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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9, Apr 2018

김지섭
Kim Jiseop

‘헛 지음’의 업(業)

“헛 지은 생각이라도 나라는 주체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법칙의 제한을 피해, 솟아나는 자유의 영역을 확보하고, 누구나 스스로의 업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이것이, 만들어진 것에만 과잉의미를 부여하고 만든 사람의 삶은 배제하고 아름다움의 본질이 그 만들어 진 것의 속성인 양 왜곡하여, 마침내 그것을 소유권의 대상으로 삼는 미학적인 태도와 매개자 지배형태를 허물 수 있다.”(현대미술 기획 『그음공간』 ‘지금 여기 나는 업을 만든다’ 중에서)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밀어내고 눈발이 날리던 3월 어느 날 아침 차갑고 비릿한 공기와 함께 그를 만났다. 나는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을 뒤로하고 오랜 시간 칩거하였던 김지섭을 불러내 미술잡지 한 면에 들어갈 글을 제안했다. 수많은 정보들이 난무하고 표피성의 세계의 탐닉으로 얼룩진 이미지들이 뒤덮고 있는 도시는 그가 견디기 힘들어 하는 곳이다. 그는 5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나 늘 모든 선택권이 박탈된 유교식 가정에서 자랐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법대에 진학하고 졸업하여 직장에 취직했지만 이유 없이 돈을 받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 질서를 통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보편적 세계인 ‘법학’에서 나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주체를 형성시키는 ‘미술’을 선택했다.
●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 사진 서지연

'북위37도 52분 26초' 2015 아시바, 클램프, 텐트, 페 목재, 끈, 텍스트, 사진 2015 빈집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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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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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부터 그는 12년간 독일의 자르브뤼켄 조형예술대학(Hochschule der Bildenden Künste Saar)에서 미술을 배웠다. 독일의 개념 미술적 풍토는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아시아 청년 만학도를 좌절에 빠트렸다. 그가 찾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페클링엔 화가들의 여름>이란 전시에서 벽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아라!’라고 쓰인 명령문 작업을 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이 한 작업을 만날 때, 아름다움을 작품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살피려고 시도하시오.

어떻게 작업이 당신을 만나는지?

어떻게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무엇이 떠오르는지?

당신이 무엇을 느끼고 느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관찰하시오.

만약 그 와중에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말씀하시오.

“나는 아름답다”고1)


 


 <지천태> 2011 아시바클램프거울동력장치 가평군 설악면 그음공간





이 작업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외부 사물이나 객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만든 것이다. 김지섭은 자신의 작업을 ‘능연미술’이라고 하는 불교용어를 빌어 설명한다. ‘능할 능(), ‘기댈 연()’을 한자로 사용하는 이 용어는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의 능동적인 작용을 의미한다. 그는 스스로 파악하고 알려고 하는 이 마음의 힘을 따라 샘솟아 오르는 능연의 상태를 예술의 본질적인 토대로 보았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의 페클링엔 제철소의 산업문화시설과 경주의 석굴암으로 대변되는 불교의 정신문화 간의 교류를 위한 세계문화유산 기획에 참여하면서 김지섭은 <안녕 부처님>이라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6m 높이의 철관에 달린 거울로 독일과 한국을 연결했는데, 해가 떠오르면 그 첫 빛이 부처님의 이마를 비추게 설계된 석굴암의 부처님을 참조한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석굴암의 물리적인 빛이 9,000키로가 넘게 떨어진 독일 땅에까지 비추려 했을까? 아름다움이 더 이상 외부 사물이나 객체에 있지 않다는 ‘깨달음의 빛’이 그를 ‘능연미술’로 이끌었던 것이다.2)





 <지천태> 2011 아시바클램프거울동력장치 가평군 설악면 그음공간

 




