는 그런 미신 따윈 믿지 않는다’며 선을 긋는 이도 있겠으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남에겐 말하지 않은 사소한 무서움이 과연 없는지. 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죽음을 문득 떠올리고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로 사고의 가지가 뻗으면 이내 귀신, 저승사자, 도깨비 등등이 어른거린다. 그 모습이 정확치 않아 나라마다 또 고을마다 다르게 생긴 고스트들은 한참을 잊혔다가도 일단 등장하면 속수무책 주변을 맴돈다곳곳에서 심리적 정신적으로 두려움과 위협을 가하는 무형의 존재들을 ‘고스트’로 개념화한 것으로부터 전시 <고스트>는 시작됐다. 인간의 직감적이고 근원적인 내면 심리부터, 평범한 일상과 공동체인 사회 시스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며 현대인들 주변을 배회하는 ‘고스트들’을 전시로, 현대미술로 추적한 것이다. 초월적인 영역에서 일상의 공간을 지나 사회적인 범주를 따라가는 전시 구성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종다양한 유령들과 마주하게 한다. 축축하고 끈끈한 이 여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열치열’이다.    





오다니 모토히코(Motohiko Odani)

 <인페르노(Inferno)> 

2017 4채널 비디오 5min 37sec 7.11×4m

 




어미홀에 놓인 오다니 모토히코(Motohiko Odani)와 빌 비올라(Bill Viola)의 작품으로 전시는 시작된다. 그 중 모토히코는 7.11m 높이의 스크린 건축에 5 37초짜리 비디오 <인페르노(Inferno)>(2017)를 틀어놓았다. Inferno’는 원래 지옥을 연상시키듯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불을 뜻하는데 작가는 그 ‘불’을 ‘물’로 바꿨다. 일렁이는 빛과 물결의 영상은 건축 안팎에 압도적으로 비춰지는데 바닥과 천장이 거울로 마감된 탓에 영상이 움직이는지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모호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침 전시장에 노란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쪼로록 앉아 모토히코의 건축 안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울음을 터트릴까봐 난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다. 그렇게 들어선 전시실엔 안젤라 딘(Angela Deane)의 평면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미국 출신의 작가는 일상 사진 속 인물들에게 유령의 옷을 덧칠한다.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쓴 것처럼 서양의 전형적인 유령 코스튬을 입힌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이, 아니 유령들이 동화나 설화와 나타나는 그것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휴양지에 온 것처럼 선글라스를 썼거나 민소매 옷을 입었다는 점. 지옥 불에 타버린 듯 화상으로 가득하고 마른 손가락으로 담배를 쥐고 있는 유령 따윈 없다. 딘은 일반적인 현대인의 유형을 해학적으로 일그러뜨려 모순과 유머가 가득한 나름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910장에 이르는 딘의 사진과 마주보고 배치된 이수경의 작품은 아기자기 귀여우면서도 뾰족하게 날 서 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 가상과 실재, 완전과 불완전 등 양면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모두 잠든’ 연작에 그는 슬픈 성모 마리아, 버림받은 설화 속 바리공주, 수명을 관할하는 보살 하얀 타라의 잠든 모습을 3D 프린팅 조각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묘하게 죽음의 뉘앙스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스런 표정의 주인공들이 공포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과정은 아이러니하다. 그런가하면 한 쌍의 크리스탈 샹들리에 <내가 너였을 때>도 옆에 놓였다. 샹들리에 하나는 깜빡 거리며 마치 상대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듯 하지만 나머지 샹들리에는 어떠한 반응도 없다. 이는 나 아닌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소통조차 되지 않는 인간관계의 안타까운 모습을 아름답지만 차가운 오브제로 보여준 것이라고.





