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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3, Oct 2017

스프리츠가 비엔날레보다 좋은 서너 가지 이유

Italy

57th Venice Biennale
2017.5.13-2017.11.26 베니스, 아르세날레, 지아르디니

베니스만큼 이국적인 곳도 드물다. 베니스 본섬에 들어서자마자 이동수단은 오로지 배와 곤돌라, 튼튼한 두 다리 뿐이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이 섬 도시에선 허용되지 않는 문물이다. 바퀴와 모터달린 것들이 바삐 다니지 않는 길엔 오로지 사람, 물(술을 포함해서), 예술 뿐. 베니스는 그렇게 비엔날레에 알맞고 예술가에게 적합한 도시로 탄생해, 곧 물에 잠긴다는 유언비어를 이겨내며 지금껏 건재하다. 비엔날레의 존재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면서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만큼은 궁금증을 찾지 못해 번거로운 여행일정을 짜고 만다. 미술계 계륵이 따로 없다. 안 보자니 찝찝하고, 보자니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 막상 비엔날레에 도착하고 나면 내후년 비엔날레에 오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 잔치에 기어코 안 오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결국 2년에 한 번, 난 다시 한 번 베니스 하늘 아래 소환되고 만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안보고 못 배기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1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유명작가들을 한 도시에 꾸준히 불러 모으며 올해 57회를 맞이한 ‘베니스 비엔날레’ 혼자만의 힘은 아닐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마시는 싸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건더기가 많은 봉골레, 새까만 오징어먹물 파스타, 다양한 해산물이 그득한 전채요리,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시원한 프레스코, 그리고 달콤하고 예쁜 색의 식전주인 스프리츠를 거의 동시에 떠올리긴 하지만,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곰곰히 생각하노라면 역시 베니스 방문의 최대 명분은 비엔날레다. 결국 이 기간에 쏟아지는 빅뉴스에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는거다.
● 이나연 객원기자 ● 사진 Venice Biennale 제공

Eliza Douglas in Anne Imhof 'Faust' 2017 German Pavilion,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 Photography: Nadine Fraczkowski Courtesy: German Pavilion 2017,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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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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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부터 보자.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Christine Marcel)이 총감독을 맡아 자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 전시장 두 곳에서 펼쳐진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말이다. 마셀의 감식안을 통과한, 예술만이 가진 독특한 아우라를 탐구하는 51개국의 120명 작가들이 모였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예술의 원류가 되는 작가의 영감이나 아이디어에 생각은 가 닿기 마련이다. 그 철저한 파헤침을 증명하려는 듯, 참여 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도서목록이 자르디니의 방 한 칸을 차지한다. 프로젝트명은 ‘내 도서관 공개하기(Unpacking My Library). 1931년에 발행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들의 책을 전시도 하고, 비엔날레 도서관에 영구 기증하기까지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본전시에는 의도한 바겠지만 책이나 텍스트를 소재를 삼은 작품들이 많다. 존 라담(John Latham)과 겅 지안위(Geng Jianyi)처럼 책을 직접 오브제로 사용하며 조형물을 만들거나 캔버스에 붙이는 작품들이 있었다. 리우 예(Liu Ye)는 거꾸로 단정히 놓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나 릴케(Rilke)의 책을 나무패널에 아크릴로 그린 시리즈 ‘책회화’를 소개했다


시프리안 무레산(Ciprian Muresan)은 책을 잘라 쓰레기통에 담은 설치와 책에서 본 이미지들을 다시 종이에 연필로 그려 벽지처럼 붙이는 작업을 보여줬다. 작고작가며 이미지만으로 친숙한 유명 작가들이 포진한 와중에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을 꼽는다면, 회화성에 천착하는 84년생 홍콩작가 피렌제 라이(Firenze Lai)일 것이다실내에 앉아 있거나 창문틀에 기댄 평범한 포즈와 풍경이 과감한 붓 터치, 유기적인 선과 멜랑콜리한 색의 조화에 기묘한 비례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회화의 힘이 무엇인지, 그 원류를 생각해보게 하는 젊은 작가의 과감한 페인팅임은 분명하다. 로즈 레이첼(Rose Rachel)에게도 시선을 둘 가치는 있다. 1986년 미국에서 태어난 비디오 설치 작가로 역시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 28세에 이미 미국미술계의 총아로 주목받으며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천재작가. 그리고 하오 리앙(Hao Liang). 실크 위에 먹과 과슈로 작업하는 이 작가는 중국의 전통화 기법을 유지하면서, 동시대의 감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음과 손, 눈이 서로 통합하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기술을 익히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Yee Sookyoung <Translated Vase Nine Dragons in Wonderland> 

2017 Sculpture 400°ø201°ø190cm 57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 <Viva Arte Viva> 

Photo: Andrea Avezzù Courtesy: La Biennale di Venezia 


 