내가 김지섭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그가 2005년 참여했던 <서대문형무소> 작업을 통해서였다. 당시 서대문형무소를 역사문화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작가들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시를 기획하였는데, 이 전시에 참여한 김지섭은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퍼포먼스를 수행했다. 그의 기인스러운 면모는 이와 같은 고행적인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가평의 상판분교에 살던 어느 날, 분교 토지의 일부가 이웃주민의 땅을 침해했다고 주장해 교육청이 분교 입구 잣나무 하나를 베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늘 벗하던 나무를 잃은 그는 분개하여 교육청에 달려가 항의를 해봤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잘려진 나무 밑동 건너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또 다른 잣나무의 입을 모조리 따버리고 만다. <공범>으로 이름 붙인 이 작업은 솔잎을 따느라 까맣게 송진이 묻은 그의 손가락 사진과 가지만 앙상한 잣나무 그리고 그 솔잎이 담긴 박스로 설치되었다. 그는 작품 설명에서 “솔잎 냄새가 피비린내 같았다”고 기술했다. 나는 그 무렵 그와 일산에 있는 비닐하우스 AA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 우리는 대안적인 미술대학을 상상했고 몇 년을 함께 청년 작가들과 미술교육에 대해서 고민했다. 시커먼 비닐하우스 두 동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물리적 공간이었던 학교가 결국 개발에 밀려 문을 닫아야 할 즈음에 그는 가평에 ‘그음공간’을 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음’은 ‘나누어짐’과 ‘나누어지지 않음’을 모두 포함하는데, ‘나누어진 하나의 안’이라고도 불렀다. 개념적이거나 조형적인 용어로서 ‘그음’은 ‘사유의 그음’이며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꺼내놓고 소위 ‘탁상공론’을 일삼는 ‘헛 지음’의 연속이었다. 거기서도 ‘그음공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평의 작은 분교가 철거돼 거주할 장소가 없어졌을 때, 그는 맞은 편 옥수수 밭을 학교로 전환시켰다





<따뜻한 기둥> 2016 아시바클램프방부목전열기, AV 장비틀 1,000×1,000×600cm





그들은 분교에서 버려진 의자며 가구들을 주춧돌 삼아서 아시바로 미술관을 지었는데, 옥수수를 파종해서 가을걷이를 하는 시간까지 옥수수 밭에서 그음의 ‘헛 지음’을 지속했다. 옥수수 밭에서 시작된 <아시바 미술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임대조건에 따른 형태변형>이라는 방부목과 아시바 등을 활용한 공간 설치작업으로 진화했다그는 자신의 작업을 ‘헛 지음’이라 부르면서 그 ‘헛 지음’의 업()으로부터 달아난 적이 없었다. 2011년에는 주역에서 땅과 하늘이 뒤집혀 있는 괘() <지천태(地天泰)>를 주제로 작업했는데, 그는 “이 괘가 가장 좋은 괘중의 하나”라고 했다. 아래로 내려가려는 땅이 위에 있고, 위로 올라가려는 하늘이 아래 있어서 서로 교차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작업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연의 원리는 김지섭에게 있어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거나 ‘헛 지음’의 업으로서 삶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의지가 있는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서 업을 쌓는다. 어느 날 그는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옆으로 의자에 앉기’를 시도하였다. 수직적인 몸이 수평으로 앉게 되려면 자연히 팔과 다리를 곧게 펴고 한쪽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은 들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느린미술> 2012 아시바클램프거울펌프빔프로젝터 2012 헤이리 논밭예술학교 




그의 작업은 깊은 불교적 성찰을 기반으로 하고 불교의 경전이나 고전 혹은 다양한 학문적 연구과정과 병행해 왔다. 2006년 의재창작스튜디오의 관풍대(觀風臺)에 자리 잡은 김지섭은 입주기간 동안 계곡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에 맹물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읽고 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창문에서 흘러내린 물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모여 창가에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몇 개월 후, 그는 그 병을 하나씩 들어 올리면서 자신이 읽고 쓴 경전을 외워 새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김지섭의 미술하기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조형하고 삶을 만들어 가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수행은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지속해서 ‘기대어 있어 함께 일어난다’는 의미의 ‘연기창작(緣起創作)’을 ‘그음공간’ 공동체와 함께 수행해 왔다. 그의 말대로 작가가 어떤 완성된 대상물을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마주할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주체로 만들고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함께할 것이냐가 문제다. 그렇게 능연미술이 생겨난다.   

 

[각주]

1) 다다르다 창작 출판03, 김지섭 『능연미술』 (나비꿈, 2016) 79

2) 의재창작스튜디오 『1 round』 도록(2006), 곽소연과의 대화, 24-41

 



김지섭



 

작가 김지섭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자르브뤼켄 조형예술대학에서 볼프강 네슬러를 사사했다그는 ‘능연(能緣)’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는데아름다움은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주체(관람객 혹은 작가)가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유학에서 돌아온 후 이러한 능연 미술의 실천이자‘느끼고 생각하고 함께하자’는 기치로 경기도 가평에서 ‘그음공간’이라는 기획을 시작했다천편일률적인 전시의 방법을 벗어나 미술과 작가라는 틀에 갇힌 한계를 깨고자 하는 김지섭은 페스티벌빈집 프로젝트공간 운영 등을 시도했다그 외에도 『능연미술』(나비꿈, 2016), 『서대문형무소』(나비꿈, 2016) 등을 출판하며 다방면의 예술 행위로 자신의 세계를 밝히는 그는 현재 경기도 가평군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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