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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39, Apr 2018

김학량, 정재호_자화상

2018.2.23 – 2018.3.20 산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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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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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의식이 투영하는 나 (혹은 우리)의 자화상  



“익숙한 듯 낯설다.”  


아주 오랜만에 생경한 전시를 맞닥뜨렸다. 분명 전시라는 형식을 마주했지만 그것은 머릿속에서 보통의 전시 풍경으로 새겨지지 않았고,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기억을 일순간 헤집어 본 듯한 느낌의 경험과 꽤나 흡사한 것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감상은 무언가를 보고 느낀 현상들이 기억이라는 깊은 주관의 통로를 지나며 재편된 자기 편린의 흔적과도 다르지는 않으리라. 김학량과 정재호의 전시 <자화상>은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레 행하던 인간의 무의식적 행위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도록 매우 담담한 어조로 권유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작가의 작업이 일정한 흐름을 따라 차분하게 혼재해 있거나, 또 이어져 나가며 느슨하게 공간을 메우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흰 벽과 화선지 위에 놓인 김학량, 정재호의 수묵이 오묘하게 섞여들면서 실재 공간과 재현된 풍광의 간극을 흐려놓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관람객은 잠시 현재성을 상실한 채 작가들이 소환한 기억 사이를 유영하는 체험의 순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자화상>에서 김학량은 좌초된 북한 잠수정 모티프를 중심으로, 방치되어있는 잠수함의 외형과 그 내부에서 발견하는 부품과 소품 그리고 기계 장치 일부를 그린 수묵(담채)화와 이를 촬영한 디지털 프린트를 전시한다. 작품의 배치는 산수문화 공간의 외벽을 따라 선형적으로 배치되어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작가의 수묵화가 주류를 이루고 중간중간 드나드는 보 뒤에는 사진 작업이 숨겨져 있다. 이를 통해 김학량은 폐기되었거나 죽어있는 것을 비추어내며 발현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죽음을 통해 삶을 환기하는 이 역설적 상황을 그가 의도한 동선을 통해 발견토록 하는 작가는 여차하면 지나치게 될 법한 특정 사건을 포착하며, 이로써 자아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환기하려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의 자화상을 확인할 기회를 획득함과 동시에 각자의 자화상을 구상할 수 있는 심적 환경을 제공받을 수도 있다.   

 

정재호는 자신을 향한 내연의 침잠하는 시선을 좀 더 방백(傍白)적으로 드러낸다. 작업실 근처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의 그림이 도심의 외곽지역을 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와 같은 곳을 일종의 폐허 또는 죽은 장소로 규정지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소, 작가 개인의 일상이 벌어지는 주변이자 교외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복기한 소박한 경개(景槪)를 수묵으로 옮겨낸다.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죽은) 건물과 구조물, 그리고 이 간극에서 여전히 현존하는 자연물, 또 다른 생과 그 흔적을 끌어들임으로써 작가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사유와 그 틈 속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새로운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을 함께 이야기한다. 또한 공간 중앙에서 부유하는 작품으로부터 뒤쪽 벽으로 이어지는 작업을 따라 걸을 때 흔들리는 장지들은 관람객을 자기 기억의 일부분으로 아우르며, 일종의 상호 발맞춤 혹은 동시-공감(co-experience)을 가능토록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기억과 의식, 정체성이 곧 하나라고 인식했다. 김학량과 정재호가 구축한 <자화상>전과 그 개념의 구조는 기억이라는 내적 행위를 통해 자아를 포박하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베르그송의 관념론과 일부분 닮아있다. 김학량과 정재호의 경우 모두 죽음’, 즉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기억의 행위를 통해 다시금 업로드(upload)하고, 이것을 (지금) 자신의 형상을 소명하는 하나의 재료로 삼는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이란 곧 그들의 외연, 다시 말해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선적이고 수평적인 면모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구성하는 자아 자체의 정체성이나 시선, 수직적 관점을 모두 내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전시라는 공공의 형식을 통해 이러한 자화상을 타인들과 적당히 공유하면서 그들에게 기억-의식-정체성이라는 철학적 개념들의 구조를 일깨운다. 최초에 본 전시를 조우하고 떠올렸던 생경함은 아마도 김학량과 정재호의 작업이 지극히 개인주의에 기인하여 개별적 자아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데 큰 노력을 할애하는 작금의 예술 경향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인간으로서 지니고 태어난  죽음 그리고 그사이에 놓인 기억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는 이 전시는 우리에게 떠올려야 할 것과 떠나 보내야 할 것, 망각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피할 수 없는 태생적 고민을 유연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흥미롭다.  

 

 

*정재호 <검은 집> 2018 한지에 목탄가루 147×2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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