명불허전을 꼽으라면 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녹색조명-예술적인 워크숍>을 진행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다. 아름답고 스케일이 큰 특유의 연출을 보여줄까 하는 모두의 기대를 깨고, 정치적인 이슈를 예술에 끌어와 난민이 참여하는 워크숍 형식의 공간을 꾸몄다. 비엔날레와 예술이 벌어지는 한켠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도록 독려하는 이 작품은, 예술로 둘러싸인 거대한 전시장에서 예술의 모습을 하지 않은 워크숍의 모습으로 다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게 했다. 신선한 환기와 자극을 주는 거장의 작품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거니와, 워크숍으로 만들어지는 녹색 조명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엘리아슨은 “난민이 겪는 고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밀수, 인신매매, 마피아 조직의 실상-까지 다뤘다”고 밝혔다.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될 수 있고,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내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지만 미술을 매개로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게 그가 난민을 주제로 삼은 이유다자르디니엔 김성환의 설치와 영상 작품 <러브 비포 본드(Love before Bond)>가 전시됐다


작가의 조카인 소녀와 수단 출신의 아프리칸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감각적인 영상작업은 영상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구조물이 다시 공간에 설치되는 방식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사춘기의 불안정함, 미국사회 속 인종 문제 등의 주제의식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중에 작가가 중시하는 음향과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의 의자 등의 세팅까지 정교하게 연출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쉽게 영상에 몰입하는 눈치였다. 또 다른 본전시 출품 한국작가는 이수경으로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간 계속 소개해 온 ‘번역된 도자기’시리즈에서도 눈에 띄게 규모가 커진 5m짜리 대형작품을 제작했다. 상대적으로 큰 공간을 가진 아르세날레에 소개된 이 작품 외에도, 비엔날레 기간에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이번 국가관들은 어떠했나.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엔  87개 국가가 참가했다.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 내에 위치한 30개의 상설 국가관과 베니스 시내 곳곳에서 마련되는 비 상설 국가관 전시를 아우른다. 자르디니의 국가관 투어를 시작할 때 가장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스위스관은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다





Installation view of Carol Bove°Øs sculptures included 

<in Women of Venice> at the Swiss Pavilion, 57th Venice Biennale, 

2017 Courtesy of the artist,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Maccarone New York/Los Angeles 





스위스 출신의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는 늘 모델로 세울 정도로 가깝던 형제인 브루노 자코메티(Bruno Giacometti)가 직접 건축한 연이 있는 스위스관에 국가대표로 참여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노력 덕에 비슷한 기간 테이트모던(Tate Modern)에서 회고전을 가지고 있던 자코메티의 국적이 영국인지 프랑스인지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실존주의를 탐구하던 자코메티라는 작가의 작업세계에 집중할 따름이다. 스위스관은 비록 자코메티를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자코메티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스위스 출신 작가들을 소환하는 데는 성공했다스위스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캐롤 보브(Carol Bove)와 알렉산더 버칠러와 테레사 허바드(Alexander Birchler& Teresa Hubbard)는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와 접속하면서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낸 작품을 소개했다. 유약해 보이는 파란색 원통형의 수직 조형물은 자코메티의 가녀린 실존적 조각상에 대한 보브의 응답이다. 버칠러와 허바드는 자코메티의 연인이었던 플로라 마요(Flora Mayo)를 소개하는 가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무명의 작가였던 플로라가 자코메티와 같은 시기였던 192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한 과정을 리서치 해 제작한 이 영화는 스크린의 앞뒷면에서 동시 상영됐다


한쪽은 플로라의 알려지지 않은 아들의 201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처한 상황, 한쪽은 플로라가 1929년 파리에서 겪는 상황이 보이는 방식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공부한 자코메티는 거장이 되고, 여성작가는 무명으로 남겨지는 상황을 시대와 공간, 게다가 세대를 뛰어넘는 독특한 연출로 암시한 것이다. 언제나 국가관의 이야기들은, 국가관의 정체성을 약간 비꼬거나 탈피했을 때 매력적이다이에 반해 한국관 전시는 한국성, 혹은 아시아성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코디 최와 이완이 참여한 한국관의 주제는 균형을 맞춰주는 저울추를 뜻하는 ‘카운터밸런스.’ 미스터K라는 제3의 인물을 내세워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외관은 카지노처럼 현란하게 꾸며 시선을 끌었는데, 독일관을 감상하기 위해 줄을 선 인파의 시선이 닿는 쪽이 하필 한국관이었다. 외관에 작품으로 포장한 것이 많은 관람객들의 뇌리에 남게 되는 데에는 독일관의 흥행에 빚을 진 셈이다





Teresa Hubbard / Alexander Birchler <Flora> 2017 

Synchronized double-sided film installation with sound 30 mins, 

loop Installation view: Swiss Pavilion, Venice Biennale 2017 

Courtesy the artists,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 

and Lora Reynolds Gallery, Austin Photo credit: Ugo Carmeni

 