 삼면화로 연출된 김진의 <조작된 정원> 





전시는 강렬한 김진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유학시절 거주하던 영국 집 실내부터, 이젠 기능을 상실한 중국 고궁의 내부 그리고 용도가 변형된 옛 교회 등의 실내풍경을 강렬한 색감과 붓질로 완성하는 작가는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자문한다. 낯선 환경에서 겪었던 혼돈을 고스란히 담은 ‘N_either’ 연작은 한 개인으로서 몹시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상태를 응축해 담은 것. 그는 실내 장식품처럼 묘사된 자화상을 통해 부정적인 내적 상황을 표현하고 영화롭던 시절이 지나버린 고궁을 그림으로써 ‘삶과 죽음’과 ‘고립’, ‘권력의 무상함’을 상기시킨다. 특히 새로 내건 <조작된 정원>은 유흥공간으로 변한 교회를 삼면화로 연출해 신성함도 자본주의에 침범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 시각을 자극하는 그의 회화는 저음의 보이스로 경고와 자각의 키워드를 전달한다. 그런가하면 대만 대표 미디어 아티스트 위안 광밍(Yuan Goang ming)은 한 가정의 거실을 구현한 공간에 단 채널 비디오 <거주(Dwelling)>를 상영한다


처음 등장할 때 평온했던 거실은 이내 기물들이 흔들리더니,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혼동의 상황으로 변한다. 그러나 혼란은 다시 자취를 감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끔한 거실로 영상은 끝이 난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시적으로 거주하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는 작품은 편안하고 안정적이라 믿어왔던 가정과 평범한 일상의 불안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전회화와 조각 이미지를 차용해 색다른 줄거리를 구사하는 김두진은 작품 <집만큼 좋은 곳은 없어>를 통해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연출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도로시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녀는 연신 빨간 구두를 쳐대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보는 이까지 가슴이 갑갑해지는 처지. 이는 ‘행복한 가정이란 도로시가 구두를 세 번 치는 간단한 과정을 통해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란다.





 김두진 <공격> 2017 3D 

디지털 프린팅 200×156cm 





또 다른 작품 <당신 곁을 맴돕니다>에서는 두 남녀가 젊은 시절로 돌아와 드디어 사랑을 맺는, 영화 속 장면을 가차 없이 비튼다. 서로 어긋나게 세월을 거스르는, 그래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주인공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다가도 좀 우습다. 이뤄진 사랑만을 떠받드는 클리셰에 대한 냉소이자 비주류의 영역을 작가는 3인칭 전지적 고스트 시점으로 바라본다. 그림자를 갖고 노는 이창원은 설치 작업 <평행세계_별자리>를 선뵌다. 전시장 벽면에 그림자  놀이 같은 이미지들이 환상적 공간을 연출한다. 하지만 실제로 반사된 이미지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의 뉴스 지면 사진을 오린 후, 반사시킨 환영이다. 이는 플라톤(Plato)의 동굴 비유와 관련이 있는데, 작가는 시각적 속임수를 통해 보는 행위의 구조와 위험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림자 뒤 잠재된 현실을 암시한다. 그의 작업은 그림자에 가려진 현실과 우리의 인지에 관한 다각적인 의미의 문제들을 담고 있다. 


끝으로 임민욱은 예의 집중하던 주제를 확장시킨다. 분단된 현실에 가능한 공동체를 찾으며 한국 사회의 급속한 성장에서 상실된 장소들, 혹은 기억에서 배제돼버린 존재를 지속적으로 애도해 온 그는 2012년 시작한 뉴스룸 형식의 설치작업에서 발전한 <온에어>를 선보인다. <온에어> 뉴스룸엔 유령들이 배회하고 있다. 카메라 삼각대, 조명 후드 등 레디메이드 재료들과 깃털 나무처럼 유기체적 재료들이 결합한 기괴한 형태의 오브제들은 중앙에 자리 잡은 뉴스데스크의 단을 제단 삼아 마치 제식행위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 상상의 뉴스룸은 오늘날 사회적으로 급속히 대두되고 있는 가짜 뉴스의 제작소와는 대조를 이루며 한국 현대사 속, 기억에서 실종되어 버린 진정성 있는 삶들에 대한 애도의 장면을 보여준다.   





 빌 비올라(Bill Viola) <연인들

2005 싱글 채널 비디오 8min 34sec  





‘고스트’란 무한 확장되는 단어다. 하루하루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들을 목도하는 우리에게 불안과 혼돈, 두려움의 대상은 증식되고 있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 외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옆에 지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무서운, 서러운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현대인의 근원적 내면에서 시작해, 일상 삶 그리고 사회라는 기초적 집단에 존재하는 유령들을 아웃 커밍한 전시 <고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두려움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며 동시에 두려운 대상을 직시하고 당당히 맞서라고 속삭인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