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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8, Mar 2018

권오봉
Kwon Obong

파편처럼 해석된 사랑과 그로테스크

“미술은 급소를 정확히 찌를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누구나의 머릿속에 있지만, 아무도 감히 보려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미술이다.” 기억일수도 몽상일수도 있는 장면들을 거침없이 그려내는 권오봉은 미술 특유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작가다. 대구 출신의 작가는 변두리에 터를 마련한 후, 몇 십년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모서리와 유머 그리고 승화된 욕망에 대한 가시 돋친 여행을 선보인다. 시골의 쉬이 지는 태양, 지극히 현실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작가는 오로지 그리는 것에 집중하며 보는 이의 심장에 린치를 가한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작가 제공

'Untitled'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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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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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시작한 그림은 그에게 영롱한 꿈이면서 동시에 고단한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붓을 들면 무엇이든 뚝딱 그려낸 그는 이것저것 다른 곳을 헤매다 뒤늦게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고도 전업 작가를 염두에 두진 못했다. 벌어야했고 소속도 필요했다. 가장 자신 있는 미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선생님’이라 불리며 30대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화단에 분명한 역할을 지닌 선배가 그에게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그림만 그리라”고 강하게 당부했다.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물감을 싸매다 주며 선배는 절실하게, 작가가 오로지 그림에만 매진하길 소원했다. 그 선배는 바로 2001 5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황현욱 선생이다. 젊은 시절 작가로도 활동했고 1980년대 초부터 대구와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인물, 황현욱 대표는 작가 권오봉에게도 상징적이고 유물적 존재로 남았다. 그가, 작가가 지닌 어깨의 무게를 덜어주지 않았다면 작가의 붓놀림을 진심으로 응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권오봉은 있지 않았다.     




<Untitled>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2cm 




권오봉은 머리로 강한 서사를 만들고 이미지를 정리한 후, 선과 면이 덧붙여진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작품들이 내러티브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일테면 하나의 그림은 스토리의 한 순간을 정지시킨 화면이며 항상 그 뒤에는 다른 장면이 이어지고 그 전에도 분명 다른 장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구경꾼’ 즉 관람객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한다. 로큰롤이나 헤비메탈이 품은 미묘한 현실은 그가 작품을 시작할 때 영감을 주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에 그는 작업실 전체를 음악으로 채워 놓는다. 그것들은 그림의 모델이 되며 작가는 이 대상들을 통해 특정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의 움직이는 회화이다. 그는 작품 활동 내내 한 종류의 매체에만 매진하며 작업의 큰 주제 또한 감정에 대한 대담하고 집요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그림엔 구체적인 형상과 색이 드러나지 않지만 화면 자체로, 괴기스러운 상상을 서슴없이 펼쳐낸 것도 있고 잔잔한 사랑을 표현한 것도 있다




<Untitled>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227×182cm




그의 작품은 굳건한 팬을 형성하고 있으며 높은 평가를 얻어 각 유수 기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세상에 대한 집요한 연구의 연장선이다. “어릴 적부터 생각한 내 삶에 주어진 임무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자신이 격은 시대와 사회가 탐구의 주춧돌임을 공공연히 소개한다. 그런 그가 최근 몰두해 있는 주제는 사랑이다. 다양한 감정을 담고 그것을 어른의 눈으로 혹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작가는 그림을 통해 ‘순수함의 가능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Untitled> 전시 전경 파노라마컷




권오봉은 생각과 기억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린다. 산수화 같기도 혹은 거대한 꽃 이파리 같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편하게 ‘추상’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것의 범위가 너무 좁고 한정적이라 여기는 작가는 뭔가 다른 모서리에 닿은 개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읊는다. , 에너지 등 사람이 발휘하는 기운에 집중한 채 환상 혹은 몽환에 가까운 푸른 회색을 사용하여 그는 색다른 형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작품들은 어떤 취향들 속에 잠재해 있는 무질서와 약간의 질서 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의미구분은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사소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형화되어 버릴 듯한 모든 불연속적인 시간들 속에서 제각기 움직이고 있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그의 그림은 분명 존재하지만 결코 시각화되지 않는, 다각화된 차원을 대상으로 한다. 





<Untitled> 1998 캔버스에 아크릴릭 218×291cm 




<Untitled>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162cm 

 



권오봉에게 작품은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전달의 미디엄이다. 회화 각각의 내용이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는 것은 의식의 본질, 다름 아닌 사고의 전반인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미술이 집요하게 던지는 판단과 분류의 촘촘한 그물 사이를 빠져 나간다. 이러한 절망과 그때마다 나타나는 유혹들이 나의 작품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 공간을 창조해 낸다. 그는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몽환적 공간을 형성하고, 안료를 겹치거나 긁어내는 방식으로 공간의 심연을 연출하기도 한다. 또 색 대비가 명확한 작품을 통해 선명한 관념의 공간을 제시한다. 매 순간 알 수 없고, 서로를 방해하며 흔적을 남기는 숱한 ‘현재’에 천착한 채 그것들이 예기치 않게 탄생시키는 환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권오봉. 끊임없이 펼치는 성찰로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들을 완성하는 그는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을 편안하게 부유하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림과 다르게, 거의 순진무구에 가까울 정도로 맑으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발상을 보인다. 오래도록 굵직한 전시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권오봉의 장기는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권오봉 ⓒ 김종언 작가




미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작가 권오봉은 1954년 대구 출생으로 1986년 서울 윤갤러리와 대구 갤러리THAT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차례의 개인전을 선보였다경주 아트선재미술관의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1991), 프랑스 파리 갤러리 장 푸르니에(Galerie Jean Fournier)에서 <한국현대 예술가 6인전>(2009),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아트 카를스루에’(2014)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올해 가을 대구 인당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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