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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5, Jun 2020

사라지
Sarah Sze

활짝 펼친 사적 고고학

회화와 사진, 설치, 영상이 한데 섞여 있는 사라 지(Sarah Sze)의 작업은 분절된 조각의 집합체같다. 유성 같은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하고 거인이 밟고 지나간 파편 같기도 하다. 이런 복잡함과 다원성은 작가의 작업관 자체다. 그러나 작가는 작업 세계를 불가해하게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 작품을 보는 모든 이에게 말을 걸며 각자의 기억 속으로 확장한다. 작가에게 의미 있는 오브제의 배치는 일상적 오브제의 본성을 더 색다르고 생생하게 바라보길 권한다. 그의 작업은 그러므로, 당신의 시공간을 좀 더 촉각적으로, 충분하게 느껴보자는 제안이다.
● 조윤지 수습기자 ● 이미지 Gagosian 제공

'Still Life with Landscape (Model for a Habitat)' 2011 Stainless steel, wood 9×22×21ft (2.7×6.7×6.4m) Installation view, High Line, New York, 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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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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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미국관에 전시된 <Triple Point>는 사라 지의 작품 중 대표로 꼽힌다. 에스프레소 컵, 램프, 사다리 같은 물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작업에는 혼자서 비대한 중심부도 구체적인 서사도 등장인물도 없다. 한 마디로 관람객이 길을 잃기 쉬운 작업이자, 길잡이 삼을 주인공조차 없다는 뜻이다. 미술을 좋아하고 그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각 매체를 독해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지니기 마련이나, 이렇듯 매체가 저마다 소리를 내고 있다면 어떤 말을 먼저 받아들여야 할까경계 넘기를 통해 고정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작가는, 회화는 할 수 있고 조각은 못 하는 것, 혹은 그 반대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사유한다. 그렇기에 이유를 알 수 없어 보이는 각각의 매체는 철저한 계산 아래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작업 태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이런 사유가 싹텄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Ripple(Times Zero)> 2020 oil paint,

 acrylic paint, acrylic polymers, ink, aluminum, 

archival paper, oil stick, pencil, graphite, string, push pin, 

diabond and wood 289.6×362×9.5cm SZE 2020.0006 




사라는 1990년대 말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 재학하던 시절, 10년 동안이나 전공했던 회화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무렵 작가는 빠르게 대상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훈련은 충분히 되어 있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회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혼란을 느꼈다. 나라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해봤을 성찰의 시기가 그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잠시 붓을 내려놓고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더니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자신답게 만들어주는 소지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는 사실상 누구나 어디에서든 가질 수 있는 평범한 물건들, 이를테면 저렴한 치약, 화장실 종이, 볼펜 같은 것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한 물건이 되었는지 들여다봤다


미학적인 의미를 지니기보단 실용성과 기능성을 보장하는 것들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그 안에 함께한 시간과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고유한 기억이 가치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물건 하나하나의 생동감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수집한 이미지와 물건들을 스튜디오에 모두 펼쳐놓은 것이 지금 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의 작업은 달리 말하자면 펼쳐진 타임캡슐인 셈이다. 작가는 오브제를 통해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고, 다시 시간이 이미지에 흔적을 남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수집한 사물과 이미지는 공간에 꼴라주하듯 나열했다. 이러한 나열은 사라가 가진 고유한 역사의 축적을 시각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작가는 이 생생한 장면들이 또 누군가의 기억을 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전환의 과정이 작가의 조형 방식이자 언어 그 자체다.





<Split Stone (7:34)> 2018 Installation view, 

Museo Nazionale Romano, Crypta Balbi, Rome




한편 이런 설치들은 조립 키트처럼 해체될 수 있고 매뉴얼에 따라 정확히 재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들이 어느 장소를 가든 스스로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곧 사라에게 화이트큐브 공간의 고정성을 넘어서 일시적이고 유목적인 형태까지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이도록 했다. 그의 작품에 선을 휙휙 넘나드는 동작들이 배어 있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예술 실험들은 스스로 쓴 일대기가 되어 백과사전처럼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1999년 카네기 인터내셔널(Carnegie International)에서 처음 선보인 <Seam-less> 2001년 발표한 <Hidden Relief>는 그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초창기 작품들이다. 역시 페인트 통, 줄자, 노끈 등 흔하디흔한 재료들로 만들어 낸 설치작업인데, 여기에는  그의 미술관에 큰 영향을 준 20세기 초 미술사의 장면들이 곳곳에 뚜렷하게 배치되어 있다. 빨강, 노랑, 파랑의 단순화된 색감은 데 스틸(De Stijl)의 흔적을, 전체적인 얼개는 러시아 구축주의 건축을 흡수하고 적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질서와 구조를 강조한 설치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그러다 앞서 본 <Triple Point>(2013), 나아가 <Centrifuge>(2016) <Timekeeper> (2017)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스크린과 프로젝터이미지와 영상이 사물들과 함께 등장한다