비엔날레 기간 내내 화제였던 독일관은 안네 임호프(Anne Imhof) <파우스트(Faust)>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거머쥐었다. 트라잘 해럴(Trajal Harrell)의 안무 작품을 모은 퍼포먼스 회고전인 <후치쿠치>를 런던의 바비칸센터(Barbican Centre)에서 관람하고, 임호프의 <파우스트>를 본 뒤에, 뮌스터에선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 <새는 영토(Leaking Territories)>를 마주한 나로선, 과연 2017년 현대미술의 왕좌는 퍼포먼스에 내어줘야겠구나 라고 말할 수밖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는 건 세계 공통의 언어와도 같아서, 임호프의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어보였다.  벨기에관의 더크 브랙만(Dirk Braeckman)은 축제 같은 비엔날레의 중심에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노릇을 했다. 말끔한 화이트큐브에 흑백 사진 20여점이 전시의 전부다. 현대미술의 왕좌 자리를 겨루는 미국관과 영국관이 과거의 명성에 비해 맥을 못 춘 느낌은 있다.  미국관은 <내일은 또 다른 날>이라는 제목으로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불구로 태어나 올림푸스 산에서 추방된 예술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상징하는 작품을 대표적으로 소개했는데, 어둡고 크고 거친 느낌이 강하다. 영국관에서도 폐품 같은 거대한 설치 조각을 볼 수 있다. 필리다 발로우(Phyllida Barlow)는 석고, 합판, 시멘트처럼 강하고 거친 건축 재료와 합성수지, 섬유같은 부드러운 재료를 함께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의 공간 설치 작품을 창조한다.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장대한 상상력을 펼쳐내는 작가는 이번에 “영국의 브렉시트(Brexit)가 주는 우울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타이완관에는 왕이 귀환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라니. 젖은 종이를 넓은 공간 바닥에 나열해 깔아가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 설치가 신작. 나머지는 모두 과거의 작품들이다. 왕이 내놓은 성과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시에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신선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엔날레고어들은 대부분 전 세계에서 모인 현대미술 전문가들일텐데, 별다른 고민 없이 구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친 전시에 대해 긍정적인 코멘트를 달기는 어렵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한국관 전경. 코디 최의 

<베네치아 랩소디(Venezia Rhapsody)>가 화려하게 설치돼 있다.




이와사키 타카히로(Takahiro Iwasaki)는 금각사 등의 신사를 모델삼아 그 건축물이 수면에 반사되는 모습을 나무 모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리플렉스모델>로 일본관에 참여했다. 칫솔이나 수건 등, 주변의 사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는 ‘아웃오브디스오더’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이와사키의 직조물에서 뽑은 런던 아이나 탑의 미니어처 건축구조물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칫솔 위에 세워진 송전탑의 정교함에선 눈을 뗄 수 없다. 관람객이 전시장 바닥에 머리를 넣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위트 있는 연출은 일본관에 긴 줄을 형성시킨 일등공신비엔날레에 맞춰 펼쳐진 전시 향연을 열거해볼까. 팔라초 포루투니(Palazzo Fortuni)에서 열린 기획전 <인튜이션(Intuition)>은 이번에 꼭 봐야할 전시로 거론됐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막스 에른스트(Marx Ernst), 엘 아나추이(El Anatsui)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빼곡한 이 전시장에서 김수자, 박서보 등 한국작가의 작업도 소개됐다. 아마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 수행하듯 전시를 찾아보는 대부분의 비엔날레고어들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순례를 왜 평생에 한번이 아니라 2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건가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예술은 인간성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 예술만세를 외쳤다. 정말,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해맑게도 “만세, 예술 만세”였으니까. 브렉시트가 터지고,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이 된 마당이다. 유럽 이곳저곳에선 테러가 일어나고, 북핵문제로 3차 대전을 염려하는 이 시국에, 정말 어쩌면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예술일까?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홀랜드 코터(Holland Cotter)는 지난번, 혹은 6년 전에야 이 전시가 유효했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너무나 안 좋다며, 예술 만세를 외치는 게 전혀 와 닿지 않는다고 총 기획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코터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예술만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 지면에서, 한줄기 밝은 빛은 언제나 예술 섹션의 몫이라 믿어본다. 전시만큼 처절하고 척박한 현실을 버티며 일구는 예술 만세, 예술가 만세랄까. 글 끝에 한 번 더 마셀의 문장을 생생하게 옮겨본다. “휴머니즘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갈등과 심한 변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 이나연은 삶의 절반은 미술평론을 읽거나 쓰는 일에, 나머지 절반은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응원하는 일에 쓰며 산다. 제주에 집이 있고, 서울과 런던, 뉴욕 등에서 일을 한다. 삶의 대부분을 내 집이 아닌 곳이거나 길 위에서 보내는데, 언제나 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 제주에서 글로벌 문화신문 『씨위드』를 발행했고, 『뉴욕지금미술』, 『뉴욕생활예술기』라는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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