<Centrifuge> 2017 Mixed media, including mirrors, 

wood, bamboo, stainless steel, archival pigment prints, 

video projectors, ceramic, acrylic paint, and salt Overall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Haus der Kunst, Munich, 2017-2018




이제 작업은 단순히 구조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간을 점유한다. 이때 영상은 단일한 화면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긴 수십 개의 종이 화면에 분할되어 쏘아진다. 작가에게 종이를 찢는다는 건 그 자체로 물성을 느끼는 행위이고,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이를 감각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이렇듯 같은 타임라인으로 재생되고 있는 영상일지라도 결코 하나로 인식될 수 없다는 점은 하나의 기억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닮아 있다. 전시 공간을 가로질러 퍼지는 빛은 작품의 고정되지 않은 규모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그렇게 만든 풍경이 또다시 어떤 이에게는 기억과 경험이 되고, 작가는 그런 관람객을 아이폰으로 찍는다. 작가는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이 점차 그 중심부에 완전히 스며들기를 권한다. 그를 통해 자신의 시공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사라는 사람들이 프로젝터 앞에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서 있음으로 인해 그림자를 남기는 것이 또 다른 이미지가 된다고, 자신의 기억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 기억은 새로운 작업에서 다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 각각에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동시에 일상의 한 장면일 것이다. 일상과 미술은 끝없이 순환한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경계를 넘는 것이야말로 이 작업의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다. 예술성을 일상에서 상기하면서 개인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인지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다.





<Centrifuge> 2017 Mixed media, including mirrors, 

wood, bamboo, stainless steel, archival pigment prints, 

video projectors, ceramic, acrylic paint, and salt Overall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Haus der Kunst, Munich, 2017-2018




관람객이 그 경계를 허물었으면 하는 바람은 2017년 뉴욕 96번가 지하철역에 설치된 <Blueprint for a landscape>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지상에서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옆 양쪽 벽을 파란색 타일로 깔았다. 그 벽에는 여태 작가의 작업들을 연상시키는 흰색의 이미지가 있다. 작가는 이 장소를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시민들부터 국제적으로 찾아오는 관광객들까지를 상상하고, 그들이 지하라는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면서 그 환경에 흡수되기를 원했다. 이는 기존의 문법에 갇히지 않고 대안적 미술 세계를 유영하고자 하는 사라의 작업 태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만나는 것이 그에게는 곧 이미지를 감각하는 지금 시대의 미술인 것이다.


최근 그는 다시 페인팅을 한다. 사진이 찍을 수 없는 기억, 머릿속의 이미지를 포착해 자신의 언어로 캔버스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설치, 조각, 영상을 하던 경험은 다시금 캔버스라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에 쏟아져 나오면서 사라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사라는 한 인터뷰에서 마치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언어처럼, 한 가지 매체에 사용하는 언어를 다른 매체에도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은 집합적이고 역사적이며 무한하다. 스스로에게서 출발하여 결국 귀환하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 세계는 열린 상태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발굴하지 않아도 꺼내져 있는 누군가의 고고학적 축적을 즐겁게 엿보며, 이제 나의 리포트를 작성할 준비를 해본다. 시간을 넘어 어느 누구에게 가 닿을지 모르는 타임캡슐의 묘미를 익히 파악한 채 말이다.  

 


 

사라 지

© the artist and Gagosian Photo: Deborah Feingold





작가 사라 지는 1969년 보스턴 출생으로 1991년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1997년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chool of Visual Arts)를 졸업했다. 2003년 맥아더(MacArthur) 펠로우십을 수상한데 이어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미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었다. 그의 작업은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작가는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의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의 작업은 2018년 8월 「퍼블릭아트」 표지로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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